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요(b.1971)는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그리고 견고하지 않은 일상의
사물들을 소재로 사용해, 주어진 조건 안에서 변화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작품에 담아왔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사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사회 제도나 시스템, 그리고 그 주변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거나 잠재된 가치를 찾는 작업을 해왔다.
이를 위해 이주요는 드로잉부터
설치, 그리고 공공조형물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전시의 방식에 대해 새로운 접근과 방법을
제안하거나, 규범이 만들어낸 대립과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내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이트 스튜디오 - Fall” 전시 전경(2010) ©이주요
〈나이트 스튜디오〉는 이주요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지냈던 이태원에 위치한 자신의 집이자 작업실을 소수의 관람객에게 공개했던 오픈하우스 프로젝트이다. 이태원 집에 거주하던 당시, 작가는 주워 온 가구들을 자신의 키에
맞게 변형하고 주변에서 발견한 재료들로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장치를 만들고 도둑을 막기 위한 시설을 고안했다.
작가는 필요에 의한 실용적 결정이나 심미적, 의미적 선택들이
드러나는 오브제와 드로잉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작가로서 예술적 결정이
일어나는 필연적 시점을 실험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과 결과물들이 축적된 자신의 집이자 작업실을 소수의
관람객에게 네 차례에 걸쳐 공개했던 〈나이트 스튜디오〉 프로젝트는 상황이나 현상에 따라 각기 다른 소제목을 가지고 각 2주간 진행되었다.
그리고 2011년
이태원을 떠난 나이트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이후 다양한 도시와 삶의 환경에 옮겨 다니며 여러 미술관에서 공공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201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그 동안의 〈나이트 스튜디오〉가 겪어온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본 전시에서는 개인 공간을 떠나 시간과 정소, 사회적 관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첨삭되고 축적된 작품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새롭게 기획된 〈나이트 스튜디오〉를 선보였다.
아트선재센터에서의 전시에서 작가는 이태원동에 거주하던 당시 작가가 경험한 새로운 주거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반영한 작품들을 비롯해 새로운 설치 방식을 통해 표현했다. 가령, 이주요는 전시장 바닥과 동일한 재료를 사용한 〈무빙 플로어〉를 설치하여 관객이 직접 그 위를 밟으며 걸어 다니도록 함으로써 작가가 이태원에서 겪은 불안감을 신체를 통해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주요, 〈십년만 부탁합니다〉, 2017, 퍼포먼스 전경(남산예술센터, 2017) ©남산예술센터
2017년 이주요는 전시 이후 누군가에게 위탁하며 잊혀졌던 작품들을 10년
뒤 무대 위로 다시 등장시키는 공연 〈십년만 부탁합니다〉를 기획했다. 큐레이터 김현진과 공동연출로 제작된
〈십년만 부탁합니다〉는 2007년 당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던 작가가 폐기될 상황에 처하게 된 작품들을
누군가에게 위탁하였던 것에서 시작한다.
십년이 지난 2017년, 어딘가에서
잊혔던 작품들이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오르며, 말과 침묵, 움직임과
소리, 빛과 어둠을 통해 사물과 예술작품 사이, 예술가의
삶과 예술작품의 삶 사이를 진동하며 스스로 빛나고 대화한다.
이주요 & 정지현, 〈도운 브레익스〉, 2016, 광주비엔날레 2016 전시 전경 ©정지현
〈십년만 부탁합니다〉에서 선보였던 지난 작품을 재맥락화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실험은 이후 정지현
작가와 협업한 〈도운 브레익스〉에서 확장되어 나타난다. 〈도운 브레익스〉는 다수의 설치 작품과 퍼레이드
퍼포먼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가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오브제들을 통한 서사가 다양해지고 변화하는 프로젝트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2015년 뉴욕 퀸즈뮤지엄에서 시작되어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 소개되었고, 이어서 2017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이루어졌다.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작가가
만든 최초의 퍼포먼스는 서로의 오브제와 이미지를 매달고 세워 둔 무대에서 ‘만들기’에 대한 각자의 연대기를 나누는 대화로 시작된다.
이후 퍼레이드 퍼포먼스를 통해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수많은 이미지와 오브제들은 작가가 제공하는 물리적 틀을 통해 순서와 시간을 갖게 되고, 그 틀 안에서 말이나 텍스트 없이도 어떤 이야기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다른 동료 작가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시, 그림, 조각들을 자신들의 장치 위에 걸거나 놓아 움직이게 하여 일련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이로써 오브제들은 퍼레이드의 여섯 개의 챕터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작은 극장으로 변모되고 여러 이야기를 엮는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서 작가는 〈파이브 스토리 타워〉와 〈러브 유어 디포〉를 선보이며 새로운 형태의 창작 공간이자 작품 보관 시스템을 제시했다. 〈파이브 스토리 타워〉는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5층짜리 작품 저장 창고로, 올해의 작가상 전시 당시 현대 미술작가 정지현, 박지혜, 황수연, 홍승혜의 작품이 위탁되었으며 전시장의 조건에 따라 8가지 방식으로 설치될 수 있다.
〈파이브 스토리 타워〉와 함께 선보인 〈러브 유어 디포〉는 향후 작가가 실제로 구현하고자 하는 대안적인
수장고 시스템에 대한 제안이자 하나의 프로토타입이었다. 이주요의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업은 주류 미술시장 논리에서 소외된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개방형 수장고’로서 기능하고자 제작되었다.
