
최근
부산은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항만과 해양 관광 인프라, 영화와 음악 축제, 그리고 K-컬처의
확산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방문객 수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부산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적 상징성을 지닌 미술관 분관을 유치해 도시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글로벌 문화도시로
도약하려는 전략이 본격화되었다. 퐁피두 부산 분관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퐁피두 전경. 파리 퐁피두는 2025~2030년 전면 휴관에 들어가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진행한다. / 사진: 한화그룹
부산시는 2024년 9월 퐁피두센터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2025년 9월에는
시의회 기획재경위원회가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가결하며 첫 관문을 넘겼다. 사업 위치는 남구
이기대 예술공원 부지, 총사업비는 약 1,099억
원으로 부산시가 밝힌 수치를 기준으로 한다. 건립 규모는 지하
2층·지상 3층, 연면적 약 15,000㎡로
전시실과
창작 스튜디오, 교육공간 등을 포함한다.

개관
목표 시점은 출처에 따라 다르다. 부산시는 2027 착공, 2031 개관을 제시했고, 프랑스 측에서는 2030년, 일부 영문 매체는 2032년을 언급한다. 따라서 현재는 2030~2032년 사이 개관을 목표로 협의 중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편
파리 퐁피두 본원은 2025~2030년 전면 휴관에 들어가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진행한다. 프랑스 회계당국은 비용 증가와 일정 지연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으며, 이는
부산 분관의 전시와 컬렉션 교류 일정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찬성
논리; 글로벌 문화 허브로의 도약
퐁피두라는
이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문화 브랜드인 만큼 부산이 단기간에 글로벌 관광객 유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이미 서울에서는 ‘Centre Pompidou × Hanwha’가 2026년 개관을 앞두고 있어, 두 도시가 함께 한국을 문화 관광의
중심으로 묶는 ‘더블 앵커’ 전략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는다.

퐁피두센터 서울 로비 조감도. / 사진 : 빌모트&어소시에이츠

한화 63빌딩 전경 / 사진: 한화 홈페이지
또한
문화 인프라 업그레이드 효과에 대한 기대도 높다. 해외 명품 기관의 운영 표준과 기획 역량이
도입되면 부산 미술계의 운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더불어 도시 재생 시너지도
거론된다. 북항 재개발과 맞물릴 경우, 관광과 업무, 주거가 복합적으로 얽힌 장기 도시 발전 전략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논리; ‘고비용·환경·종속’ 리스크
무엇보다
먼저 고비용 구조가 무엇보다 큰 문제로 지적된다. 총 1,099억 원 규모의 건립비뿐만 아니라 연간 운영비, 전시 대여·보험료, 브랜드 사용료까지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큰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

퐁피두 부산 분관설립에 대한 반대 성명서 발표 모습
입지
논란도 뜨겁다. 이기대 예술공원은 생태와 경관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교통수용력 부족과 환경 훼손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브랜드 종속성 문제도 지적된다. 흔히 언급되는 빌바오 효과가 단순히 ‘국제 미술관=도시 성공’으로
일반화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오히려 나오시마처럼 지역과 기업, 주민이
장기간 신뢰를 쌓으며 구축한 모델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분열 비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2025년 7월, 교수 228명이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공론장의 갈등은 이미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운영 신뢰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사례
국제
사례를 거론하는 이유는 단순히 해외의 성공담을 차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화시설이 한 도시의 정체성과
경제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비교 축이기 때문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모습
빌바오의
경우,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 이후 쇠퇴하던 산업도시가 세계적 관광지로 변모했다. ‘빌바오 효과’라 불린 이 현상은 건축 아이콘(프랭크 게리의 설계), 글로벌 컬렉션, 대규모 도시재생이 결합한 복합적 성과였다. 개관 직후 연간 방문객
수는 수백만 명으로 급증했고, 지역 경제는 서비스·관광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운영비 부담, 미술관에 과도하게
의존한 도시경제 구조, 지역 예술 생태계와의 괴리 같은 문제도 지적되었다.

나오시마 지중 미술관 모습 / 사진: All about Japan
반대로
나오시마는 소도시·섬 지역이 예술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정체성을 구축한 사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베네세 그룹과 지역이 협력해 미술관, 설치미술, 자연환경이 결합된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안도 타다오 건축과 세계적
작가들의 현장 설치가 더해지며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나오시마는
단일 건물이나 브랜드 효과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기업·지자체·주민이 함께 쌓은 신뢰와 로컬 내러티브가 핵심 동력이었다. 이 때문에 ‘지속 가능한 지역 예술 생태계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
두 사례는 부산 논의와 직접적으로 비교될 만하다. 빌바오는 단기적 브랜드 효과와 도시 이미지 쇄신의
상징이고, 나오시마는 장기적 신뢰와 지역 정체성 축적의 모델이다. 부산이
퐁피두 분관을 추진하면서 빌바오와 나오시마를 동시에 참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단순히 추진이나 철회라는 찬반양립이 아니라, 절차를 다시 한번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거치는 것이다.
앞으로의
본계약(MOA) 단계에서 대여·보험·지적재산권 사용료, 전시 빈도, 지역
작가 참여 쿼터 등 핵심 조항을 시민에게 공개해야 하며, 건립비뿐만 아니라 향후 10~15년간 운영비를 포함한 총소요비용을 시뮬레이션해 그 구조를 시민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지와
환경 문제 역시 대안 부지를 포함한 교통·환경 영향 검증과 공청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더불어 부산 서사 중심의 콘텐츠 전략을 제도화해 연간 전시 중 일정 비율을 지역 주제와 작가에게
배정하고, 글로벌 전시는 국제적 가시성을 확보하는 앵커 역할을 맡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파리 본원 휴관이나 일정 지연이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한 리스크 대응 플랜도 필수적이다. 또한
시민 대표와 학계, 재정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 성과평가 기구를 설치해 관객 구성, 체류일수, 지역 작가 참여율, 교육·연구 성과 등을 매년 점검하고 개선 권고를 내리는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부산이 글로벌 문화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대형 국제 브랜드를 유치하는 전략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재정적 부담, 환경적 리스크, 사회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명한 계약, 장기
재정 검증, 입지와 환경 재검토, 지역 서사 중심의 콘텐츠
전략이다.
이
네 가지가 투명하고 객관적인 협의 속에서 마련된다면 퐁피두 부산은 외부 브랜드의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부산만의 얼굴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한다면, 거대한 비용을 들인 도시 마케팅 실험으로 남을 위험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가 발생한 근본적 배경에는 처음부터 부산시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온 과정이
자리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 당사자와 시민들과의 합의와 협의이다. 투명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토론 과정을
통해 방안을 마련해야만, 부산이 중장기적으로 세계 문화예술의 흐름과 그 궤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