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 있는 신진 작가들을 알아보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꾸준하게 시상해 오고 있는 미술상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내에는 여러 개의 미술상이 존재한다. 그중 송은문화재단의 송은미술대상은 올해로 22회째를 맞이하였다. 송은에서는 2022년의 대상 수상자를 가리기 위해 20명의 뛰어난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을 12월 21부터 2월 18일까지 개최한다.
송은미술대상은 2001년부터 매년 운영하고 있는 미술상으로, 가장 역량 있는 동시대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고자 제정되었다. 2021년에는 미술상 제정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개편해 기존에 4명의 후보자를 선정해 왔던 방식을 2021년 전시부터는 20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본선에 오른 20명의 작가들은 최근 동시대 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 지형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더하였다. 송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한국 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올해 공모에는 총 503명이 지원해 예선을 거쳤다. 본선에 오른 20명의 작가로는 고재욱, 김영글, 김현석, 노은주, 박아람, 박윤주, 박그림, 손혜경, 안성석, 이희준, 이수진, 장종완, 전보경, 전혜주, 전혜림, 정지현, 정희민, 최고은, 애나한, 황원해가 있으며, 이들은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사운드 등 여러 장르를 아울러 작업한다.
20명의 작가들은 전시에 참여하기 위한 제반 비용을 지원받게 되며, 전시 중에 이뤄지는 심사를 통해 최종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면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키우고 앞으로 더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종 대상 수상자는 2023년 1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고재욱(b. 1983) 작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한 현실이나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작업을 한다.
작가의 대표 프로젝트로는 실제 크기의 본인 이미지를 해외에 있는 지인들에게 보내 함께 사진을 찍게 하여 남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심리를 드러낸 프로젝트 ‘On Your Mark’와 노래방이라는 형태를 통해 고립감에서 벗어나 남들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풀어낸 프로젝트 ‘Die for’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콘솔 게임 속 등장하는 유색 인종, 특히 아시아인들을 실제 사람 크기의 조형물로 제작했다. 게임 매체가 담은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인식 기저에 깔려 있는 서구 중심적 사고에 대해서 돌아보게끔 한다.
문학과 미술을 전공한 김영글(b. 1980) 작가는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언어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학적 상상을 하거나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문화적 이미지를 독해한다.
예를 들어 ‘돌 탐구 연작’과 같은 작업에서 작가는 인간이 돌이라는 사물에 부여한 다양한 의미를 수집하고 사진 아카이브 형식으로 분류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글쓰기로 제시한다. ‘파란 나라’와 같은 작품에서는 어떤 주제에서 출발하여 한국 근현대사에서 잊힌 대상을 드러낸다.
송은에서 김영글 작가는 작가로서 가졌던 근본적인 고민에서 얻은 교훈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작가가 전시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작가는 그 과정 속에서 얻은 생각을 전시를 통해 보여 준다.
김현석(b. 1988) 작가는 “기술의 동시대성”을 주제로 작업한다. 오늘날 미디어가 재현해 내는 이미지와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며 현대 매체의 기술이 갖는 특이성을 연구한다. 그리고 그 기술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들의 특유한 운동성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김현석 작가는 최근 급격하게 발전하는 인공 지능 모델을 기반으로 제작한 2 채널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개의 모니터 화면에는 각각 인공 지능 모델로 생성된 가상의 두 인물인 Dora 와 Alice가 서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이미지’와 ‘언어’에 대해 문답하며 미래의 시·지각성을 점치고 있다.
노은주(b. 1988) 작가는 도시를 이루는 풍경과 그 안에 담긴 기초적인 형태들을 드로잉과 회화를 중심으로 탐구한다. 작가는 주변의 사물들을 에스키스 드로잉으로 그리고 이를 3D 모델링으로 미니어처 조각으로 만들어 작가만의 기준으로 이를 재배치해 다시 회화로 옮겨 낸다.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나무 조각이나 철골의 모습, 시드는 듯한 모습을 한 꽃, 굳은 건지 녹아내리는 건지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은 무력함, 지루함, 불안함 등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 어딘지 미완성된 듯한 느낌은 차가운 색채, 연극적 시선, 얇지만 날 선 형태를 통해 긴장감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의 정물화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한 장면을 그린다.
불교 회화에 사용되는 기법과 주제를 활용해 개인의 이야기를 펼치는 박그림(b. 1987) 작가의 회화 작업은 성 소수자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로 확장된다. 비단 앞뒤로 수십 번씩 채색하여 섬세하게 그려 낸 작품들은 비주류 장르인 불화, 오늘날 거부되는 도제식 작업 방식, 그리고 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혼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등을 담아낸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심호도 춘수’는 사찰 건물 뒤편에 주로 그려지는 벽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심우도’ 대신 작가는 자신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그렸다. 3폭의 화면에는 불교적 요소, 작가 개인이 가졌던 갈등, 그리고 이를 승화하는 서사를 보여 준다.
박아람(b. 1986) 작가는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예술 매체를 활용하여 회화의 가능성을 넓히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가상과 현실이 모호해지고, 수치로 표시되는 지표로 구성되는 오늘날, 우리가 새롭게 인식하는 시공간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작가는 구글시트나 스프레드시트 같은 소프트웨어의 연산 방식을 색과 면으로 표현해 오늘날의 ‘공간 인식 방식과 이미지 생산 방식’을 재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그림을 고민한 작업이 송은 1층 로비에 설치되었다. 로비의 회전문과도 닮은 작품은 회화, 조각, 퍼포먼스를 모두 아우른다.
박윤주(b. 1985) 작가는 건축 설계 및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VR 필름 등을 활용해 사물의 운동성이 갖는 생동감을 탐구하고 가상 공간을 공공의 영역으로 설정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에시드 투 요크’(2022)는 가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에 산성 액체가 계속 흘러나와 장소라는 것이 휘발되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상 속 건축 구조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산성 액체로 인해 끊임없이 열리고, 맺는 것 없이 시작만 반복되는 공간이 되어 완성되지 않고 계속적인 수행만 이루어진다.
손혜경(b. 1979) 작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생활 상품을 가지고 설치와 조각 작업을 한다. 작가는 상품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작동된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리와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순을 조형적 구성을 통해 담아내고자 한다.
송은에서 전시된 ‘축적’(2022)은 책꽂이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책꽂이라는 상품은 대량 생산 시스템 속에 무수히 많이 생산되고 집적되어 판매된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간의 사회적 관계를 비롯한 모든 것을 이러한 기준에서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이렇듯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산이 축적되는 체제를 살펴보고 있다.
안성석(b. 1985) 작가는 사진에서부터 회화, 설치, 영상, 게임, 가상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삶과 환경에 호기심을 갖고 이를 작업으로 풀어낸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작가 본인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를 오간다. 송은에서는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담긴 VR작업을 내놨다. 작가는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죽음을 기록한다. 작가는 죽음이 기록됨으로써 사적인 것인 아닌 책임과 의무가 지워지는 것이 된다는 점에 입각해 억울한 죽음을 VR형태로 기록하여 개인들의 희생을 상기시킨다.
애나한(b. 1982) 작가에게 있어서 공간은 물리적인 장소인 동시에 어떠한 심리적인 접근이 가능한 곳이다. 작가는 특정 공간만이 갖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공간을 변형하는 작업을 펼쳐 왔다. 작가는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공간이 갖는 물성과 함께 내면의 감성을 끌어내고 공유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송은의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장 한편에 있는 공간을 캔버스처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이자 숨겨진 작은 우주를 만들어 냈다. 작가는 송은의 건축가 피에르 드 뫼롱이 송은의 공간이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우주로 태어나길 바랐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