〈러브 유어 디포〉는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에 상주하는 참여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되고 기록되며, 동시에 현장에서 생성된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송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운영되면서 살아있는 커뮤니케이션 허브(hub)가 구축된다. 즉, 〈러브
유어 디포〉는 전시 이후 남겨진 혹은 전시조차 되지 못한 작품들의 소멸을 유예시키고, 예술의 공유를
위한 방식을 찾아가는 대안적인 제안이자 예술 제도권에 대한 정치적인 태도이다.
이주요, 〈러브 유어 디포_강남 파빌리온〉, 2021 ©강남구
〈러브 유어 디포〉는 2019년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이후 2021년 강남 수서동 궁마을 공원에
공공미술의 형태로 설치되었다. 〈러브 유어 디포_강남 파빌리온〉은
프로젝트의 핵심인 작품 보관 창고이자 전시관인 〈턴 디포(Turn Depot)〉와 연기나 빛, 소리, 영상, 퍼포먼스 등 비물질적인 작품들이 상영되고 보관되는 큐브 형태의
구조물 〈언더 디포(Under Depot)〉로 구성된다.
〈턴 디포〉는 3분간 1회 정도 매우 느린 속도로 회전하며
관객이 창고에 난 창을 통해 한 자리에 서서 보관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또한 특수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겉 표면은 주변 환경이 반사됨에 따라 시시각각 외관이 변화한다.
한편 〈언더 디포〉는 전자 신호의 조작을 통해 대형 유리창의 투명도를 조절하여 전시공간과 스크린을 오가도록 함으로써 고정불변이라는 미술작품의 고정관념을
허물고 변화와 소멸의 성격을 가진 작품 또한 예술로 받아들이도록 관객의 인식 범위를 확장한다.
그리고 지난해, 이주요는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의 개인전 “백 개의 카트와 그 위에”에서 보다 확장된 〈러브 유어 디포〉를 선보였다. “백 개의 카트와 그 위에(Of Hundred Carts and On)”는
과거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치고 난 후 보관할 곳이 없어 폐기할 위기에 처한 그의 작품들의 여정을 담은 출판물 ‘Of Five Carts and On’(2009)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1990년대부터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떠돌던 불안정한 상황
안에서 적응하고 생존해 나가는 예술 작업을 이어왔으며, 이후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대안적인 작품 저장 창고 〈러브 유어 디포〉로 발전했다. 그리고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는 단 5개의 카트가 100개의 카트로 늘어날 때까지의 여정, 즉 개인적인 서사에서 시작해 제도권 밖 연약한 주변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나아간 이주요의 기나긴 여정을 보여주었다.
또한 본 전시에서 작가는 주 소재가 목재인 작업들을
금속으로 다시 주조하여 더욱 견고하고 지속성을 증강시킨 버전의 〈러브 유어 디포〉를 선보였다. 이와
함께, 강남구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선보였던 〈턴 디포〉의 실내형 버전과 회화를 포함한 평면 작업을 걸어
좌우로 슬라이딩하며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철제 프레임 〈페인팅 플레이트〉를 소개했다.
이와 같이 이주요는 낯선 도시들을 오가며 경험한 타자의 문제와 개별 존재의 불안, 분노, 연약함 등을 비정형적이고 임시적이며 가변적인 작품과 설치를
통해 표현했던 것을 시작하여,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가 대안적인 시스템을 제시하고 실천하며 연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들을 함께 보살피고 지탱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
“결국 내 작업은 ‘피지컬리티(Physicality)’에 대한 것이에요. 이 단어는 신체성, 물질성 등 다양한 물리적인 의미를 내포해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법은 지극히 물리적일 수밖에 없어요.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들이 흔들림 없는 물리적 세계를 통과하면서 살아야 하는 과정을 다각도로
실험하고 기록해왔어요. 초기에는 이런 물리적인 세상의 비정함 때문에 겪는 신체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거시적으로 삶의 환경이 빚어내는 비정함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합니다.”
(아트인컬처,
2010년 8월호)
이주요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이주요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과를 전공하였고, 이후 펜실베니아
대학교 대학원과 첼시미술대학교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백 개의 카트와 그 위에”(바라캇 컨템포러리, 서울, 2023), “올해의 작가 ‘러브유어디포_런던’”(주영한국문화원, 런던, 2020), “The Day 3, Walls and Barbed”(Amanda
Wilkinson Gallery, 런던, 2017), “Walls To Talk To”(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프랑크푸르트, 독일, 2013), “Walls To Talk To”(반아베 미술관,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2013), “나이트 스튜디오”(아트선재센터, 서울, 2013-2014)
등이 있다.
2019년 올해의 작가상(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9), 제11회
광주비엔날레(광주, 한국,
2016), 제3회 파리 트리엔날레(파리, 2012) 등 다수의 국제적인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0년 제3회 양현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
- 올해의 작가상, 이주요 (Korea Artist Prize, Jewyo Rhii)
- 바라캇 컨템포러리, 이주요 (Barakat Contemporary, Jewyo Rhii)
- 아트선재센터, 이주요: 나이트 스튜디오 (Art Sonje Center, Jewyo Rhii: Night Studio)
- 남산예술센터, 이주요: 십년만 부탁합니다 (Namsan Arts Center, Jewyo Rhii: Ten Years, please)
- 아트선재센터, 이주요/정지현: 도운 브레익스, 서울 (Art Sonje Center, Jewyo Rhii/Jihyun Jung: Dawn Breaks, Seoul)
- 국립현대미술관, 이주요 | 파이브 스토리 타워 | 2019 – 2020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RHII Jewyo | Five-Story Tower | 2019 – 2020)
- 강남구, “강남구-강남문화재단, 수서동 궁마을 공원에 ‘공공미술 프로젝트-러브 유어 디포_강남 파빌리온’ 오픈”, 20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