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활동중인 김성환 (b. 1975)은 영화, 영상, 드로잉, 음악, 건축, 문학 등 다양한 매체를 접목해 설치, 퍼포먼스, 라디오극, 책 등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이러한 복합적인 매체들을 활용해 독자적인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가며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현재’라는 특정 시대의 공간과 그 역사, 언어, 문화를 주목하며, 사회 체계와 교육 제도가 우리의 사고 방식 및 수용하는 태도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탐색한다. 주로 인물의 행적을 담은 전기(傳記), 공상 과학, 민간 설화, 신화, 집단 기억 등의 요소들이 접목되는 그의 작업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안을 위한 은유를 만들어낸다


“A-DA-DADA” 전시 전경(토탈미술관, 2003) ©김성환. 사진: David Michael DiGregorio

2003년 김성환은 미국에서 수학, 건축학, 미술을 공부한 후 토탈미술관에서 그의 한국에서 첫 전시 “A-DA-DADA”를 가졌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인 〈A-DA-DA〉(2002), 〈her〉(2003)과 함께 그의 스승인 비디오 아티스트 존 조나스와 실험 영화 감독 조 기븐스, 그리고 그의 친구 니나 유엔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처럼 각기 다른 세대의 비디오 아트들을 함께 선보임과 동시에, 김성환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던 40여 명의 비디오 아티스트 및 영화 감독들의 작품들을 자료로 준비했다. “A-DA-DADA”전은 김성환을 중심으로 한 전시이지만 그 안에 다수의 작품들이 연결되어 직조되어 있다.


김성환, 〈A-DA-DA〉, 2002 ©김성환

작가는 이러한 전시 방식에 대해 “한 사람의 뇌는 세계의 수많은 물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개인전을 하는 작가는 전시장 내에 자신의 작품만을 보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작품도 사회적 산물에 불과함을 의식하여 자신의 주변 세계를 같이 보일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성환은 말을 더듬는다는 뜻의 의성어 “아-다-다다(A-DA-DADA)”를 전시 주제로 삼으며 자기만의 영상 언어를 말로 다듬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예를 들어, 영상 작업 〈A-DA-DA〉(2002)는 두 명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서로 한국인 아버지와 아들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계속 말을 더듬으며 미끄러지는 소통을 통해 문화적, 세대적으로 단절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성환, 〈강냉이 그리고 뇌 씻기〉, 2010 ©김성환

이처럼 그의 영상 작업은 시각 이미지의 효과나 설치 연출에 치중하는 비디오 아트보다는 서사성과 역사성, 그리고 수행성을 주요한 요소로 한다. 2010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커미션으로 제작한 영상 작업 〈강냉이 그리고 뇌 씻기〉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과 허구의 이야기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와 집단 기억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릴케의 시 ‘시체 씻기’에 묘사된 시체를 닦는 모습에서 물로 뇌를 씻는 손의 모습 또는 세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 것을 시작으로 제작된 이 영상은 “나는 공산당이 싫다”고 말해 죽임을 당한 이승복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에 주된 소재가 된 이 이야기를 작가의 재미교포 2세인 어린 조카의 목소리로 풀어나간다.
 
이 이야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는 영어로 구연하다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장은 한국어로 말한다. 작가는 시대적,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단절된 상황에서 타자를 통해 역사가 어떻게 번역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Sung Hwan Kim” 전시 전경(더 탱크스, 테이트 모던, 2012) ©김성환

〈강냉이 그리고 뇌 씻기〉는 이후 라디오극과 출판물로 확장되었으며, 2012년 영국 테이트 모던의 ‘더 탱크스(The Tanks)’에서 전시를 여는 첫 번째 주자로 선정되었을 당시 선보인 대규모 설치 작업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김성환, 〈템퍼 클레이〉, 2012 ©김성환

이와 같이 김성환은 기존 문학 텍스트를 차용해 개인과 역사,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은유하는 작업을 해왔다. 2012년 제작한 영상 〈템퍼 클레이〉 또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의 이야기를 한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품 제목 ‘템퍼 클레이’는 ‘진흙개기’라는 뜻으로, ‘리어왕’의 구절 “어리석고 늙은 눈아, 이 일로 다시 울면 내 너를 뽑은 다음 쏟아지는 눈물 섞어 흙 반죽을 만들리라(Old fond eyes, Beweep this cause again I’ll pluck ye out And cast you, with the waters that you loose, To temper clay)”에서 인용한 것이다.
 
김성환은 ‘리어왕’에서 나타나는 권력과 금전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가족 공동체의 갈등과 해체, 죽음과 비극의 역사를 한국 사회의 갈등, 부조리, 비극과 빗대어 풀어냈다. 작품 속 배경인 호숫가 별장과 1970년대의 압구정동 아파트촌은 ‘리어왕’과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서로를 반영하는 거울 구조로 기능한다.

