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포스터 /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2026년 9월 22일부터 2027년 3월 7일까지 열리는 《에퀴녹스: 추분_춘분》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자연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오늘의 생활환경으로 확장해 온 장응복의 작업 세계를 소개한다. 약 40년에 걸친 활동을 조명하는 이번 현대공예 기증특별전에는 무늬와 생활기물, 가구, 조명, 공간 설치 등 약 400점이 출품된다.
 
장응복은 텍스타일 디자인을 바탕으로 공예와 실내 공간을 연결해 온 디자이너다. 1986년 토털 인테리어숍 ‘모노(MONO)’를 설립한 그는 한국의 문화와 미감을 담은 직물을 선보였으며, 이후 여러 분야의 공예가와 협업하면서 무늬의 쓰임을 넓혀 왔다. 그의 작업에서 무늬는 사물의 표면을 꾸미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재료와 기술을 연결하고, 가구와 공간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생활 속에서 자연과 계절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된다.
 
전시 제목인 ‘에퀴녹스(Equinox)’는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을 가리킨다. 추분 무렵 시작해 이듬해 춘분을 앞두고 마무리되는 전시에는 자연의 순환과 균형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담겨 있다. 관람객은 ‘무늬집’, ‘집 속의 집’, ‘탑돌이’로 이어지는 세 부분을 따라가며, 작은 무늬 하나가 사물과 공간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에퀴녹스: 추분_춘분》의 ‘무늬집’ 전시 전경과 〈조각잇기-벽〉(왼쪽 아래) / 사진 제공: 서울공예박물관

첫 번째 공간인 ‘무늬집’에서는 장응복이 디자인한 100여 종의 무늬를 만난다. 그 바탕에는 한국의 전통 회화와 생활용품, 자연에서 가져온 이미지가 있다. 꽃과 물고기, 부채와 숟가락처럼 형태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소재들이 반복과 변주를 거치며 새로운 무늬를 이룬다. 한국 전통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도 색채와 선, 형태의 리듬을 통해 작업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표작 〈조각잇기-벽〉은 72개의 나무틀에 실크와 한지, 유리 등으로 표현한 무늬를 결합한 대형 작품이다. 한지는 한국의 전통 종이로, 이 작품에서는 직물이나 유리와 나란히 놓이며 서로 다른 표면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각 틀에는 모란과 꽃신, 물고기, 십장생 등의 이미지가 담긴다. 십장생은 해와 산, 소나무, 학 등 오래 사는 삶을 상징하는 열 가지 소재를 묶은 전통 도상이다. 이러한 상징과 일상의 사물들이 하나의 벽 안에서 만나면서, 한국의 생활문화에 축적된 이미지가 동시대 디자인의 구성 요소로 다시 읽힌다.


《에퀴녹스: 추분_춘분》의 ‘집 속의 집’ 전시 전경(왼쪽 위), 〈집-집〉(오른쪽 위), 〈빛 기둥 캐비닛〉(왼쪽 아래), 〈은행나무〉(오른쪽 아래) / 사진 제공: 서울공예박물관

〈조각잇기-벽〉은 개별 무늬를 가까이 살펴보는 재미와 전체 구성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함께 제공한다. 서로 다른 색과 재료를 담은 작은 틀들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큰 화면을 이루는 방식은, 여러 공예 분야를 함께 엮어 온 장응복의 작업 태도를 보여준다.
 
 
두 번째 공간 ‘집 속의 집’에서는 무늬가 생활기물과 가구, 실내 환경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책과 여러 물건을 선반 안에 배치해 그린 한국의 전통 회화인 책가도, 그리고 가구의 구조에서 작지만 온전한 하나의 집을 상상해 왔다. 물건을 담는 가구와 사람이 머무는 집을 연결하는 이러한 시선은 전시실 안에 또 하나의 생활공간을 만들어낸다.
 
〈집-집〉은 목재 골조에 무늬를 입힌 한지와 직물, 가구와 생활 공예품을 조합할 수 있도록 제작한 모듈형 설치작품이다. 골조와 면, 그 안에 놓인 사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공간을 형성한다. 관람객은 여기에서 장응복의 무늬가 실제 생활환경 안에서 어떤 크기와 밀도, 분위기를 갖게 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 공간에는 전통 기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지장’ 연작과 〈이십사절기 화문석〉, 〈은행나무〉 등도 소개된다. 화문석은 식물성 재료를 엮어 무늬를 넣은 전통 자리이며, 이십사절기는 한 해의 계절 변화를 스물네 구간으로 나누어 살피는 시간 체계다. 작품의 이름에는 바닥에 깔고 사용하는 생활용품과 계절을 관찰해 온 문화가 함께 담긴다. 무늬와 공예를 통해 집 안에 자연의 시간을 들이는 셈이다.


