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반복이 만드는 섬세한 차이: "We Built this City, 우리가 만든 도시" - K-ARTNOW
박찬민 (b.1970) 대한민국, 서울

박찬민(b.1970)은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1997)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2008)했다. 이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사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2011)했다.

'친밀한 도시', '블록', '도시'

개인전 (요약)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도시 공간과 거주 환경에 대한 사진을 찍고 있다. 2008년 갤러리 룩스(서울, 한국) 신진작가 지원 공모에 선정되며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영국 유학 후 귀국하여 2013년 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파주, 한국)와 갤러리온(서울, 한국)에서 전시했고, 2015년 일우스페이스(서울, 한국)에서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전을 가졌다. 현재(2022)까지 아홉 차례의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21년 갤러리 진선(서울, 한국)에서 전시 《We Built This City》를 선보였다.

그룹전 (요약)

캐나다재외한국문화원(오타와, 캐나다), 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 한국),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스페이스K(대구, 한국), 서울역사박물관(서울, 한국), 주영한국문화원(런던, 영국), 동강사진박물관(영월, 한국)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제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KT&G 상상마당, 한국)로 선정되었으며 제6회 일우사진상 전시 부문(일우재단, 한국)을 수상했다.

작품소장 (선정)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한국), 일우재단(서울), 대구미술관(대구, 한국), 고은사진미술관(부산, 한국),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소버린예술재단(홍콩, 중국)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주제와 개념

조망하는 행위는 나무보다는 숲을, 세부보다는 전체를 보기 위한 시도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도식화된 구조를 발견하기 쉬워진다. 박찬민의 사진은 도시의 구조를 탐구하고, 도시 공간과 도시인의 삶의 본질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모든 도시에서 개인은 도시 안에 어떤 공간이 구축됐는지 알아야 비로소 자신의 삶의 색깔을 알 수 있다.”

박찬민의 여러 사진 연작들은 그 소재와 형식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도시의 건축물들을 화면에 담고 그래픽 프로그램을 사용한 후반 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아파트의 상호나 건물 외벽의 창문 등, 이미지 안의 특정 요소들을 제거한다. 공간 정보의 일부를 소거함으로써 촬영한 사진을 맥락화하는 전략을 통해 자신의 문제의식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도시 전체의 풍경은 전체적인 인상과 함께 도시의 구조를, 그리고 도시 사람들의 집합적인 삶의 모습을 뭉뚱그리고 압축하여 보여준다. 자연과 도시의 실재가 남겨져 있기에 여전히 어느 정도 사실적인 사진으로 보이지만, 관람자는 작가가 가한 변조의 흔적과 영역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작가가 무엇을 지웠는지, 그리고 무엇을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는지 관찰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작가는 도시 풍경을 사실적으로 촬영하고 현실의 일부를 지워나가는 작업을 통해 도시의 외피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 저변에 깔린 욕망의 구조를 드러낸다. 그의 사진은 도시 공간의 보편적인 본질을 가시화하는 한편 획일화된 도시적 삶에 대한 경각심을 조심스럽게 환기한다. 동시에 작가는 작품 전반에 걸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함으로써 도시에 대한 관람자들의 서로 다른 해석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형식과 내용

작가는 아파트 단지에서 낙후된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한국의 주거 문화와 그 부산물인 사회 문제들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었다. 주거 공간에 대한 첫 연작 ‘Intimate City’(2007~2009)는 희뿌연 연무 속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 풍경을 높은 곳에서 조망했다. 상호가 지워진 아파트들의 서로 다를 바 없는 외양은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이후 에든버러에서의 유학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아파트와 스코틀랜드의 공동 주택을 비교하여 연구했다. ‘Blocks’(2010~ ) 연작부터 작업에서 건물 외부의 수직면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공동 주택의 창과 발코니를 없애고 전체가 꽉 막힌 초현실적인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어떠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고 안에서도 외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은 창고나 컨테이너와 다를 바 없이 익명적인 공간,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된다.

한편 ‘Untitled; The Level of Deception’(2012~2014) 연작에서는 반대로 건물만 남기고 배경을 지운 유럽 도시들의 사진을 통해 맥락이 삭제된 도시 공간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Urbanscape; surrounded by Space’(2012~ ) 연작은 바짝 다가와 있는 건물들의 입면이 겹겹이 둘러싸여 기하학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건물의 표면이 매끈할수록 그 안에 있을 사람들의 호흡이나 생활감을 느끼기는 어려워진다.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장소를 바라보는 박찬민의 시선은 아파트로부터 점차 확대되어 도시 공간 전체를 향한다. ‘Cities’(2015~ )는 높은 장소에서 서울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도시들의 중경을 내려다본 사진 연작이다. 장난감 모형처럼 추상화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시의 사진은 어딘가 이질적이다. 작가는 건물들의 입면을 편평한 무채색의 색면으로 단순화하여 공간을 구성하는 선과 면을 강조했다.

