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나는 1996년 밴슨홀 갤러리(프로비던스, 미국)에서 첫 개인전을 가지고 2000년 인사미술공간(서울, 한국)의 그룹전 《릴레이 릴레이》로 한국 미술계에 데뷔했다.
2002년 쌈지스페이스 레지던시 4기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해 서울옥션하우스(서울,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첫 개인전 이후 20회의 개인전에서 색상 회화(Color Collecting Painting), 스크림(Scream), 딩벳 회화(Dingbat Painting), 집(House) 연작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전 (요약)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양주, 한국),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금호미술관(서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서울, 한국), 일민미술관(서울, 한국), 삼성미술관 플라토(서울, 한국),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광주, 한국), 두산갤러리(뉴욕, 미국), 국제현대예술센터(로마, 이탈리아) 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수상 (선정)
2020년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한국저작권위원회 경상남도 진주혁신도시 ‘저작권교육체험관’건물 파사드), 2010년 제1회 두산연강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소장 (선정)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 한국),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삼성미술관 리움(서울, 한국), 일민미술관(서울, 한국), 독일은행(홍콩) 등이 있다.
주제와 개념
박미나는 우리를 둘러싼 색채/이미지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과 환경을 탐구한다. 색채와 제품의 형태로 존재하는 현실의 단면을 회화로 기록함으로써 사회문화의 구조를 분별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박미나는 작업 초기에 발표한〈원본: 복제(Original: Reproduction)〉(1995),〈리듬과 스피드(Rhythm & Speed)〉(1995)에서 제한된 물감군과 도형으로 인지와 오류, 보기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지는〈가을 하늘(Autumn Sky)〉(1995)에서 색상/색채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작업으로 연결하는 작가만의 작업 방식을 실험하기 시작한다.
이 실험은 이후〈오렌지 페인팅(Orange Painting〉(2002~2003),〈2004-블루-소파(2004-Blue-Sofe)〉(2004)로 대표되는 ‘색상 회화’ 혹은 ‘물감 수집 회화’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 연작은 특정 지역에서 판매되는 물감으로 그린 벽화, 특정 도시의 토착적 공공색을 수집하여 만든 지도 다이어그램 작업〈Color Landscape〉(2003~2020)로 확장한다.
그림의 형식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던 박미나는 2002년에 시작하여 2005년 본격화한〈비명(Scream)〉(2001~2019) 연작에서 도상과 주제가 회화에 들여옴으로써 변화를 보여준다.〈비명〉연작을 통해 작가는 도상과 주제에 기초해 색과 형태, 내용과 형식에 관한 배치와 연산을 연구하며 물감 자체의 산업적 질서를 드러낸다. 박미나가2007년 개인전《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서울, 한국)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딩뱃 회화는 그의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 연작이다. 이 작품에서 딩벳 폰트는 이미지가 언어를 대신하는 이미지-문자가 되고, 이것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구성한 회화는 해독이 불가능해 보이는 제목을 달고 제시된다.
딩벳 회화는 사용자의 의도, 또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기호로서의 이미지가 화면에 조합 병치됨으로써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으로 형성되는 현대 시각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편 박미나는〈Drawings〉(1998~2020),〈펜(Pen)〉연작으로 대표되는 드로잉 작업도 오래 지속해왔다. 드로잉 작업을 통해 그는 회화의 기본 조형 요소인 색, 형태, 그리기의 관습을 테스트하면서 그리기의 규율과 수행성에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회화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를 재료로 삼는 박미나는 재료의 사회성과 산업 생태계의 일부로서의 회화를 탐문해왔다. 그의 작업은 기록의 역할과 회화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색/이미지에 연관된 우리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비춘다. 이는 회화를 둘러싼 개념적 접근과 역사적 담론화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형식과 내용
박미나의 작업은 그리기 재료의 수집과 구매에서 출발한다. 대상은 주로 ‘색’과 관련된 것으로 물감, 페인트, 볼펜처럼 특정한 색상 자체를 보여주는 견본으로서의 물건이거나 일정한 시간의 하늘, 작가가 설정한 공간에서 추출한 색 표본 따위다.
