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
에스피(Gallery SP)는 작가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이 참여하는 단체전 《크러쉬 존(CRUSH ZONE)》을
6월 7일까지 개최한다.
세 작가는 움직이는 대상을 회화와 조각이라는 고정된
매체에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들은 연속적인 시간을 직접 기록하는 영상 매체 대신, 운동하는 존재를 손으로 조각하고 그려내며 정지된 형식 안에 다층적인 시간을 구현해 왔다.
전시는 이러한 서로 다른 움직임과 궤적이 충돌하며
생성하는 긴장과 에너지를 탐아낸다. 전시 제목 ‘크러쉬 존(Crush Zone)’은 ‘작은 공간 안에 밀어 넣는다,’ 또는 ‘으스러뜨린다’는
뜻의 ‘크러쉬(Crush)’와 구역을 뜻하는 ‘존(Zone)’을 합성한 단어로,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세 작가가 형성한 복수의 공간과 역동적인 현장을 비유한다.

인물화의 바탕을 조각하고 그려내는 과정에서 근육과
내장의 움직임을 투영한 임창곤, 인물과 동식물의 동작을 관찰하며 조각과 회화의 조형을 도출한 이동훈, 그리고 근경과 원경에서 관측한 궤적을 기하학 도형으로 치환한 안은샘, 참여
작가들은 순간 속에 포착하다 금시에 놓쳐버린 움직임을 상상과 도구로 계측하고 몸의 감촉에 의지하여 매체와 전시 등의 압축된 시공간으로 현시하였다.
동시대에
연속된 시간을 직접 투사하는 미디어들 사이에서 작가들이 고수한 회화적, 조각적 ‘다이너미즘(Dynamism)’은 급격한 산업화에 거스르는 양식으로
비추어진다. 본래 다이너미즘은 기술문명의 진취성과 역동성을 예찬했던
20세기 미래주의 미술의 경향으로, 과거의 유산을 파괴하고 산업화와 과학기술이 불러올 문명의
진보를 기대했다.

외관상
유사한 양상을 내비치는 듯하지만, 오늘날에 움직임과 힘의 관계를 가시화하는 참여 작가들은 비선형적인
시간관과 관계지향적인 태도를 겸비한다는 점에서 다른 노선을 취한다. 근대의 다이너미즘은 새로운 내일을
향한 급격한 발전을 추구했다면, 《크러쉬
존》은 그로 인하여 파괴된 작금의 풍경과 소외된 존재들의 크고 작은 요동을 조명한다.
미래주의와
반대로 이곳의 다이너미즘은 미래로 돌진하는 기계의 역동이 아닌 호흡하는 이들의 동세, 급격한 변화 속에서
도외시된 생명의 활동이다. 이에 기반한 《크러쉬
존》은 근대부터 오늘날까지도 진행 중인 산업화의 굴레에서 객체를 점유하는 주체성의
대척점으로 타자와 객체, 그리고 자연에 이르려는 추동의 장으로 공개된다.
참여작가: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