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아시아 동시대미술을 이야기하는가
 
‘아시아 동시대미술’은 하나의 공통된 양식이나 미학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는 서로 다른 역사와 정치·사회적 조건, 미술 제도와 시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아시아 동시대미술은 이러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면서 오늘날 국제적인 미술관과 비엔날레, 시장과 담론, 제도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는 동시대미술의 장(field)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시아 미술을 이야기하는 목적은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를 하나의 ‘아시아적 정체성’으로 묶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 동시대미술을 ‘한국미술’이라는 내부의 범주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와 세계 미술의 좌표 속에서 우리의 현재 위치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시아 근현대미술을 설명해온 중요한 서사 가운데 하나는 서구의 모더니즘과 동시대미술을 각 지역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형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시아는 무엇을 받아들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생산해왔으며 지금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서 현재 아시아 동시대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출발점이 만들어진다.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세 개의 질문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통해 서구가 오랫동안 ‘동양’을 어떻게 바라보고 설명하며 지식의 대상으로 구성해왔는지를 분석했다.
 
사이드가 제기한 문제는 단순한 문화적 편견이나 이국적 취향이 아니었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가. 누가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분류가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그에게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을 재현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지식과 권력의 구조에 관한 문제였다.
 
물론 사이드의 이론은 이후 서구와 동양의 이분법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다양한 지역과 사회가 지닌 차이와 능동적인 문화 생산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누가 설명하고, 누가 분류하며, 어떤 프레임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이드의 책이 출간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 미술의 실제 지형은 크게 달라졌다. 아시아의 작가들은 더 이상 서구 현대미술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주변부의 생산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서울과 도쿄, 베이징과 상하이, 홍콩과 싱가포르, 자카르타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동시대미술이 생산되고 있으며, 아시아의 작가들은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비엔날레, 갤러리와 시장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미술의 현실이 변한 만큼 그것을 바라보고 분류하는 세계의 시선도 변했는가.
 
오늘날에도 ‘Asian Art’, ‘Chinese Art’, ‘Japanese Art’, ‘Korean Art’와 같은 지역적 범주는 널리 사용된다. 이러한 명칭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사회, 지역적 맥락은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문제는 지역적 정체성이 여러 해석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는 우선적이고 고정된 프레임으로 작동할 때 발생한다.
 
 
이번 3부작은 이 문제를 세 단계로 살펴본다.
 
1편에서는 현재 아시아 미술의 실제 지형을 확인한다. 2편에서는 변화한 현실을 국제미술계가 어떠한 시선과 분류체계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아시아 미술계 스스로도 특정한 ‘아시아성’을 재생산하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3편에서는 그 안에서 한국 동시대미술이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하며 세계와 연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그 첫 번째 단계는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나의 중심에서 여러 중심으로
 
20세기 후반까지 아시아 현대미술에서 일본은 상대적으로 앞선 위치에 있었다. 전후미술의 축적뿐 아니라 미술관과 컬렉션, 연구와 출판 등 제도적 기반에서도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일찍 체계를 갖추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미술시장의 확대가 아시아 미술의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다. 홍콩 역시 국제 경매회사와 글로벌 갤러리, 아트페어가 집중되면서 아시아와 세계 미술시장을 연결하는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시 달라지고 있다.
 
시장과 자본, 작가와 전시, 미술관과 비엔날레, 연구와 담론, 국제 유통과 네트워크가 더 이상 하나의 국가나 도시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중심이 다른 중심으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중심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홍콩, 일본,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 한국을 비교하는 목적도 어느 지역이 더 앞서 있는지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지역이 오늘날 아시아 동시대미술의 구조 안에서 무엇을 생산하고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국, 규모와 생산 기반
 
중국의 가장 큰 힘은 방대한 시장과 자본, 그리고 대규모의 창작 기반에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갤러리와 미술관, 경매시장과 컬렉터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1990년대 이후 중국 동시대미술은 정치적 팝과 냉소적 사실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국제미술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형성했다.
 
2025년 중국은 세계 미술시장 매출의 14%를 차지하며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 시장을 유지했다. 여전히 세계 미술시장의 주요 축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시장의 크기가 곧바로 동시대미술의 문화적 영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제 환경의 변화와 정치적 규제, 표현의 조건 역시 중국 미술의 국내외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규모와 자본, 방대한 창작 기반은 현재 중국 미술이 가진 가장 분명한 힘이다.
 
 
 
홍콩, 국제 유통과 문화적 연결
 
홍콩은 오랫동안 아시아와 세계 미술시장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국제 경매회사와 글로벌 갤러리, 아트바젤 홍콩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 인프라는 홍콩을 아시아 미술 유통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시켰다.
 
최근에는 여기에 문화적 인프라도 강화되고 있다.
 
M+는 아시아에 기반하면서 세계적인 관점에서 20·21세기 시각문화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기관을 지향한다. 이는 홍콩이 중국 본토와 아시아, 세계를 연결하는 지리적·문화적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날 홍콩의 의미는 단순한 거래의 중심에만 있지 않다.
 
시장과 기관,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적 플랫폼.
 
이것이 현재 홍콩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일본, 역사와 축적
 
일본의 가장 큰 자산은 오랜 시간 축적된 현대미술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구타이와 모노하, 네오팝과 슈퍼플랫은 이미 세계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으며, 쿠사마 야요이, 나라 요시토모, 무라카미 다카시, 스기모토 히로시를 비롯한 여러 작가가 국제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쟁력은 개별 작가의 성공에만 있지 않다.
 