박찬민의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수직으로 빽빽한 고층 건물이 치솟은 서울의 도시 구조와 함께 현대 사회의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도시의 보편화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익명화된 도시 전체, 건물이라기보다 벙어리가 된 듯 기능을 상실한 구조체 같은 것들을 맞닥뜨린다.

지형도와 지속성

공간의 정보가 지워져 있지만 지형과 인상, 특징적인 건물들의 스카이라인, 물줄기나 도로의 흐름 같은 것으로 관람자는 박찬민의 사진에 찍힌 장소를 이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곳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각 도시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박찬민은 자신의 작품에서 다양한 건축물과 여러 도시의 모습을 두루 포착하고 있지만, 작업의 목적은 이들의 특별한 유형학적 차이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박찬민이 바라보는 도시는 그 지명과 사소한 디테일에 차이가 있을 뿐 동질적인 공간이다. 용적률과 경제성이 지배하는 현대 도시는 인간의 삶의 모습까지도 표준화하여 대량생산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도시의 이러한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중립적으로 촬영된 이미지에 후반 작업으로 변조를 가했다. 역사성을 지닌 사건의 현장을 포착하거나 특정한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과 달리, 보다 회화적인 어법을 사용하여 새로운 맥락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도시는 다소 추상적인 형태로 시각화된다. 양식화된 추상회화가 구성만을 조금씩 바꾸어가며 기본적인 특질을 반복하는 것처럼, 도시도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그 수와 영역을 늘려나간다. ‘현실에 기반을 두되, 현실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표현의 도구’로서 사진을 활용하는 작가의 작업은 새로운 현대 사진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우리가 만드는 내일의 도시, 그리고 박찬민이 제시할 내일의 사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무수한 반복이 만드는 섬세한 차이: "We Built this City, 우리가 만든 도시"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기 이전 학생들이 세계 건축을 접할 방법은 글과 흑백사진뿐이었다. 몇몇 여행가들이 낸 세계여행 컬러 화보집이 해외 도시의 풍경을 접하는 최고의 통로였다. 그때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교수들이 보여준 거장 건축가들의 작품은 가슴을 뛰게 했었다. 교수연구실 책장에 꽂혀있었던 슬라이드 파일은 학술적 권위를 의미했다. 1990년대 들어서서 건축가들은 그룹을 지어 건축을 탐방하러 해외로 나갔다. 어깨는 무거운 카메라가 걸려있었고, 배낭에는 수십에서 수백 통의 슬라이드 필름이 들어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건축가는 별로 없다. 스마트폰으로 스냅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다. 정년을 앞둔 선배 교수연구실에서 미처 스캔하지 못한 수천 장의 이미지들이 슬라이드 파일 채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것을 본다. 국내외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슬라이드든 디지털 파일이든 이미지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더는 권위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이미지가 인터넷을 통하여 유포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준공된 신작 도면과 이미지를 담은 웹진이 매일 스마트폰을 통해 배달된다. 차단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이미지와 정보는 우리의 일상을 에워싸고 있다.
 
나는 도면, 역사 기록, 통계를 재료로 삼아 도시와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분석적 연구보다 직관적으로 포착한 사진 한 장을 통해 우리는 도시의 실체에 즉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찾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하고, 발품도 판다. 저작권 문제 이전에 글과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의 세계를 시각적 형태로 투사한 한 컷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기술복제시대’를 거쳐 디지털시대에 와 있지만, 사진의 ‘유일성’과 작가의 ‘아우라’는 여전히 살아있다.
 
