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신민 작가(40)가 세계적인 미술장터 ‘아트바젤 홍콩 2025’에서 올해 신설된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의 첫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서울의 P21 갤러리 부스를 통해 ‘디스커버리즈’ 섹션에 참여했고, 최종 후보 3인
중 단 한 명에게 수여되는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상금 5만 달러(약 7,300만 원)와 마카오 전시 기회를 획득했다.

아트바젤홍콩 2025에 참가한 신민의 <유주얼 서스펙트> 전경, 2025 / 아트바젤홍콩
심사위원단은
신민 작가의 작업을 두고 “경직된 사회 구조 속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화상이자 그들에
대한 헌사”라고 평가했으며, 아트바젤 주최 측은 그의 작품을 ‘놓쳐서는 안 될 8개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신민, 종이 위에 새긴 분노와 연대의 조각
작가는
생계를 위해 프랜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시간을 바탕으로, 고강도·저임금의 현실 속에서 ‘머리망’을
쓰고 일하는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감시되고 대상화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녀의 재료는 점토와 종이, 연필과 크레용. 그러나 그 재료가 품고 있는 감정의 밀도는 무겁고
단단하다. 쉽게 찢어지고 변화하는 종이 위에 작가는 사회적 약자의 삶과 정념을 새긴다. 신민의 조각은 단지 형상이 아닌, 살아 있는 이야기다.

«장르 알레고리 – 조각적», 2018, 토탈미술관
현실에서
길어낸 예술, 여성 노동의 얼굴을 그리다
신민은
실제로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등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임금 고강도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작품화해왔다.

«장르 알레고리 – 조각적», 2018, 토탈미술관
연작
‘유주얼 서스펙트’는 고객의 민원이 들어오면 CCTV를 확인해 '머리카락을 흘린 범인'을 찾아야 하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실제적인 풍경에서 출발한다. 이 연작의
대표작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이>는 위생과 감시, 성별과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을 조형 언어로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녀는
종이를 10겹 이상 덧붙여 만든 인물형 조각에, 크레용과
연필로 표정을 그린다. 눈은 부릅떠 있고, 입은 소리를 지르듯
열려 있으며, 눈썹은 분노에 차 있다. 이들은 미소 짓지
않고, 친절하지 않으며,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 자체로 분노의 형상이다.

몸으로
체감한 자본주의, 종이 위에 새기다
신민은
한때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같이 버려지는 감자튀김 포대가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값싼
노동력의 상징”이라고 느꼈다. 그 감자포대를 이용해 작업한 <견상(犬狀) 자세
중인 알바생>(2014)은, 실제 맥도날드 유니폼을
그려 넣은 조각이다. 작가는 “가난의 허물을 벗어, 가난을 재현하는 재료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견상(犬狀)자세 중인 알바생» 전시장면, 2014 / 사진 : 신민, 출처 : 여성경제신문
그녀는
검은 리본 머리망을 한국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의 표상으로 보고, 이를 반복적으로 형상화한다. ‘우리의 기도’ 시리즈 속 인물들은 모두 머리망을 하고 있으나, 이들은 순종적이지 않다. 부릅뜬 눈과 날 선 눈썹, 강한 눈빛은 서비스 미소로 가려진 억압된 감정을 터뜨린다. 이는
작가가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분노하고 연대’한다는 선언이다.

«종이로 만든 거울» 전시장면, 2023 / 성북어린이미술관
기도와
분노의 조각, 종이로 만드는 부적
신민의
작업에는 항상 기도문이 포함된다. “이 조각을 보는 사람이 위험에서 빗겨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종이를 붙이고,
문장을 반복하며, 얼굴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작업을 “종이로 만드는 기도이자 부적”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조각은 단순한 물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형상이다. 연필 드로잉의
흔들림, 종이의 유약함, 반복된 손길 속에서 감정은 얼굴로
응집된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미래>는 그 정념이 집약된 작품이다. 탑돌이를 연상시키는 조각 주위를
관람객이 돌며, 종이에 소원을 적고, 직접 작품에 붙이며, 만져보는 참여형 작업이다. 그녀는 박제된 조각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조각을 만든다.
〈CCTV야, 우리들의 춤을 봐〉– 관종의
전략, 연대의 실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능수능란한 관종》에서 신민은 감시 카메라를 바라보며 춤추는 노동자들을 형상화한 〈CCTV야, 우리들의 춤을 봐〉를
선보였다. 감시는 곧 노출이 되고, 노출은 주목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관종이라는 전략적 정체성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사진 찍고, 퍼 나르고, 이야기하게 만든다. 관종은 그녀가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자, 예술의 확산 방식이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2024년에 열린 전시 《능수능란한 관종》 전시장면 / 부산현대미술관
작가는 SNS 중독자이며, 동시에 SNS를
통해 연대하고 연결되는 새로운 퍼포먼스를 실험한다. <같이 찍엉>은
흑역사가 될 수 있는 단체사진의 ‘인생샷’에서 사회적 연대를
상상한다. SNS를 통해 노동자들이 서로를 응원하고, 태그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 자체를 오늘날의 '연대 행위'로 해석한다.

신민의
조각은 귀엽고, 강하고, 살아 있다
신민의
조각은 미술의 아카데믹한 언어보다는 일상의 정서에서 출발한다. “학생이 미술 시간에 만든 공작물 같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그녀는 그러한 솔직하고 거친 표현이 가장 생명력
있다고 믿는다. 모든 작업에는 소원이 있고, 기도가 있고, 분노가 있으며, 웃음과 눈물이 함께 담겨 있다.

종이라는
약한 재료는 그녀의 분노를 담기에 오히려 적절하다. 변형되고, 찢어지고, 닳아 없어지는 그 물성 속에서 작가는 생명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약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연결된다. 작가는 “죽으면 튀김도 못 먹는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그 작업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종이로
만든 조각, 사회의 얼굴을 드러내다

신민은
현재 전쟁과 성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생물학적 시스템 안에서 암컷이
어떤 위치를 점해왔는지, 인류의 폭력의 역사가 어떻게 반복돼 왔는지를 고민한다. 그녀의 조각은 점점 더 거시적인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같다. 몸으로 체득한 현실, 여성과 노동, 그리고 사회를 향한 간절한 기도. 신민의 조각은 한국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진짜 속마음을 대변하는 분노의 스펙트럼이다.

신민(@fatshinmin)은 «능수능란한 관종»(부산현대미술관, 2024), «소원을 말해봐»(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4), «종이로 만든 거울»(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 2023), «世美»(더 그레이트 콜렉션, 2022),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 «2021 이소선 10주기 특별 기획전 – 목소리»(전태일기념관, 2021), «족쇄와 코뚜레»(OCI미술관, 2019), «장르 알레고리 – 조각적»(토탈미술관, 2018)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