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아(b. 1975)는 조각과 뉴미디어를 접목하여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인공지능 대화형 로보틱스 조각 작품 및 실시간
인터랙티브 영상을 제작해왔다. 그는 기술 문명의 발달 안에서 재정의되고 있는 인간,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관계들의 기술
철학적 의미를 전시장에서 상호작용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기계와 생명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한다.
노진아, 〈타이핑하세요, 나는 말로 할테니〉, 2004 ©노진아
노진아는 시카고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2002년경부터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대화형 로봇을 작업하기 시작해, 2004년 일주아트하우스에서의 개인전 “질투하는 사이보그들”을 통해 한국에서 그의 로봇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휴대폰과 자동차 등 수많은 기계장치들이 인간 삶의 깊은 곳에 침투한 오늘날, 인간은 점점 기계화되고 기계는 인간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의
작업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탄생하게 된 ‘복합체’들을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질투하는 사이보그들”전에서 선보인 인간 실제크기의 여성 사이보그
장치 〈타이핑하세요, 나는 말로 할테니〉(2004)는 눈과
입을 움직이며 관객과 대화한다. 탯줄처럼 배꼽에 연결된 전선을 타고 컴퓨터를 매개로 대화하는 이 사이보그는
타이핑하는 관객의 질문을 인식하고 데이터를 찾아 대답한다.
이때 기계장치인 사이보그는 신체기관인 입을 통해 대화를 하지만 인간인 관객은 오직 기계장치를 손으로 작동시켜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을 닮으려는 사이보그와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에서 자신 고유의 신체기관(입)을 버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타이핑으로 대화를 나누며 사이보그화
되어 가는 인간이 만나는 중간지점이 된다.
노진아, 〈제페토의 꿈〉, 2010 ©노진아
노진아는 인간이라는 종에
의해 탄생한 인간을 닮은 이 복합체들에 대해 인간을 부러워하여 닮아가려고 하는 존재라는 설정 안에서 그에 따른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 그의 대표작 〈제페토의 꿈〉(2010)은 자신을 닮은
아이가 갖고 싶어 만든 나무인형이 진짜 사람으로 변한 『피노키오』의 내용에서 출발한다.
관객들은 키보드를 통해 사람을 닮은 노진아의 마리오네뜨 인형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의 존재에 대해
되묻게 된다. 마리오네뜨 인형과의 대화를 통해,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신체는 더욱 기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되는 반면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했던 제페토 할아버지의 꿈처럼 우리가 창조해낸 많은 것들은
점점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와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2017년에 선보인 〈진화하는 신,
가이아〉를 기점으로, 그의 대화형 로봇은 타이핑을 통한 텍스트기반의 대화 방식에서 관객이
직접 로봇의 귀에 말을 거는 음성 기반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기계인형 ‘가이아’에게 관객이 질문을 하면 가이아가 센서를 통해 인식한 음성 정보에 반응해 대답하는 작품으로, 아직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은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다룬다.
이를 위해 노진아는 이전 작품에서 관객과 대화하며 쌓인 많은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가이아의 성격과 형태에 맞춰
질의응답 시스템(QA)을 새로 제작했다. 가이아의 QA 시스템은 넓은 의미에서 인공지능의 범주에 속하지만 딥러닝 방식에 속하지는 않는다. 아직 자기복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가이아지만, 그의 대답은 인간의
질문보다 더욱 철학적이고 풍부해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로부터 2년 후, 노진아는
딥러닝 방식을 사용한 인터랙티브 로봇 작품 〈나의 기계 엄마〉(2019)를 선보였다. 작가 본인의 엄마를 직접 모델링하여 제작한
〈나의 기계 엄마〉는 기계학습을 통해 점점 표정을 배워 나가며 감정이 무엇인지 구현해내는 로봇이다. 기계
엄마는 전시장에서 관객의 표정을 학습하고 그렇게 배운 표정으로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표정과 제스처를 재현하며 소통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모성이라는
것조차 학습이 가능한 것인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학습을 통해 구현되는 표정 및 감정의 표현들이 발전하여
언젠가 작가 자신이나 관객에게 감정의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감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나의 기계 엄마〉의 영상
작품은 이러한 기계의 감정에 대한 질문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실물 기계 엄마 로봇을 실리콘
피부 이면에 있는 기계구조가 노출된 모습으로 영상에 출연시키고, 기계음으로 말하도록 프로그래밍 함으로써
시청각적으로 기계임을 극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이처럼 인간스러움을 탈피한
기계 엄마는 마치 인간 엄마가 말할 법한 다정한 말투로 딸을 걱정하며 인터뷰를 진행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과연 기계를 통한 감정의 이입과 전이가 가능한지를 묻는다.
