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b. 1982)는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책을 매개체로 삼아 한국사회의 미신과 합리성을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여행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개인 서사와 집단의 역사적 이야기를 결합하여 다큐멘터리와 극을 넘나드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임영주는 한국 사회의 과학기술 발전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비합리적인 믿음을 대비시켜 표현하며, 미신을 진실로 주장하거나 설득하기보다는 그 비합리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학과 합리성의 편견을 희극적으로 풍자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임영주, 〈애동〉, 2015 ©임영주

임영주는 무엇인가를 믿게 되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제도화된 거대 종교보다는 흔히 ‘미신’으로 단정되는, 일상적이고 통속적인 믿음에 대해 주로 작업을 해왔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임영주는 관심 있는 주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연구하거나 소문의 근원지를 방문하여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의 모습과 이야기를 수집한다. 이를 토대로 주제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주제 속의 구조와 관계를 연구하여 그림, 영상, 책 등의 결과물로 적절히 배분하여 작업한다.

임영주, 〈돌과 요정〉, 2016 ©임영주

작가는 2016년부터 우리의 일상 속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돌’이라는 자연적 물체를 둘러싼 미신에 대해 탐구해오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진행된 〈돌과 요정〉(2016) 프로젝트는 돌에 특별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작업은 작가가 돌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간 신앙이 현대 사회의 세속적인 믿음과 결합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작가는 돌과 같은 단순한 물질이 인간의 믿음을 입게 되는 순간 기이한 능력을 획득하게 되고, 또 다른 이미지를 얻게 되는 현상과 과정에 대해 연구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임영주는 운석과 금을 찾는 동호회에 주목했다. 이들은 금과 운석을 찾고자 수입이 되지 않는 행위를 반복하고 지속하는 모임으로, 작가는 자연 사물과 관련된 동호회 활동이 현대 사회의 문화가 아닌 민간 신앙이 계승된 대안적 유사 자연종교로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 전시 전경(스페이스 오뉴월, 2016) ©임영주

작가는 작은 돌멩이부터 거대한 촛대바위에 이르기까지 돌을 둘러싼 오래된 그리고 현존하는 미신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독특한 믿음의 구조를 발견하였고, 이를 영상, 설치, 회화의 형태로 재구성했다. 그 중, 영상 작업 〈돌과 요정〉(2016)은 작가가 운석 탐사 동호회와 사금 채취 동호회의 탐사에 동행하여 그들의 여정과 이야기들을 기록해 ‘판타지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한편 이들의 이야기를 책의 형태로 다룬 『괴석력』은 돌을 둘러싼 미신의 사례들을 질적연구 방법론과 같은 과학적 프레임을 차용해 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난 미신의 존재성을 기록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지질학과 같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론으로 온전히 해명되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미신’의 활력에 대해 명시한다.

임영주, 〈극광반사〉, 2017-2018 ©임영주

한편 영상 작업 〈극광반사〉(2017-2018)는 이미지 합성에 쓰이는 그린 스크린의 녹색을 주요한 메타포로 삼으며 촛대바위의 이미지부터 우주의 풍경을 명상적으로 담아낸다. 그린 스크린은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끔 하는 이미지 합성 기술에 사용되는 것으로, 이는 이 영상에서 믿음을 만드는 효과에 대한 상징으로 드러난다.

영상은 촛대바위의 이미지들이 깨지면서 생기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틈으로 드러난 녹색 테두리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킨다. 그리고 이미지와 사운드의 시차를 가진 채 진행되는 2개의 채널은 화면 조정을 거쳐 하나로 맞아떨어지게 되는데, 이 순간 영상은 먼 우주로 진입하게 된다.

임영주, 〈극광반사〉, 2017-2018 ©임영주

영상 속 녹색 빛은 이미지의 균열로 드러난 그린 스크린의 녹색 테두리에서 시작해 우주의 알 수 없는 형상의 녹색 빛 에너지체의 이미지로 펼쳐진다. 어떠한 ‘믿음’을 상징하는 녹색을 매개로 이어지는 촛대바위, 그린 스크린, 그리고 우주의 이미지는 자연적 대상, 기술적 대상, 그리고 과학적 대상 사이의 구분이 그 믿음의 실재 안에서 모호해짐을 의미한다.


