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돈(b. 1973)은 사진, 설치, 영상,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기저에 깔린 근원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그는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샤머니즘’과 같은 민속학적인 영적 문화를 동원해 왔다.
 
작가는 서구화된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잃어버린 내러티브들을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의 결합을 통해 드러내고 연결하여 현 시대를 다시 제대로 마주하고자 한다.

김상돈, 〈입주를 축하합니다〉, 2004 ©아트 스페이스 풀

2004년 김상돈은 독일 유학길에서 돌아와 한국에서의 개인전 “입주를 축하합니다”을 가졌다. 귀국 후 그의 눈앞에 펼쳐진 한국의 풍경은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이 들어선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경함에 아이디어를 얻은 작가는 한국 도시의 사회-경제적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로 하였다.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개최된 “입주를 축하합니다”에서 그가 선보인 사진들은 ‘조감도’의 형식을 빌어 뒤틀린 도시개발 계획과 정책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감도 속의 고층 건물은 귀부인 손에 끼워진 ‘보석 반지’라는 이미지로 표현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보석반지에 불과한 대도시 아파트 단지와 빌딩 이면에 잊혀진 자연, 감정, 문화, 역사의 중요성을 환기하고자 하였다.

김상돈, 〈안녕하세요〉, 2005 ©아트 스페이스 풀

다음해 작가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시선을 옮겨 각 지역마다의 현안을 살펴보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 〈안녕하세요〉(2005)를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기 북부 일대의 4개 지역(동두천, 평택, 여주, 양주)을 돌아다니며 미군 부대와 지역 경제의 유착을 비롯한 주민들의 삶에 얽힌 외부의 거대한 권력의 양상을 들여다 봤다.
 
작가는 주민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해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눈이 아닌 귀로써 지역의 사회, 심리, 문화적 풍경을 그려보고자 했다.

김상돈, 〈불광동 토템〉, 2010 ©김상돈

일련의 지역 프로젝트를 마치고 자신이 살고 있던 불광동으로 돌아온 김상돈은 그곳에서 작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도시개발로 인해 사라져 버린 동네의 작은 사당들과 함께 사라진 연약한 믿음들을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기묘한 기운, 즉 장소성과 시공간의 기억, 다양한 주체들의 사적인 기억, 일상 생활 등이 응축된 기운을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 담아내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광동 토템〉은 동네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의자에 몸보신에 좋은 식재료들을 엮어 만들어진 작가만의 소박한 토템이다.


김상돈, 〈불광동 토템〉, 2010 ©김상돈

작가는 플라스틱 의자에 마늘, 미역, 조개, 인삼 등 재생과 재활의 기운이 담겨 있는 생물 또는 무생물을 엮어 작은 사당을 만들고 사진을 찍음으로써, 토템을 잃은 이들에게 비루한 토템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상돈, 〈일보 일보 화초〉, 2011 ©국립현대미술관

이와 같이 일상의 사물을 매개로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는 작업은 그의 여러 작품들에 나타난다. 그러한 작업들 중에서 신발 밑창을 이용해 화초를 만든 작업 〈일보 일보 화초〉(2011) 또한 대표작이다. 김상돈은 보잘 것 없지만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신발의 밑창을 화초로 재탄생 시키고, 우리 주변에서 흔한 시멘트라는 재료를 흙 대신 화분에 담았다.
 
작가는 오늘의 사회를 이룬 거대한 역사가 이 작품의 제목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루해 보이는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그러한 행보는 거대한 권력이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치고 깨지고 무너지기 쉬운 일반인들임을 드러내고 있다.

“안테나”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뉴욕, 2014) ©김상돈

그리고 2014년 김상돈은 두산갤러리 뉴욕에서의 개인전 “안테나”에서 파편화된 사물-인간-도구들이 연결신호를 송수신하기 위해 서로 의지해가며 직립해 있는 군상 오브제들을 선보였다. 작가가 만든 안테나들은 종이박스, 양초, 우드락, 콩깍지, 쓰레기 등 전혀 기능을 작동시키지 못하는 부실한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화적 배경을 가지거나 브랑쿠시와 같은 대가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형상을 가진다.
 
