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b. 1984)은 조각의 문법을 활용하여 어떠한 상황이나 사건을 마주한 개인의 심리와 태도를 다룬다. 특히 작가는 보통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묘한 불편감을 주는 무언가를 마주하는 순간들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외부적 상황과 함께 내면에서 발현되는 개인의 심리적, 신체적 반응의 상호 작용을 다룬다.

윤지영, 〈달을보듯이보기〉, 2013 ©윤지영

윤지영은 전통적인 조각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작품 제작에 대한 독창적인 개념적 탐구를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그의 초기작인 퍼포먼스 영상 작업 〈달을보듯이보기〉(2013)는 조각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구체화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달을보듯이보기〉(2013)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 논리구조를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시각화하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레지던시 생활을 전전하며 ‘안정감’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들에 대한 고민을 이어오던 중에 구상된 이 작업은, “선행된 희생이 뒤따라오는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작가 자신의 질문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윤지영, 〈달을보듯이보기〉, 2013 ©윤지영

영상에서 작가는 천고가 높은 전시 공간의 천장에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묶은 채 철봉에 매달려 버티는 아찔한 순간을 연출한다. 그의 양 옆 사다리에 올라 탄 두 명의 조력자가 천장에 묶인 머리카락 매듭을 가위로 잘라 내어 몸이 자유로워지는 순간, 작가는 바닥에 놓인 빈 거북이 등딱지를 밟아 깨트리며 착지한다.

이처럼 영상 속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가,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두 명의 조력자, 그리고 착지지점에 놓인 거북이 등딱지라는 세 개의 항이 시각적 논리구조의 도식을 이룬다. 균형과 불안을 오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연결되는 이 삼각 구도는 작가의 신체가 하강하는 순간 생존과 희생의 인과관계가 발생한다. 작가는 무언가의 희생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이 구조 속에서 그 희생의 순환구조와 정당화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윤지영, 〈마슬로우의 오류(Dear Peer Artist 1)〉, 2014 ©윤지영

사물 혹은 신체 사이에서 작동하는 관계 작용으로써 자신의 주제를 논리적으로 구조화하여 시각의 형태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후 조각 작품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윤지영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마슬로우의 오류(Dear Peer Artist 1)〉(2014)의 경우 인간의 욕구에 대한 심리학 이론을 예술가의 삶에 빗대어 재해석하고 시각적으로 구조화한다.

윤지영은 이 작업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가진 창작의 욕구와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하위 욕구 사이의 어긋남과 불균형에 대해 다룬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심리학자 에이브리험 매슬로우(Abraham H. Maslow)가 세운 5단계 욕구 단계설의 고전적인 피라미드형 구조를 3차원의 조각으로 재해석했다.

방사 주기형 다이어그램의 수평적 구조를 가진 이 조형물은 에어 펌프로 부풀린 다섯 개의 구가 서로를 압박하다가 가장 약한 개체를 터트리도록 고안되었다. 윤지영이 세운 이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욕구는 수평적이지만 불가피하게 서로를 억압하는 관계에 놓이게 됨에 따라 결국 균형이 깨져 어딘가 한쪽이 터지게 된다.

윤지영, 〈적당한선에서〉, 2015 ©윤지영

2015년 작업인 〈적당한선에서〉에서는 〈달을보듯이보기〉에 나타난 희생의 구조가 재등장한다. 양쪽에 매달린 줄에 연결된 천으로 쌓여 한쪽 모서리로 서있는 사각 평판 조각, 다른 것들을 일으키기 위해 자기 몸을 눕혀 버티는 조각 등이 공간을 채우고, 한편에는 언제든 다른 조각들의 균형을 흩트릴 수 있는 기계 체조 링 한 쌍이 매달려 있다.

〈적당한선에서〉의 모든 조각들은 줄로 연결되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버틴다. 윤지영은 이에 대해 “마치 주어진 삶에 적응하기 위한 개인들의 타협과 같다”고 설명한다. 

윤지영, 〈구의 전개도는 없다〉, 2018 ©윤지영. 사진: 김상태.

한편 〈구의 전개도는 없다〉(2018)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의 구조에 영향을 미친 비극적인 사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작가의 반응으로써 제작되었다. 이 작업은 인체 형상의 전개도와, 그에 따라 제작된 실리콘 피부 조각으로 구성된다.

이 피부 조각은 3D 스캐닝 업체에서 구매한 남성(Matt)의 신체 측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의 표면을 전개도로 제작한 다음, 몰드를 만들어 실리콘으로 떠낸 것이다. 하지만 평면이 된 Matt의 신체는 다시 온전한 입체의 몸으로 재구성될 수 없다. 곡률 때문에 구를 평평하게 펼칠 수 없는 것처럼 인체 역시 완벽한 전개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윤지영, 〈구의 전개도는 없다〉, 2018 ©윤지영. 사진: 김상태.