작가는 딩벳 기호와 같은 레디메이드 도상과 작품 화면의 바탕이 되는 색칠공부 드로잉 종이를 수집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기가 정한 기준에 따라 수집한 재료를 다시 그의 원칙대로 분류, 정리 및 분석한다. 이렇게 마련된 데이터를 확대, 변형, 반복, 혼합의 과정을 거쳐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도상으로 재생산한다.
이렇듯 박미나의 체계적이고 명료한 작업 논리는 색, 형태, 그리기의 행위를 그대로 창작의 조건으로 재설정하는 것이다.
외견상 단순하고 그래픽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박미나의 작품은 데뷔 후 지금까지 미니멀리즘, 모노크롬 회화, 한국 팝아트 등 다양한 범주로 간주되곤 했다. 때로는 미술과 언어의 기본 도형을 기본 도형으로 한 추상화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유통되는 미술 재료, 당시 미술 시장의 선호, 사회문화적 관습 등 선결정된 시각 문화의 범위 안에서 생성되는 회화에 대한 광범위한 실험이자 탐문을 견지해왔다.
따라서 그의 작업을 미술의 어느 한 갈래로 정의하기보다는 “회화의 사회적 토대 혹은 지지체를 재료로 삼는 메타-회화”*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 임근준, 「박미나의 작업에 관해 내가 아는 사실 몇 가지와 그에 대한 불완전한 해석」, p. 1, 2017.
지형도와 지속성
박미나의 작업이 형성된 1990년대 중반은 포스트모던 회화가 유효성을 잃어가고 미술계는 정체성과 다문화주의라는 거대 담론 아래 방황하던 시기다. 그러나 박미나는 미술계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재현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박미나가 구축한 연구 방법과 표현형이 너무나 명료한 까닭에 그가 지속해온 색채의 표현성 연구만 부각되어 작업에 관한 이해가 축소되기도 해왔다.
최근 색채조사를 중심에 놓거나 재료학적 접근을 단초로 삼는 작업 등 박미나의 문제의식을 참조하거나 일부 공유하는 작업들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이 때로 형식만 부각하거나 질문 이후의 철학이 부재한 반면, 박미나는 자신이 선취한 회화적 방법론과 비평적, 개념적 관계를 분명히 한다.
한국에서 다소 좁게 정의되어 온 ‘그리기’와 ‘그리기 방법’의 개념을 확장하고, 이를 회화의 사회문화적 조건과 구조 위에서 재사유할 계기를 제공한다는 데에 그의 회화의 독보적 의미가 있다.
또한 박미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아트 바젤(스위스), 아모리쇼(미국) 등의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일본, 홍콩, 대만 등지의 아시아와 체코,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 그룹전에 참여함으로써 서구 예술계에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며 자기의 작품 세계를 다져가고 있다.
Nonprofit_Exhibition
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2023년 10월 8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최
박미나(b.1973) 작가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가 7월 28일부터 10월 8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된다.
박미나 작가는 각양각색의 물감들을 수집해 그 색들을 혼합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특징적인 작품활동을 해왔다. 색과 단순한 이미지들을 수집하는 행위는 곧 사회 문화적 메커니즘과 연동되어 회화의 화면에 펼쳐진다. 대표적으로는 전국에 있는 모든 오렌지색 물감을 수집해 작업한 ‘오렌지 페인팅’(2002- 2003), 간단한 이미지 혹은 기호로 문자를 대신하는 딩벳 폰트를 활용한 ‘딩벳 회화’ 작업 등이 있다. 이렇듯 박미나 작가의 작품은 기록적 성격을 띰과 동시에 이미지와 색이라는 회화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의 탐색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2023) 연작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오렌지 페인팅’ (2002-2003)과 2004년 국제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던 아홉 개의 색과 아홉 개의 가구를 매치한 작품과 동일한 형식으로 19년 만에 제작된 것이다. 블랙, 블루, 그린, 그레이, 오렌지, 레드, 바이올렛, 화이트, 옐로우 등 9개 명칭의 국내 유통 물감을 전수 조사하여 이를 평균 1.5cm 두께의 스트라이프 형태로 만든 후 이 규모에 부합하는 가구를 연결 짓는 방식이다. 이러한 작품은 회화 자체의 담론을 넘어 물감과 관련한 사회적 규약, 한국의 주거 문화 변화 등의 주제들을 함께 지시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 자체의 구성요소를 탐구하면서도 이를 통해 현실 세계와 제도를 포착해 내는 박미나 작가의 작품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