미술관 컬렉션과 전시 기록, 연구와 출판, 작품 보존과 아카이브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있으며, 하나의 작가나 미술운동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재평가해 미술사 안에 위치시킬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 일본을 아시아 미술의 유일한 중심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술을 기록하고 연구하며 역사화하는 축적의 힘은 일본 미술계가 여전히 가진 중요한 경쟁력이다.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 연결과 새로운 실천
 
싱가포르는 정책과 금융, 영어 기반의 국제 네트워크, 동남아시아라는 지리적 위치를 결합하면서 중요한 미술 허브로 성장해왔다.
 
미술관과 비엔날레, 국제 아트페어와 문화정책은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와 국제미술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동시에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는 각기 다른 역사와 사회적 조건을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의 동시대미술이 발전해왔다.
 
특히 일부 작가와 집단은 식민주의와 독재, 민주화와 이주, 생태와 지역 공동체 같은 현실을 예술적 실천과 연결하면서 기존의 시장과 제도 중심 미술과 다른 생산방식을 실험해왔다.
 
인도네시아의 루앙루파(ruangrupa)가 2022년 documenta fifteen에서 제시한 ‘룸붕(lumbung)’은 대표적인 사례다. 공동체가 수확물을 함께 저장하고 나누는 공동 곡물창고의 개념에서 출발한 룸붕은 협업과 공유, 공동 자원의 운영을 전시의 구조 자체로 확장했다.
 
물론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미술을 하나의 경향으로 묶을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사회적 조건 속에서 미술의 생산과 관계, 운영방식 자체를 새롭게 실험해왔다는 점이다.
 
 
 
한국, 복합적인 미술 생태계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 홍콩, 싱가포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동시대미술의 기반을 형성해왔다.
 
중국과 같은 거대한 시장 규모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일본만큼 오랜 연구와 아카이브의 축적을 이루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국제 금융과 유통 기능이 도시 경쟁력의 핵심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대신 한국에서는 작가와 미술관, 비엔날레와 갤러리, 비영리·독립공간, 공공지원과 시장, 국제 네트워크가 비교적 높은 밀도로 함께 성장해왔다.
 
1995년 시작된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부산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과 공·사립미술관, 갤러리와 대안공간 등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한국 동시대미술의 생산 기반을 확장해왔다.
 
2022년 프리즈가 서울에 새로운 아트페어를 출범시킨 것 역시 이러한 기존 생태계와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 프리즈는 서울 진출을 발표하면서 서울의 활발한 창작 공동체와 미술 생태계를 중요한 배경으로 언급했다.
 
따라서 프리즈 서울이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만들어냈다기보다, 이미 축적되어 있던 한국 동시대미술의 생산 기반과 제도, 시장과 국제 네트워크가 프리즈 서울의 성립을 가능하게 한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의 강점은 어느 하나의 영역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데 있지 않다.
 
생산과 제도, 시장과 독립적 실천, 국제 네트워크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는 것.
 
이러한 복합성은 한국 동시대미술의 중요한 경쟁력이다.
 
그러나 생태계의 밀도가 곧바로 국제적인 담론 생산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활발한 전시와 시장에 비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 비평, 기록과 아카이브, 국제적 번역과 유통의 축적은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 할 영역이다.
 
한국 동시대미술의 다음 단계는 바로 이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아시아 미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아시아 미술을 하나의 중심이나 순위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규모와 생산 기반을, 일본은 역사와 연구의 축적을, 홍콩은 국제 유통과 연결을, 싱가포르는 정책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는 기존 제도와 다른 생산과 관계의 방식이 실험되고 있으며, 한국은 생산과 제도, 시장과 국제 네트워크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시아 동시대미술은 하나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중심이 동시에 작동하는 다극적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스스로를 아시아의 새로운 중심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생산하고, 그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하며, 세계와 연결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음 질문이 시작된다.
 
아시아 미술의 현실은 크게 변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바라보고 분류하는 세계의 프레임도 그만큼 변했는가.
 
현실의 지형이 변했다면 이제 그것을 바라보는 프레임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아시아 동시대미술은 과연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로운가?
 
 

References

Edward W. Said, 《Orientalism》, Pantheon Books, 1978.
John Clark, 《Modern Asian Art》, Craftsman House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8.
John Clark, 《Asian Modernities: Chinese and Thai Art Compared, 1980 to 1999》, Power Publications, 2010.
John Clark, Contemporary Asian Art at Biennales and Triennales: The 2005 Venice Biennale and Fukuoka Asian Triennale, the Sigg Collection, and the Yokohama and Guangzhou Triennales, caa.reviews, 2006.
Michelle Antoinette and Caroline Turner, eds.,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Connectivities and World-Making》, ANU Press, 2014.
Reiko Tomii, 《Radicalism in the Wilderness: International Contemporaneity and 1960s Art in Japan》, MIT Press, 2016.
Asia Art Archive, >The And: An Expanded Questionnaire on the Contemporary, Field Notes 01, 2012.
M+, About the Collection; M+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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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ze, Frieze Will Launch a New Fair in Seoul, 2021; Introducing Frieze Seoul 2022, 2022.
Art Basel & UBS, The Art Basel and UBS Global Art Market Report 2026, Arts Economics, 2026.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