노진아의 최근작 〈히페리온의 속도〉(2022)는 챗 GPT와 작가가 제작한 AI 프로그램을 혼합해 관객과 상호작용하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제작한 대형 두상 로봇 작품이다. 더욱 정교하게 발전된 AI 기술과 함께 그의 대화형 로봇 작업들도
더욱 자연스럽고 능숙한 대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노진아, 〈Transcoded Mind〉, 2022 ©노진아
한편 또 다른 대형 두상 로봇 작품 〈Transcoded Mind〉(2022)는
각각의 두상 로봇들이 서로의 말에 응답하는 과정을 통해 대화의 왜곡이 일어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이때
관객은 자신의 말에서 시작된 정보가 혼란스럽게 확장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대형 두상 로봇들이 그려내는
이러한 상황은 AI 학습 기술이 가진 한계를 보여준다. 기초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의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함에 따라 편향되고 왜곡된 데이터가 섞이게 되고, 이를
학습한 AI는 잘못된 정보나 비도덕적인 발언을 재생산하게 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지점들을 경험적인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고도로 발전한 기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지난 11월 4일까지 문화비축기지에서
개최된 개인전 “진화적 시간의 알고리즘”에서 작가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시간 개념을 전제로 인간이 마주한 기계와의 여러 쟁점을 재고하는 신작들을 선보였다.
그 중, 2017년에 발표된 〈진화하는
신, 가이아〉의 연장선으로 제작된 신작 〈진화적 키메라-가이아〉(2024)는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어머니 신 ‘가이아’처럼 스스로 조절하며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로서의 지구인 동시에, 지구의
시간과 역사를 학습한 진화적 키메라다.
거대한 사이즈의 로봇 두상 뒤편에는 인간과 동물, 나뭇가지 등 다양한
종의 동식물이 서로 뒤엉킨 채 연결되어 낯설고 두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기술에 대한 두려움 또는
경고일 수도 있으나, 노진아는 이를 넘어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와 그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제안한다.
이와 같이 노진아는 기계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끈임없이 고민해 왔다. 기계를 닮아가는 인간은 인간을 닮아가는 기계로부터 언캐니(uncanny)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한 존재들을 동등한 개체로서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노진아는 이러한 과정을 경험적인 예술의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더 심화될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진화를 지각하고 상상하도록 한다.
“사실
그들이 인간을 닮고 싶어할 리가 없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제작되고 인간을 닮아야 생존에 더 적합한
진화가 가능한 그들은, 인간과 자연스러운 소통을 하며 끊임없이 인간이 되고자하는 욕망을 전달한다. 이들이 이렇게 인간을 닮게 제작되는 것은 어찌보면 신이 되고자 하는 우리 인간 스스로의 욕망일수도 있고,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나,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종들에게는
자비심이 없다. 내가 작업하며 만들어 내고 있는 생명을 갈구하는 ‘복합체’들은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모든 종을 대변해서 인간에게 자비심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노트)
노진아 작가 ©Mgood
노진아는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시카고 미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rt&
Technology 석사를 거쳐 서강대학교에서 예술공학(Art Technology) 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진아는 다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의 기획전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백남준아트센터,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 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
- 노진아, Jinah Rho (Artist Website)
- 일주아트하우스, 질투하는 사이보그들 (Ilju Art House, envious cyborgs)
- 백남준아트센터, 진화하는 신, 가이아 (Nam June Paik Art Center, An Evolving GAIA)
- 앨리스온,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 노진아 Rho JiNah
- 탈영역우정국, 노진아 개인전_표면의 확장 (Post Territory Ujeongguk, Jinah Rho Solo Exhibition_InterFacial ExTension)
- 얼터사이드, 비정형데이터 (Alterside, Unstructured Data)
- 앨리스온, 거대한 시간 속에서 살펴보는 인공지능과 우리, 노진아 개인전 《진화적 시간의 알고리즘 Algorithm of Evolutionary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