“김성환: 늘 거울 생활”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4) ©아트선재센터

김성환은 2014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늘 거울 생활”에서 〈템퍼 클레이〉를 비롯한 영상,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작품을 전시장 안에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교육 장치로서의 전시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실험적인 전시 구성을 선보였다.

“김성환: 늘 거울 생활”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4) ©아트선재센터

우선 작가는 전시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가르치는 태도와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장치로서 전시장의 구조를 변형했다. 전시 공간을 성격과 구성 방식에 따라 두 공간으로 구분하여 기존의 건축 구조와 형태를 반복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서로를 연상시키는 거울 구조로 만들거나, 출입구를 긴 통로 너머로 옮기고 높낮이가 다른 건축적 설치 구조물이 증식하듯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하여 미로와 같은 길을 만들었다.
 
기존 작가의 시간과 공간의 전치에 대한 사유가 공간의 차원으로 확장된 이 전시는, 그러한 맥락을 공유하는 작품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시대와 공간의 변화에 따른 파급, 변형, 또는 소멸되는 이야기의 영향력을 보다 관객에게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전달했다.


김성환, 〈굴레, 사랑 전 (前)〉, 2017 ©김성환

한편, 김성환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되어 제작한 〈굴레, 사랑 전 (前)〉을 통해서는 인종, 문화, 이주와 관련한 윤리와 미학의 개념에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작품은 한국 언론 기사부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까지 다양한 글을 차용해 자유롭게 연결하면서 언어를 지시적 기능과 작가성이 결여된, 무한하게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매체로 활용했다.
 
이 영상은 1992년 일어난 흑인과 한국계 이민자 간의 충돌로 일어난 ‘LA 폭동’ 등 특정 사회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영상 속 한국계 미국인 소녀와 수단 출신 흑인 소년이 서로 체득한 차별 당하지 않기 위한 몸짓 등을 맞춰 나가며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은유적으로 풀어나간다. 

김성환, 〈머리는 머리의 부분〉, 2021 ©김성환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에서 선보였던 김성환의 최근작 〈머리는 머리의 부분〉(2021)은 20세기 초 구 조선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역사를 다루며 영상, 책, 설치로 구성된 작가의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2017-)의 일부이다.
 
〈머리는 머리의 부분〉의 배경은 한민족(韓民族) 뿐만 아니라 태평양을 횡단한 많은 초기 이민자들이 수 세기 동안 거쳐간 핵심적 통과 지점이자 그들이 발 딛은 최초의 ‘미국 땅’인 하와이이다. 하와이를 지리적 위치이자 하나의 개념으로 해석한 작가는 경계 너머 타국의 비극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표류자와 표류지를 연결해 그 역사화 과정에서 발견된 것들 그리고 새롭게 가능한 구조와 이미지를 탐색했다.

이를 통해 은유적 장면과 기록 사진을 작품에 병치함으로써 새로운 인지적, 심리적 경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김성환, 〈머리는 머리의 부분〉, 2021,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 설치 전경(호놀룰루 미술관, 2022) ©김성환. 사진: 권수인

이처럼 김성환은 역사 안에 축적된 다양하고 복잡한 레이어와 그것들이 전달되는 방식을 자신만의 시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문학 텍스트나 기사 등의 기록물을 차용하여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층적인 시각적 구조물로 형상화함으로써 서사의 그물망을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가는 관객의 심리적, 인지적 차원에 침투하여 대안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내가 언어를 사용하기 전 그 언어를 먼저 썼던 사람들에 의한 언어의 역사와 변형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언어를 통해 어떤 내용을 전달할 때에도 그 내용이 전달되어 온 역사를 본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살핀다. 소통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이 가진 개인적인 역사나 지금의 그들을 만든 경제, 문화적 배경, 그리고 소통이 일어나는 장소의 역사를 함께 생각하면서 소통의 기록을 작업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김성환 | 리움, 작가를 만나다 #41)


김성환 작가 ©바라캇 컨템포러리

김성환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윌리엄스 컬리지에서 수학과 미술을 복수 전공했다. 이후 MIT에서 시각예술학 석사를 마치고 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를 거쳤다. 2007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과 로마상(Prix de Rome)을 받았고, 2010년 〈one from in the room〉이라는 라디오 작업으로 dogr과 함께 칼 슈카 상(Karl-Sczuka-Förderpreis)을 수상했다.
 
뉴욕현대미술관(뉴욕, 2021), DAAD갤러리(베를린, 2018), 테이트 모던 더 탱크스(런던, 2012), 쿤스트할레 바젤(바젤, 2011)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2017) 등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