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광경, ©학고재갤러리
배우
하정우가 최근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는 소식은 미술계와 대중문화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학고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메이저 갤러리 중 하나로, 중요한 작가나 전도유망한 작가들이 전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연예인 작가가 개인전을 열었다는 점에서 미술계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
미술계는 오랜 기간 학교와 전공 그리고 인맥 중심의 작가 발굴과 전시 관행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구조는
미술계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한편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학고재
역시 오랜 기간동안 수준 높은 전시를 통해 국내에 명성을 쌓아온 대표적인 갤러리로서 작가의 수준이 곧 갤러리의 수준을 드러내기 때문에 작가의 선정에
매우 신중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번 하정우의 학고재 전시는 매우 이례적인 전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터테이너, 동시대 미술가의 ‘자격’을 묻다
한국에서
미술가로 활동하는 유명 연예인들을 세칭 ‘아터테이너’라고 부른다. 하정우 외에도 배우 박신양은 십여
년 넘게 순수 회화 작가로서 활동해왔고, 김혜수와 하지원 또한 개인전을 연 바 있다. 솔비는 퍼포먼스와 회화를 결합한 독창적 작업으로 주목받았으며, 배우
김희선은 최근 뉴욕 첼시의 한 갤러리에서 기획한 전시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권지안(솔비)와 그의 작품
해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다. 조니 뎁은 2022년 7월, 영국의 캐슬 파인 아트 갤러리에서 〈프렌즈 앤 히어로즈〉 시리즈를
발표하여 매진 사례를 기록했으며, 짐 캐리는 2017년 단편
다큐멘터리 “I Needed Color”를 통해 자신의 미술 작품과 창작 과정을 공개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루시 리우는 예명 ‘유 링(Lu Ling)’으로
활동하며, 1993년부터 회화, 조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뉴욕과 싱가포르에서 개인전을 열며 활발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johnnydepp
이들을
아터테이너라고 부르는 것은 연예인으로서 아티스트로도 활동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그 맥락을 보여준다. 과거
한국에서는 특정 학교와 선후배 등의 관계로 하나의 파벌처럼 미술계가 작동하며 작가 활동의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벌주의도 많이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AI의
발달로 정보와 기술이 널리 공유되면서, 누구나 창작자로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The Art of Lucy Liu (@TheArtofLucyLiu) / X
따라서
오늘날 전세계의 동시대 미술 씬은 전공이나 학벌, 그리고 미술계의 인맥 없이도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로 변모 된지 오래다. 서울대나 홍대 미대를 졸업했다는 것이 전세계 미술 씬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아직까지는 미학, 미술사, 비평 분야에서 활동을 하려면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일정 이상의 학위를 획득해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높지만, 이 부분도 이제는
다양한 인문학적 배경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접근 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비 전공자라 하더라도 독학으로 전문가 이상의 실력과 수준을 보여줘야만
자신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측면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은 대중의 인기가 높거나 비싼 가격에 작품이 판매된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높아지거나 중요해질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때 미술사에도 남고 나중에 비싼 가격에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의 하정우를 작가로서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작가로서의 경력과 전시 이력 면에서 그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활동이다. 그의 작품이 단순히 유명세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예술적 깊이와 독창성을 담고 있느냐를 두고 볼 일이다.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하여
결국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벌도 아니고, 인기도 아니며 작품의 진정성과 수준을 어떻게 갖추냐이다. 진정으로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면, 남은 시간에 하는 작업이 평생동안
모든 것을 바쳐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을 따라잡지는 못하리라.
따라서
한국의 미술계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미술계의 저변이 넓어지거나 새롭게 변모하는 흐름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직시하고 시대정신의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고 이러한 맥락에서 냉정하게 동시대 미술의 현재를 파악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즉
좀 더 높고 넓은 시각과 객관적이고 냉정한 비평적 태도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한국 동시대 미술의 입지를 새로운 지평에서 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기회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