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매체에 대해 우리가 흔히 갖는 환상은 그것이 정교한 질서와 연산으로 구성된 완벽한 세계일 것이라는 착각이다. 김천수는 완전무결한 것처럼 여겨지는 디지털 이미지와 사진의 재현 기술이 얼마나 취약하며, 또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는 고도로 발달한 사진 매체와 디지털 이미징 테크놀로지에 대한 탐색을 통해 현대 사회의 취약함을 드러내 보인다.
“세상은 불완전하고, 따라서 그것을 재현하는 사진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작은 오류들’에 관심을 갖는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 사건이나 도시의 개발을 둘러싼 갈등 역시 사회 제도가 오작동하여 생겨나는 오류의 하나이다.
김천수는 이러한 사회적 결함의 상태를 디지털 이미지의 오류에 빗대어,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세한 작은 오류는 화소가 밀집된 이미지 전체로, 과밀화된 도시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간다.
김천수는 일반적인 사진가들이 숨기려 하는 사진의 오류나 왜곡된 이미지 같은 것들을 작품의 전면에 등장시키고, 사진 이미지에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변형시킨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의 시선은 가상 공간이나 미지의 장소, 과거의 사건들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오류와 왜곡의 양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최근 작품에서 그는 현실 사회에 좀 더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사건들의 현장에 방문하고 그것을 기록한 사진 이미지를 왜곡함으로써 작가는 현실 세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가시화한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회화적 변형을 작가는 ‘새로운 미적 요소의 추가’라고 표현하며, 이질적 요소들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김천수는 작가가 다루어야 하는, 작가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공간과 사건들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소임을 고민하는 것이다.
작가는 잊혀가는 과거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비극을 애도한다. 동시에 냉정한 시선으로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을 직면한다. 지속적인 호흡으로 다층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김천수의 작품을 통해 관람자는 오늘날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형식과 내용
초기의 작업에서 김천수는 3D 온라인 게임 속의 풍경을 캡처하거나 인터넷 공간에 익명적 타인이 게시한 사진을 내려받아 편집하고 보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변형시켰다.
유학 시기부터는 타인의 촬영물을 활용하기보다 직접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미지에 대한 개입 역시 디지털 사진 이미지의 작동 프로세스 자체를 들여다보고 건드리는 방향으로 더욱 심화하였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2011~2012) 시리즈에서 작가는 1970~1990년대 영국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들의 실제 현장을 촬영하고, 코드 에디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디지털 이미지에 숨겨진 16진수 코드들을 수정했다.
작가가 이미지에 가한 테러 행위의 결과, 소박하고 평범한 거리 풍경은 코드 변형으로 훼손된다. 이미지를 뒤덮은 노이즈의 시각적 균열은 그 배경 장소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내상을 가시화한다.
한편 ‘로우-컷’(2018~ )과 ‘로우-패스’(2018~) 시리즈는 실제로 사진을 촬영하는 도구에 주목하여, 고도로 발달한 디지털 사진 기기가 갖는 물리적 한계와 오류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디지털카메라의 전자 셔터는 셔터 닫힘으로 인한 진동을 방지해주지만, 느린 스캔 속도로 인한 데이터 처리 지연으로 이미지가 흔들리거나 왜곡되기 쉽다. ‘로우-컷’ 시리즈에서는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초고층 아파트를 왜곡되게 촬영하고, 출력된 이미지 위에 하얀 잉크로 먹줄을 튕겨 현재의 건물이 들어서기 이전까지 공간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로우-패스〉는 빛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디지털카메라의 이미지 센서는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을 읽어 아날로그 신호에서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준다. 빛없이 찍었으므로 결과물은 완전히 검은 이미지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형형색색의 화소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사진이 되었다. 이미지 센서의 열로 인해 발생하는 이 노이즈는 고해상의 이미지일수록 증가하게 된다.
구체적인 소재나 개입의 방식, 그것이 드러내는 이미지의 작동 원리는 제각기 다르지만 작가의 작업은 모두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장소를 무대로 한다. 작가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현실 세계의 힘과 논리, 욕망이나 권력 관계와 같은 것들이 드러난다.
지형도와 지속성
완벽과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와 디지털 기술도 결국은 완전하지 못하다. 정보와 이미지가 범람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기술은 어떻게 역사를 기록할 것인가? 김천수의 작업은 사회와 세계에 대한 작가의 거시적 관념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사진에 대한 매체 미학적 담론을 촉발한다.
김천수는 사진의 영역 안에서 사진 이미지의 본질과 작동 원리를 탐구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사진의 형식에서 벗어나며 계속해서 사진의 개념과 한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관람자는 김천수의 작업을 통해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서의 사진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김천수의 작업은 사진 기술의 특질을 면밀히 관찰하고 다룰 뿐만 아니라, 미술적인 장치들을 통해 심미적 확장을 거듭한다. 작품 외적으로도 다양한 전시 기법을 통해 관람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작가가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 코드의 16진수 숫자를 만년필로 적은 원고지, 건축 현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먹선을 튕겨 이질적인 레이어를 더한 사진, 알루미늄 패널에 전사된 픽셀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계속해서 보여주는 소재와 변화된 기법은 사진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김천수 작가가 다음에는 어떤 작품과 전시로 찾아올지 더욱 기대하게 되는 지점이다.
Artist_K-Artist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67] 슬기로운 레저 생활
2023.08.25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김천수, Resort #01, 2007
여름이 말 그대로 다사다난하게 가고 있다. 날씨로
놀라고 국제 행사로 놀라고 범죄로 놀라고. 그 와중에 휴가철을 분명 지나긴 했는데, 찔끔 스쳐가 버린 시간이 벌써 저만큼 멀어진 기분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여름에 한두 달씩 바캉스를 간다고 부러워했는데 이제 경제 위기로 옛말이 되었다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남들 물놀이하는 것도 볼만큼 보았으니 이제 찬 바람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계절이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태양은 아직 기세 등등하고 햇볕에 그을린 손등이 뽀얗게 돌아오지도
않았다. 멀어져 가는 휴가철의 뒤통수가 아쉬울 때, 김천수(42) 작가의 ‘리조트(2007~2009)’ 연작이 안성맞춤이다. 동명의 첫 개인전을 2009년에 개최한 이후로 김천수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가상과 실제의 공간이 지니는 의미가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변모하고 규정되는지에 대한 작업을 계속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레저 활동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꾸준히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은 튀르키예(터키)의 유명 관광지인 파묵칼레에 관광 온 사람들을 흐릿하게 보여준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일까? 아니다. 흐릿해서 덜 보이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작가는 온라인에서 수집한 관광지 사진을 원본의 주인공이
중요하게 바라보았을 단서들을 지워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흐릿함은 짧은 순간 우리 눈의 망막에
맺히는 이미지와 비슷하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눈은 시야 전체를 동시에 선명하게 볼 수 없다. 한순간엔 중앙부의 극히 일부분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데, 눈동자를
움직여서 선명한 부분을 늘린다.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의 레저 생활은 작가의 흐릿한 눈으로 현실에서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타인의 추억이 나의 기대가 되기도 한다. 눈은 선명하게 보지 못해도
머리가 선명하게 보아내는 것이니, 선명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선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때론 사진 속에서 아쉬움은 희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