임영주, 〈요석공주〉, 2018 ©임영주

2018년에 선보인 영상 작업 〈요석공주〉는 신라 무열왕의 딸이자 원효의 자식을 낳았지만 요석궁에 살았다 하여 이름 없이 그저 요석공주가 된 인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작가는 요석공주와 원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홍콩할매 귀신, 인터넷에 떠도는 현대 사회의 여러 이야기들을 이어 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임영주, 〈요석공주〉, 2018 ©두산아트센터

요석공주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지 1,50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상은 길에서 낯선 사람을 따라간 이후로 이명을 듣게 된 여자(요석공주)와 천이통(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연마하기 위해 수련의 길을 나선 남자(원효)가 소요산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영상에 파편적으로 삽입된 비유나 상징적인 장면은 이야기들이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과학적인 듯한 것과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비선형적으로 뒤섞이며,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임영주, 〈Waiting M〉, 2021 ©임영주

한편 2021년 영상 작업 〈Waiting M〉은 종말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에 대해 다룬다. 영상은 인터넷에서 만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은 이미지, 사운드, 이야기 등으로 구성된다.

세계 종말론과 같은 예언은 확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사로잡아왔다. 1990년대 세기말, 전 세계는 새천년이 오기 전에 인류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들썩였다. 1992년 한국에서는 어느 교회의 목사가 10월 28일 세계가 멸망하는 날 하늘로 들어 올려질 거라는 휴거론을 설파하였고, 이를 맹신하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임영주, 〈Waiting M〉, 2021 ©임영주

끝 이후를 기다리는 이들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현실을 마치 본편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대기실처럼 머무르며 죽음 이후 펼쳐질 영생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누구의 예언대로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영생의 순간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 전 세계는 예언된 적 없었던 전염병에 의한 재난을 직면하게 되었다. 작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기간을 견디며 지난 숱한 종말에 대한 약속을 떠올리게 되었다. 〈Waiting M〉은 팬데믹 동안 각국에 흩어져 있는 음악가, 과학자, 소설가, 역사학자, 예술가 등 다섯 명의 창작자와 함께 약속된 끝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작업이었다.

임영주, 〈미련 未練 Mi-ryeon〉, 2024, 페리지갤러리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사진: 이의록

그리고 그의 신작 〈미련 未練 Mi-ryeon〉(2024)에서 작가는 죽음 이후 이동하게 되는 차원에 대해 상상한다. 지난해 페리지갤러리에서 선보인 이 작업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2채널 영상과 VR 장치를 통한 체험형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독립된 공간에서 한 관객이 VR 장치를 통해 자신의 묫자리를 찾아가는 체험을 할 때, 그가 보는 장면은 다른 공간에서 상영되는 2채널 영상과 실시간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이 작업은 어느 누구도 전체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없게 된다. 관객은 경계가 나누어진 공간에서 한 곳만을 경험하거나 서로 다른 경계를 이동하면서 순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마치 한 편의 공연을 관람하듯 펼쳐지는 전시 구성은 시공간의 경계와 이동에 관한 주제와 연결되며 새로운 시공간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임영주, 〈미련 未練 Mi-ryeon〉, 2024, 페리지갤러리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사진: 이의록

임영주의 작업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게 되는 과정과 원인,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전승되고 이어지게 되는 믿음의 구조를 탐구하고 그 존재 자체에 다가가 감각의 형태로 드러낸다.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불가사의한 현상,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다른 차원을 상상하기 위한 매개체이자 동력이 된다.

“사실 믿음이 발생하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나 미신의 영역에서 불합리한 세계, 바깥의 세계라고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합리적 세계라고 믿고 있는 과학기술과 같은 영역에서도 오래전부터 시도해 온 원형적 믿음의 방법들을 발견하고 그 두 영역을 교차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임영주, MMCA 고양 레지던시 입주 작가 인터뷰, 2021)


임영주 작가 ©노블레스. 사진: 강민정

임영주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주요 개인전으로 “라이다 라이다 내 무덤 좀 찾아주소”(2023, 금천예술공장, 서울), “M”(2021, 아웃사이트, 서울), “인간과 나”(2021, Hall 1, 서울), “차르르 차르르”(2020, 갤러리조선, 서울), “AEDONG 애동”(2019, 두산갤러리 뉴욕) 등이 있다.

“마니에라”(2023, 두산갤러리 서울), “선셋 밸리 빌리지”(2021, 아트선재센터, 서울), “경이로운 전환”(2021, 부산현대미술관, 부산), ”더블비전”(2020, 아르코미술관, 서울)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두산갤러리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24년 프리즈 샤넬 어워드를 수상하였으며, 2025년 봄에는 뉴욕의 아망트 리서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