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승호 작가의 유희적 회화 - K-ARTNOW
유승호 (b.1974) 대한민국, 서울

유승호는 한성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1999)하였으며 지금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개인전 (요약)

1999년 조성희 화랑에서 첫 개인전 《히히히》 (1999, 조성희 화랑, 서울, 한국)를 개최했다. 작가가 처음에 가졌단 작업의 취지가 잘 표현된 전시였다. 작가는 처음에 했던 생각과 마음가짐을 계속 가지고 작업하고 싶었는데 그것에 가장 부합한 전시였다.

2005년에는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echowords》 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는 ‘문자 산수화’와 ‘문자 놀이’ 두 시리즈를 선보였다. ‘echowords’는 ‘흉내내는 말’ 이라는 뜻의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며 의성어나 의태어와 같이 의미 없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그의 드로잉 작품들을 일컫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작가는 두산갤러리 뉴욕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는데 이때 《echowords》 (2013, 두산갤러리, 뉴욕, 미국) 를 개최했다. 작가는 작품에 쓰여 있는 말들과 거기서 보이는 이미지와의 상호관계에 주목하는데, ‘echowords’는 말이 이미지를 흉내 낼 수도 있고 이미지가 말을 흉내 낼 수도 있는 것이며 또한 이 둘의 어떤 상호작용일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2017년에는 P21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는 서예의 서체 중 초서를 활용한 붓글씨 형상이 ‘문자 놀이’ 시리즈가 주를 이뤘다. ‘문자 놀이’는 코미디언이나 아이들이 하는 유치한 말장난처럼 보이는 언어유희적인 작업이다.

예를 들어 <뇌출혈> 같은 경우에는 뇌혈관의 출혈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뇌혈관 장애를 나타내지만 영어에서는 ‘자연의’ 라는 뜻의 Natural 을 읽는 발음이 되기도 한다. <쉬> 는 소변을 눌 때 나는 의성어지만 영어로는 ‘그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룹전 (요약)

작가는 1998년 동아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공산미술제》에 참여했다. 이 전시는 작가가 처음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였다. 작품은 문자로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점으로 픽셀 단위를 이루기 때문에 기존의 페인팅과는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롭게 느끼며 좋은 호응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이고나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2006년 《오리엔탈 메타포》 (2006, 대안공간 루프, 서울, 한국) 전시에 참여했다. 한중일의 11명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에서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아시아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왜 현재 아시아 동시대 미술이 주목을 받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이 전시가 기획되었다.

2014년 두산 갤러리 서울에서 함진 작가와의 2인전 《클로즈업》 (2014, 두산갤러리, 서울, 한국)에 참여했다. 유승호는 종이 위에 잉크로 쓴 작은 글씨들이 모여 풍경을 만드는 회화를 선보인다.

이 전시는 확장과 반복, 축소와 변형의 방식으로 각자 개성 있는 형식을 보여주는 유승호, 함진의 작업을 통해 보는 거리에 따라 상반된 지각 경험을 선사하고, 이미지의 표면 아래 숨겨진 세계와 마주하게 한다.

이외에도 《신호탄》 (200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한글TRANS: 영감과 소통의 예술》 (2013,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한글 서書 x 라틴 타이포그래피-동서 문자문명의 대화 》 (2016, 예술의 전당 서예 박물관, 서울, 한국), 《The Elegance of Silence》 (2005, 모리 미술관, 도쿄, 일본) 등 국내외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작가는 1998년 제5회 공산미술제 공모전 우수상과 2002년 ‘제 22회 석남미술상’ 을 수상했다.

석남미술상은 석남미술문화재단에서 35세 미만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선정하는데 작가는 28살의 어린 나이에 선정되었다.

작품소장 (선정)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한국), 버거 콜렉션(홍콩, 홍콩),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두산갤러리(서울, 한국), 모리 미술관(도쿄, 일본), 휴스턴미술관(휴스턴, 미국) 등이 있다.

주제와 개념

유승호의 “의미를 분절하고 해체하고 무의미화 시키는 게 내 작업의 본질”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주제를 전제하기보다는 오히려 확정된 의미를 지연시키고 뒤틀어 원시적 유희와 직감에 호소하는 회화를 전개한다. 그의 회화는 ‘쓰기-그리기’의 관계에 기반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과 연상 작용에 의지해 펜으로 화면에 아주 작은 단어를 반복해 적음으로써 이미지를 구성한다. 예컨대, 그의 대표 연작 ‘문자산수’는 의성어나 유아적 문구처럼 특별한 의미가 없는 단어, 완성된 풍경과도 무관한 단어를 깨알같이 작게 반복해 적어 중국 산수 풍경을 완성한다.

단어와 형태-이미지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echowords(시늉말)’ 연작에서는 음차를 이용한 단어나 작가만의 독특한 발상이 번뜩이는 언어유희적인 ‘시늉말’을 사용하여 풍경을 재구성한다. 작품 안의 글자들은 작가가 참조한 원작이 지닌 사상의 의미와 무게를 벗겨낸다. 나아가 고화에 작가 특유의 재치와 해학이 엿보이는 현대적 사고방식을 불어넣어 재맥락화 한다.