당시 작가는 뉴욕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며 아시아의 고대와 근대, 현대, 미래를 생각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가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서구의 중심부에서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아시아가 스스로 제거한, 혹은 방기한 신화들의 파편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신호가 잡히지도 않아 무용지물인 안테나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상돈, 〈Torma Antenna〉, 2014, “안테나”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뉴욕, 2014) ©김상돈

그 중, 〈Torma Antenna〉(2014)는 티켓의 전통 탑(Torma)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티벳인들이 신에게 기원했던 중요한 사료들이 이 탑 안에 담겨져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서로 다른 문명을 가진 나라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 문명의 상관관계를 작가 특유의 재치를 더해 표현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기호화된 사물과 이미지를 바라보는 동양과 서양의 시각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김상돈, 〈모뉴먼트 제로 No. 15〉, 2014 ©김상돈

2014년, 작가는 세월호 참사와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에 대한 뉴스를 접한 뒤 시공간에 구멍이 난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가는 이와 같은 일련의 사고로 인해 부재하게 된 존재들을 추모하고자 〈모뉴먼트 제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부재의 기념비’로서의 작업 〈모뉴먼트 제로〉는 종이, 유토 등의 재료로 서사, 형상, 시간, 공간 상의 부재감을 표현하는 조형물이다. 작가는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생기거나 사라지는 형상과 공간을 구현하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했다. 이러한 즉물적 재료로 부재를 조형화하고 인화해 보는 작업으로써 실체와 비실체, 현존과 부재 사이의 틈을 만들어낸다.


김상돈, 〈행렬〉, 2021,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김상돈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던 김상돈은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과 우리 민족이 과거부터 가져왔던 전통적인 무속 문화를 연결하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공동체와 한국의 토속적 문화의 통합을 바탕으로 하는 샤머니즘이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양식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작가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멀어진 듯하지만 샤머니즘적 신앙의 세계관은 여전히 집단적 무의식의 형태로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김상돈은 이러한 샤머니즘에 기반한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우리의 원형을 예술의 형태로 풀어냈다.

김상돈, 〈카트〉(세부), 2019-20,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광주비엔날레

가령 〈행렬〉(2021)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이용해 한국의 전통 장례 문화를 재해석한 작업이다. 고인을 실어 나르는 전통 구조물인 상여는 쇼핑 카트 위에 얹어져 있으며, 나무로 된 토속적인 가면을 쓴 직립의 조형물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상여 안에는 눈물을 흘리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인간 형상이 표현되어 있다.
 
이는 화려한 현대 자본주의, 매스미디어의 힘, 철저하게 소독돼 겉보기에 균일해 보이는 사회의 불안정한 현실을 반영한다. 이와 동시에 애도와 위기 극복을 위한 집단적인 행위인 전통 상을 매개로 함으로써 집단성과 공동 생활이 인간의 조건에 내재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김상돈, 〈숲〉, 2022 ©프로젝트 스페이스 미음

이처럼 김상돈은 우리의 삶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주변의 사물들, 그리고 그 안에 내재하고 있지만 잊혀진 내러티브들을 예술을 통해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 오고 있다. 또한 그의 작업은 단순히 현대와 과거를 잇는 것이 아닌 인간의 조건과 삶, 그리고 근원적인 것들에 대해 다룬다. 끊어지고 잊혀진 것들을 현재의 삶에 연결시키는 그의 작업은 사회적 상처를 회복시키고 애도한다.

“내러티브에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마을운동 이후) 너무 서구화되면서 서구에서 만들어낸 시스템들을 너무 따르다 보니 스스로 우리의 내러티브를 포기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형식의 내러티브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의 도구로서의 연장, 그리고 이미 우리 집단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그 연장을 '연결' 해보고 싶었다.” (김상돈, 뉴스프리존 인터뷰, 2021.12.06)


김상돈 작가 ©서울신문

김상돈은 베를린국립예술대학교 순수미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마이스터쉴러 과정을 마쳤다. 최근 프로젝트 스페이스 미음(서울, 2022)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두산갤러리(뉴욕, 2014), 아트선재센터(서울, 2012), 빌레펠트 쿤스트베라인(빌레펠트, 독일, 2011), 아트 스페이스 풀(서울, 2004)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는 광주비엔날레(2021),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18), 호주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2012), 부산비엔날레(2006, 2012), 멕시코 따마요 현대미술관(2009), 뉴욕 뉴뮤지엄(2008) 등 국내외 단체전과 비엔날레에 참여해 왔다.
 
또한 작가는 제1회 안국미술상(2021), 제3회 두산연강예술상(2012), 제12회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2011), 제10회 다음작가상(2011)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백남준기념관에서 예술감독(2016-17)을 역임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