《에퀴녹스: 추분_춘분》 전시실 입구(왼쪽 위)와 ‘탑돌이’ 전시 전경 /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전시의 마지막 부분인 ‘탑돌이’에서는 무늬와 공예품, 영상과 소리가 하나의 체험형 공간을 이룬다. 쪽빛의 〈그리운 금강산〉과 〈바다〉가 공간을 둥글게 감싸고, 중앙에는 전통 종이우산의 구조를 활용한 〈낭화 지우산 샹들리에〉가 자리한다. 별자리 무늬 아래 펼쳐진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직접 걸으며 산과 바다, 하늘로 이어지는 풍경을 마주한다.
 
〈바다〉는 국가무형유산 염색장 정관채와 협업한 쪽염 작품이다. 쪽염은 쪽이라는 식물에서 얻은 색으로 천 등을 푸르게 물들이는 염색 방식이다. 전통 염색 기술에서 나온 푸른빛이 공간을 감싸는 풍경으로 확장되면서, 색채 자체가 전시를 경험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에퀴녹스: 추분_춘분》의 ‘탑돌이’ 공간에 설치된 〈낭화 지우산 샹들리에〉 전경과 세부 / 사진 제공: 서울공예박물관

〈낭화 지우산 샹들리에〉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지우산장 윤규상과 함께 제작했다. 지우산은 종이를 씌워 만든 전통 우산이며, 지우산장은 이를 만드는 기술을 이어가는 장인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는 우산의 펼쳐진 구조가 빛을 품는 조명으로 바뀐다. 크기가 다른 우산 형태가 층층이 이어져 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종이와 우산살의 구조가 조명의 형태와 표정을 만든다.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스탠다드에이와 협업한 〈부채 테이블〉도 같은 공간에서 소개된다.
 
이처럼 전시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협업이다. 장응복은 염색과 직조, 목공, 종이우산 제작 등 서로 다른 분야의 기술을 자신의 무늬와 연결해 왔다. 각 재료와 제작 방식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하나의 생활환경 안에서 어우러지도록 조율하는 과정이다.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무늬를 넘어, 그것을 사물로 만들고 공간 안에 자리하게 한 여러 사람의 기술과 감각까지 함께 보게 된다.
 
《에퀴녹스: 추분_춘분》은 한국의 공예문화를 색과 재료, 사물과 공간의 관계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전시다. 전통 문양의 이름과 상징을 모두 알지 못하더라도, 무늬가 반복되는 방식과 종이·직물·나무가 만드는 질감, 푸른빛과 조명이 어우러진 공간을 통해 작업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경험을 따라가며 한국의 전통이 오늘의 집과 생활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에퀴녹스: 추분_춘분》 연계 체험 프로그램 관련 이미지. 쪽염 직물(위)과 지우산(아래) / 사진 제공: 서울공예박물관

전시와 연계한 강연과 워크숍도 마련된다. 10월 17일에는 장응복이 자신의 작업과 공예·디자인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강연이 열리며, 11월 20일과 12월 18일에는 디자인 전공 학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무늬 디자인 워크숍이 진행된다. 정관채의 나주 공방에서 열리는 쪽염 클래스와 윤규상의 전주 공방에서 진행되는 지우산 클래스도 예정돼 있다. 프로그램별 신청 방법과 참여 조건은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응복 작가 /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장응복
 
장응복(b. 1961)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자연에서 찾은 무늬를 직물·가구·공간으로 확장해 온 디자이너다. 홍익대학교 섬유예술과를 졸업하고 1986년 모노콜렉션의 전신인 ‘모노’를 설립했다. (https://monocollection.com)
 
여러 분야의 공예 장인과 협업하며 한국적 미감을 현대의 생활환경에 접목해 왔으며,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북촌 초입에 들어선 서울공예박물관 /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은 한국의 전통공예부터 현대공예까지 재료와 기술, 생활문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서울시립 박물관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자리하며,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공예가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한다.
 
 
 
전시정보
 
전시 기간: 2026년 9월 22일–2027년 3월 7일
장소: 서울공예박물관,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4
참고: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전시 보도자료
웹사이트: 서울공예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