2010년 개최된 개인전 《유치한》(갤러리 플랜트, 서울)에서는 색점을 찍어 그림을 만든다. 조형의 기본 단위이지만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점을 사용한 이미지는 이전의 문자산수와 달리 추상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작가가 상형문자의 원리를 반대로 적용해 글자와 이미지의 임의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다시 이것을 여러 차례 변형한 결과이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연작에서는 글자와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밀착되는 관계에 놓인다. 유승호는 텍스트의 의미가 규정되기 이전의 느슨한 연상과 반복에 주목하는데, 이 지점을 ‘시각의 놀이’와 ‘말 놀이’로 확장하여 자기 작업의 시적인 잠재력을 심화한다.

2017년 개인전 《머리부터 발끝까지》(P21, 서울)에서는 김정희, 석봉, 북송 휘종 등의 서체 중 초서를 활용한 붓글씨 형상의 대형 작품을 선보였다. 2019년 개인전 《라멜라 양》(씨알콜렉티브, 서울)에서는 글자가 화면의 공간에서 더욱더 자유롭게 부유하는 캔버스 페인팅을 발표했다. 유승호의 이전 작품과 동일한 방법론을 단초로 하지만, 화면에 펜 잉크의 번짐을 이용한 우연성을 끌어들임으로써 산수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유승호의 작품에서 무수한 글자/기호의 의미와 그 글자/기호가 만든 이미지가 보여주는 의미는 충돌과 중첩, 분리와 결합을 오간다. 이는 지각과 언어의 상호반영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텍스트와 이미지의 유동적 관계를 부각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작품은 ‘경계 흐리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바, 주제와 배경, 기호와 의미,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를 흐림으로써 예술이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

유승호 작가의 작업을 처음 대한 사람은 먼저 노동집약적인 글자의 연쇄 혹은 점묘 과정에 압도당한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풍경이나 단어로 보이는 이미지가 가까이 다가서면 무수히 많은 글자, 점, 형상의 총합인 탓에, 관람자는 몸과 시선을 움직이며 과거의 산수 풍경화의 재현을 보면서 동시에 기호가 얽히고설킨 이미지를 읽게 된다. 이 읽음의 과정에서 관객은 유승호 특유의 언어유희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내가 하는 놀이는 무거운 의미들을 가볍게 흘려보내고 화면의 공간 속으로 자유롭게 부유하는 것이다. 결국엔 즐김, 본능, 쾌락, 유머만이 남아있는 꿈속으로...그래서 화면 위의 글자와 이미지들은 나와 함께 히히히 웃으면서 놀아나고 있다.”

본인의 작업을 놀이에 비유하는 유승호 작업의 주요한 또 하나의 방식은 가벼운 용이다. 그러나 서양의 명화 등에서 형상을 가져오되, 그것의 기법, 사상, 이론 등 사적 맥락은 모두 배제한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를 시각적으로도 명랑하고 쾌활한 언어로 채움으로써 보고, 읽는 것에 더해 듣는 그림으로 만든다.

한편 유승호는 펜을 이용해 흑백 화면의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면, 2012년 《hypertext》(난지갤러리, 서울) 이후 설치 작업을 시도하는가 하면 2017년에는 형광색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캔버스에 미스트를 분사하여 라인 이미지를 뭉개고 변형함으로써, 무정형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지형도와 지속성

유승호는 데뷔 이래 그의 획기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왔다. 유승호는 오랜 미술의 역사에서 이분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를 허물었다. 나아가 시각적, 지각적, 청각적 요소가 다양한 경로로 중첩되는 회화를 전개하여 동시대 회화 현실에서 자리매김하였다.

작가는 “동양화를 그렸던 과거의 그들이 어떠했고 어떤 사고로 삶을 살았는지, 예술을 했는지” 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통 동양화와 서예에 관한 탐구를 지속한다.

더불어 단순히 한글의 단어뿐만 아니라 영어, 수많은 글자의 기원인 상형문자 즉 이미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언어의 세계에까지 다가간다. 그는 이렇듯 상상력과 연상력으로 근원과 전통을 재해석하여 옛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에, 작업의 원천이 마르지 않는다.

과거 현재를 넘나드는 통찰과 상상력에 유머와 해학을 더하여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는 점, 이것이 그의 작업이 국경을 넘는 포괄성을 가지고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유승호는 2005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문자산수 작품으로 추정가보다 2배 높은 HKD 56만4000(약 USD 7만2000)에 낙찰되었고, 2016년에 참가한 홍콩 바젤 아트페어와 아부다비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 시장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승호 작가의 유희적 회화
A Team

Yoo Seungho, 'a gold spoon,' 2018, Acrylic on canvas, 57 x 44 in (145 x 112 cm). Courtesy of the artist.