박찬민의 새 전시 < We Built This City (2021) >는 < Intimate City (2008) >, < Untitled (2013) >, < Urbanscape: Surrounded by Space (2015) >, < Blocks (2015) > 에 이은 일련의 도시(Cities) 작업이다. 건축학자의 눈으로 본 박찬민의 사진은 자연이 뒤로 물러나 있는 도시의 중경(中景)이다. 3점 투시도 효과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올려다보는 도시 표면과 내려다보는 조감도의 중간지점을 카메라의 소점으로 잡았다. 시점은 길게 드리운 그림자, 두드러진 명암, 산광이 생기지 않는 정오 무렵이다. 스펙터클, 극적 분위기, 이벤트, 찰나적 장면을 배제한 망원렌즈로 포착한 무표정한 도시 풍경이다. 그리고 표피의 디테일이 지워진 건물은 육중한 매스로 남는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사람들을 지워버린, 나른한 정오의 초현실적 도시공간을 보는 것 같다.
 
박찬민은 근대예술의 저변에 깔린 ‘감정적 혹은 가치의 중립성’이라고 이를 표현했다. 근대주의 이전의 회화, 조각, 건축의 의미는 형태와 형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무엇이었다. 근대 프로젝트는 기의(記意)와 기표(記標)의 관계를 전복했다. 예술은 예술 외적 무엇을 표상하지 않는다. 형식과 형태의 구성적 논리, 질서, 법칙이 있을 뿐이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전달하는 매체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이는 예술 작품이 의도, 의미, 표상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창작자가 심어 놓은 하나의 서사구조와 하나의 해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체와 객체 간의 일방적 관계가 다층적, 상호적 관계로 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난해한 이론과 지식은 습득해야 할 전제조건이 아니다. 우리는 분석하고 해석한 후 감탄사를 내뱉지 않는다. 반응은 직관적이고 동시적이다. 논리의 세계 이전에 느낌의 세계에서 먼저 교감하기 때문이다. 분해하고 분석할 수는 없지만, 박찬민의 사진에는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소거하고 남은 중성의 아름다움이다..
 
사진집 < Blocks (2015) >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도가 높고, 태양이 작열하지 않고, 습도가 높은 영국의 소도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하늘 색깔, 건물과 길의 표면, 을씨년스러운 자연, 인적이 드문 길모퉁이 풍경 때문이다. 반면 의 고층건물 숲은 홍콩인지, 도쿄인지, 서울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창과 문을 지운 사진은 더욱더 그렇다.
 
지난 100년간 모더니즘을 전 세계에 유포한 원산지보다 아시아의 도시가 더 근대적이라는 사실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서울과 에든버러에서 사진을 배운 박찬민에게 ‘동양적 판타지’보다 아시아 도시의 같음과 미세한 차이가 더 현실적인 주제였을 것이다. 사진에서 드러난 동아시아 세 도시의 고층건물 매스와 실루엣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벽면 타일, 글자, 에어컨 실외기, 계단 난간과 같은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동아시아 도시 간의 진정한 차이는 거대하고 과시적인 랜드마크나 아이콘이 아니라 자잘한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이 유럽 도시가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박찬민의 사진은 말하고 있다.
 
몇 장의 사진, 그림, 책으로 스타가 될 수는 있지만, 그들을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작가는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을 감내하는 사람들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스승은 젊은 지망생에게 묻는다. “출판을 거부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작가의 첫걸음이다. 평생 출판을 못하더라도 글을 쓸 것인가?” 너무나 가혹한 질문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은 일은 누군가와 공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직업으로서 생존해야 한다. ‘공감’을 향한 열망과 ’생존’을 향한 몸부림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종이 앞뒤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는 두 세계를 마지막 장면까지 끌고 간다.
 
유튜브 조회 수와 인스타 감성이 압도하는 지금, 상업사진이나 다큐멘터리와 거리를 둔 사진작가의 삶은 외롭고 위태롭다. 그래도 매일 작업실에서 사전 리서치를 하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 라는 박찬민의 답이 돌아왔다. 지루한 반복 작업으로 밥을 먹는 장인들은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무게와 깊이는 주어진 것을 감내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인간의 궤적과 작품이 하나의 서사를 이룰 때 생겨난다고 믿는다. 박찬민의 십여 년간 이어온 도시작업 역시 그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지루한 반복의 노정(路程)일 것이다.
 
이번 전시 < We Built this City >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은 도시를 바라보는 박찬민의 관점이 더 과감해지고 내밀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상은 동아시아에서 우리 도시로 좁혀진 반면, 더 위에서, 더 멀리서 도시를 조망하고 있다. 건물, 산, 바다, 강, 도로, 다리, 고가도로, 조경을 아우르는 도시 풍경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대 도시는 욕망, 경쟁, 갈등, 절충의 집합체이다. 박찬민은 더 깊고 예리하게 이를 해부해 들어가고 있다.

References

Articles

Editor’s Pi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