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전 공식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은 2026년 10월 21일부터 2027년 2월 21일까지 서소문본관에서 미국의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린 허쉬만 리슨(Lynn
Hershman Leeson, b.1941)의 개인전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을 개최한다. 미술관에
따르면 작가의 아시아 최초 미술관 개인전으로, 약 60년에
걸친 작업을 폭넓게 조망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6년
전시 의제인 ‘기술’과 연계해 인간과 기술, 정체성, 감시를 둘러싼 작가의 오랜 탐구를 소개한다.
허쉬만 리슨의 작업은 인공지능이 일상의 언어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디지털
플랫폼이 개인의 행동을 기록하는 오늘날 새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의 미술사적 중요성은 새로운 기술을
일찍 사용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그는 여성과 소수자의 사회적 위치, 정체성이 구성되는 방식, 매체를 통한 통제와 저항을 탐구하며 퍼포먼스와
개념미술의 질문을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확장해왔다. ZKM은 그를 인터랙티브 아트와 뉴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작가로 평가한다.

린 허쉬만 리슨, 〈로베르타 구성 차트 #1〉, 1975.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업이 1970년대에 전개한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Roberta Breitmore)〉다. 허쉬만
리슨은 허구의 여성 인물을 만들고 실제 사회에서 그 인물로 생활했다. 로베르타는 특정한 복장과 화장, 몸짓과 필체를 갖추고 은행 계좌를 개설했으며, 신문에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이후 다른 사람들도 로베르타를 수행하면서 하나의 정체성이
여러 신체를 통해 존재하는 구조로 확장됐다.
로베르타는 오늘날의 디지털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한 여성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식별되고 평가되는지를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외모와 행동, 문서와 제도가 개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은 ‘나’라는 정체성이 개인의 내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가가
이 작업을 당시의 성차별 문제와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로베르타는 가상 정체성의 실험이면서 여성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탐구로도 읽을 수 있다.
〈로나(Lorna)〉(1979–1984)에서는
정체성과 통제의 문제가 관객의 참여로 이어진다. 관객은 리모컨을 이용해 텔레비전과 전화에 의존하며 외부
세계와 단절된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선택한다. 서사의 순서와 결말은 관객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ZKM은 이 작품을 미술사에서 이용자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비디오디스크 작품으로 설명한다.

〈로나(Lorna)〉, 1979–1984 / 사진: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이 작품에서 관객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한 인물의 삶에 개입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객은
작품이 마련한 경로 안에서 움직이며, 주인공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의 사적인 세계를 들여다본다. 텔레비전 역시 외부와 연결하는 창이면서 두려움과 고립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처럼 허쉬만 리슨의 인터랙티브 작업은 참여의 가능성과 그 안에 포함된 권력관계를 함께 질문한다.

린 허쉬만 리슨, 〈에이전트 루비〉, 1998–2002.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 비트폼스 갤러리, 폴 앵글림 갤러리 및 작가 기증. /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 이후에도 이러한 탐구는 이어졌다. 〈에이전트
루비(Agent Ruby)〉(1998–2002)는 2002년 공개된 웹 기반 프로젝트로, 이용자가 화면 속 여성 가상
인물과 채팅하도록 구성됐다. 루비와의 대화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소통뿐 아니라 기술의 한계도 드러낸다. ZKM의 설명에 따르면 루비는 때때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더 나은 알고리즘이 필요하다고 응답한다.
오늘날의 생성형 인공지능과 기술적 방식은 다르지만, 루비가 제기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왜 가상 존재에게 말을 걸고, 어떤
응답에서 친밀감이나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얻는가. 허쉬만 리슨은 기술의 성능과 함께 인간이 기술에 투사하는
감정과 기대를 작품의 일부로 다뤘다.
작가의 탐구가 생명공학으로 확장된 사례로는 2014년에 시작한 〈The Infinity Engine〉을 들 수 있다. 과학자들과 협업해
유전공학 연구실을 재현한 이 설치는 생체 프린팅과 유전자 조작, DNA 정보가 인간의 삶과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여기서 질문은 인간의 이미지와 행동을 기록하는 기술에서 신체의 생물학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기술로 이동한다. 인간을 정의하는 정보는 무엇이며, 그
정보를 수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번 전시의 영문 제목인 《First Person Plural》, 즉 ‘1인칭 복수’는
이러한 작업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다. 하나의 고정된 자아보다 사회적 관계와 매체, 기술 속에서 구성되는 여러 자아에 주목하는 제목으로 읽을 수 있다. 작가에게
‘나’는 스스로 말하는 주체이면서 타인의 시선과 시스템에
의해 기록되고 해석되는 존재다.

〈린 허쉬만 리슨의 전자일기〉, 1984–2019 /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으로 공개된 〈린 허쉬만 리슨의 전자일기〉(1984–2019)는
그 문제를 작가 자신의 경험으로 가져온다. 허쉬만 리슨은 카메라를 향해 자신의 삶과 불안, 상처를 이야기하며 실제의 자신과 영상 속 자신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MoMA는 이 작업에서 작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분할하거나 반복하고 반사시키며 정체성을 표현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카메라는 자신을 기록하는 도구이자,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매체가
된다.

〈사이버로베르타〉, 1996/2026 /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개한 주요 작품에는 1960년대의 〈숨쉬는 기계 III〉와 〈가상의 비평가 3인〉 관련 작업부터 〈사이버로베르타〉, 〈로나〉, 〈에이전트 루비〉, 그리고 2025년의 〈자화상〉과 〈시간에 대하여〉까지 포함돼 있다. 이 목록은
작가의 관심이 새로운 매체로 옮겨갈 때마다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을 둘러싼 질문도 다른 형식으로 이어져왔음을 살펴볼 기회를 예고한다.
《나의 [나]들》을 앞두고
주목할 것은 작가가 얼마나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했는가만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여성의 몸과 사회적 정체성, 관객의 선택, 기계와의 대화, 생물학적
정보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인간을 바라보고
분류하며 정의하는 방식에도 관여한다.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2026년, 이번
전시는 새롭게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정체성과 감시의 문제가 이미 수십 년 동안 예술의 질문이었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한다. 허쉬만 리슨의 작업을 통해 살펴볼 것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기술 속에서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다.
작가 소개
린 허쉬만 리슨(Lynn Hershman Leeson, b.1941)은
미국의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다. 1960년대부터 퍼포먼스와 개념미술, 사진, 비디오, 영화, 인터랙티브 설치와 인터넷 기반 작업을 통해 정체성, 감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여성과 소수자의 사회적 위치, 검열과 정치적 억압에 대응하는 매체의 가능성도 주요 관심사다. 독일 ZKM과 뉴욕 뉴 뮤지엄 등에서 주요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등에
소장돼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경 /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미술관 소개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여러 분관과 공간을 연결하는 네트워크형
미술관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서소문본관은 서울 정동에 위치하며, 옛
대법원 건물의 전면부와 현대 건축이 결합된 공간이다. 한국현대미술과 세계미술계를 연결하는 전시와 프로젝트를
비롯해 교육, 연구, 상영,
워크숍,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시 정보
전시명: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Lynn Hershman Leeson: First Person
Plural )》
기간: 2026년 10월 21일–2027년 2월 21일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3층 전시실 및 3층 크리스탈 갤러리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화–목 10:00–20:00, 금 10:00–21:00 / 토·일·공휴일 10월 10:00–19:00, 11–2월 10:00–18:00
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입장 마감: 관람 종료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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