유승호 작가의 작품은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동양화 같다. 때로는 붓글씨나 추상화 작품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그림을 구성하는 것이 붓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천 개의 깨알 같은 글자들은 때로는 빽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흩어진 채 화면을 떠돌며 하나의 큰 이미지를 구성한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을 그림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만 피식하고 웃고 만다. 작가는 진지함이 아닌 유희적 재미를 전달하고자 ‘주루루룩’이나 ‘슈~’와 같이 만화책에서 볼 수 있는 의성어·의태어나, ‘으-씨’나 ‘으이그 무서워라’처럼 조금은 무례할 수도 있지만 농담 같은 구어적 문구들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낸다.

유승호 작가의 회화 작품은 ‘쓰기’를 통해 ‘그리기’가 이뤄진다. 작가는 펜과 붓을 이용해 떠오르는 단어들을 반복해 적음으로써 이미지의 윤곽과 형태를 구성한다. 작품은 눈으로 보는 이미지와 형상 그리고 머릿속으로 읽고 듣는 지각적인 문자를 아우른다.

유승호 작가의 작품 세계는 대표 연작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문자산수’, ‘시늉말’, ‘라멜라 양’ 연작이 있다.


Yoo Seungho, 'yodeleheeyoo~,' 2007, Ink on paper, 39 x 27 in (100 x 70 cm). Courtesy of the artist.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의 모습을 한 ‘문자산수’는 작품과 특별한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로 구성된 그림이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작가의 상상력과 연상 작용으로 이어져 있다. 2007년 작인 ‘yodeleheeyoo~’의 아름다운 경관은 알파벳으로 된 ‘요들레이히유’로 구성되어 있다.

요들은 유럽의 민속 음악으로 알프스에서 목동들이 가축을 부르거나 마을간 의사소통을 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림 속 산수는 동양의 것이지만 누구나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산 정상에 서 있다면 ‘yodeleheeyoo~’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뜬금없어 보이는 한편 어떠한 연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여 언어와 회화가 공존하고 시대와 문화, 권위의 경계가 사라지는 작품을 만든다.

Yoo Seungho, 'woo soo soo soo,' 2017, Acrylic on canvas, 57 x 44 in (145.5 x 112 cm). Courtesy of the artist.

‘시늉말’ 연작은 앞선 작업들보다 좀 더 추상적인 형태를 띤다. 이 연작은 말과 이미지의 연관성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탐구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단어로 인해 이미지가 연상될 수도 있고,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단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엉~엉’이라는 작업에서는 엉엉이라는 두 글자가 비스듬하게 적혀 있고 각 글자는 마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듯이 낱말들이 연둣빛 배경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작가는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텍스트, 또는 기호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묻는다.

Yoo Seungho, 'Miss Lamella,' 2019, Ink and acrylic on canvas, 96 x 72 in (245 x 183.6 cm). Courtesy of the artist.

작가는 ‘라멜라 양’ 연작에서 이미지와 선을 화학 작용 일으키듯 서로 조합시킨다. 작가는 색 펜으로 그린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고 그 위에 입자가 곱게 분사되는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선 드로잉의 번짐을 통해 우연한 형태가 생성되며 추상적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작가는 이 연작에서 라멜라 구조 또는 접힌 사슬의 개념을 차용한다. 라멜라 구조는 분자와 분자가 만나 층을 이루며 안정적이고 단단한 완성체를 만드는 구조를 뜻한다. 이 분자 구조는 실제로 완벽한 결정형 사슬 구조를 이루기 어렵고, 열을 가한 가공을 통해서만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형태가 나온다.

이처럼 작가도 분무기를 통해 화학 작용을 일으켜 선과 이미지를 조합함으로써 문자의 구조적 형태와 그것이 담는 의미, 텍스트에 대한 성찰을 시각화한다.
유승호 작가는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 기호와 의미, 글과 드로잉, 주제와 배경, 정형과 무정형 등 다양한 경계를 흐리고자 한다. 또한 나아가 이처럼 경계가 모호한 상태야말로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작가가 “이것은 (글씨를) 쓴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한 것처럼, 그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의미를 분절하고 해체하고 무의미화 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Artist Yoo Seungho. Photo by Kim Sun-A. ©Topclass.

유승호 작가는 씨알콜렉티브(2019), P21(2017), 뉴욕 두산갤러리(2013), 원앤제이 갤러리(2005) 등 다수의 국내외 주요 갤러리 및 비영리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두산 갤러리(2014), 서울시립미술관(2013), 국립현대미술관(2009), 일본의 모리미술관(2008), 대안공간 루프(2006) 등 여러 단체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또한 2002년에는 광주 비엔날레에 초빙되고, 1998년 제5회 공산미술제 공모전 우수상과 2002년 제22회 석남미술상을 수상했다.

10월 9일까지 진행되는 서울대학교미술관의 ““연속과 분절: 정탁영과 동시대 한국화 채집하기”에서 유승호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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