따라서 이 작업에서 제시되는 것은 내부 구조 없이 펼쳐진 불완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3D 그래픽 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나 직접 바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미디어에서도 선박의 전복과 인명 피해 과정을 분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피해자들의 신체로 등장하는 추상적인 3D 도형은 Matt의 껍데기와 마찬가지로 그 표면 속 인간에 대해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작가는 이러한 신체 3D 구형 조각을 통해 재난의 재현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갖는 지각과 믿음, 지식의 근거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윤지영, 〈레다와 백조〉, 2019, “밤이 낮으로 변할 때”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9-2020) ©윤지영

이후 윤지영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여성혐오 범죄와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며 여성의 신체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다. 여성의 신체에 가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대응으로써 제작된 〈레다와 백조〉(2019)는 서양 미술사에서 수많은 남성 예술가들이 백조의 형상을 한 제우스가 레다를 강간하는 장면을 묘사한 도상을 차용한다.

남성 예술가들에 의해 묘사된 제우스의 강간 신화 도상에서 피해자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였다면, 윤지영은 이에 맞서듯이 작가의 손을 캐스팅한 조각이 백조(제우스)의 목을 꽉 움켜쥔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구형 조각에는 작가와 협업한 세 명의 여성 타투이스트들이 여성 혐오적 신화에 대한 각자만의 해석으로 그린 드로잉이 새겨져 있다.

윤지영, 〈옐로 블루스_〉, 2021, “옐로 블루스_”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1) ©윤지영. 사진: 이의록.

한편 〈옐로 블루스_〉(2021) 시리즈는 코로나19로 인한 장기간의 자가격리에서 비롯된 과도한 자의식 또는 개별화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조형적으로 풀어낸다. 구의 형태나 입방체, 또는 뾰족한 가시가 달린 〈옐로 블루스_〉의 조각들은 ‘신체’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인체의 모양과는 유사점이 없다.

대신 작가는 재료의 물성으로부터 신체적 의미를 발생시킨다. 이 작품에 쓰인 주 재료인 실리콘은 캐스팅이나 몰딩 작업을 통해 인체 내부 구조를 감싸는 피부의 역할을 하거나 외부 환경이나 힘에 의해 변형될 수 있는 실리콘의 가소성을 활용해 신체의 유기적인 작용을 떠올리게 한다.

윤지영, 〈미, 노〉, 2021 ©윤지영

그 중, 〈미, 노〉(2021)는 부피는 같지만 형태가 다른 6개의 다면체 도형들이 각자의 몸에 맞지 않는 실리콘 옷을 입고 있는 조각 작업이다. 이 실리콘 옷은 여섯 도형의 몸에서 떠낸 피부로, 본래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 다른 개체의 몸 위에 자리 잡는다.

완벽하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조각들은 원하는 모습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희망과 이에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겪는 괴리감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낸다. 이처럼 윤지영의 조각에서 실리콘은 ‘나’와 외부를 구분하는 물리적 경계로서의 피부를 은유하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다양한 감각들로 자아를 형성하는 심리적 경계로서의 피부 또한 의미한다.

윤지영,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2024,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2024) ©국립현대미술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가의 신작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2024)는 마치 내장을 꼬아 만든 듯한 거대한 그물 형태의 설치 작업이다. 이 작업 또한 이전부터 작가가 탐구해온 바깥에서 주어진 것과 안에서부터 발현되는 것 사이의 역학을 다룬다.

외부와 내부, 몸과 마음 사이의 상호 작용을 다뤄온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내밀한 고통과 바람을 내장 그물로 엮어 냈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을 한 이 내장 그물은 ‘더 나은’ 상태에 대한 작가의 소망이 담긴 일종의 봉헌의 그물이다. 이 ‘내장 그물’은 전시 초입에 설치되며 작가의 내밀한 영역 안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윤지영,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2024) ©국립현대미술관

이처럼 윤지영의 조각은 내밀한 마음의 작용을 드러낸다. 마지 유기체처럼 내외부와 상호 작용을 하며 상처 입거나 서로 의지하며 균형을 잡고 있는 그의 조각들은 작가 자신 또는 평범한 모든 이들이 품고 있는 내면의 상태를 비추고 있다.

”나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환경으로 개인에게 주어질 때 더 ‘잘’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아지기’ 위해 개인이 취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윤지영, 인천문화통신 3.0 인터뷰, 2020.08.26)

윤지영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윤지영은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예술대학교(SAIC)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개인전으로 “Yellow Blues_”(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21), “적당한선에서”(빙앤띵아카이브, 서울, 2015)와 “휘황찬란”(마나컨템포러리, 시카고, 미국, 2014) 등이 있다.

또한 윤지영은 “젊은모색 2021”(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1), “하나의 사건”(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0),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서울, 2019), “생태감”(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9)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4”의 후원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23년에는 DAAD 아티스트 인 베를린을 수상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맥도웰 레지던시 등 국내외 레지던시에 입주한 바 있으며, 현재 윤지영 작가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