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내 미술계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프리즈 서울’이다. 프리즈 서울의 개최는 국내 미술계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한국 미술 시장으로 돌리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다양한 글로벌 미술계 인사와 미술 기관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프리즈를 기회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의 작가, 갤러리, 컬렉터의 생태계가 매우 탄탄하다는 평가를 내놨고 예술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적극적인 태도에 놀라서 돌아가기도 했다. 다만 이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점은 한국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점과 언어적 장벽이었다.
(재)파라다이스문화재단과 서울대학교 경영연구소는 이러한 한계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고자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후원을 받아 지난 12월 21일 한국 최초의 미술 시장 영문 리포트 “코리아 아트마켓 2022”를 발간했다.
“코리아 아트마켓 2022”는 아트 페어, 경매, 컬렉터 트렌드, 작가론, 미술관 전시 동향 등 여러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술계와 학계 전문가들이 실증적 근거와 수치에 입각한 분석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 시장의 경향성을 살펴보고 트렌드를 전망하는 리포트이다. 해당 보고서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의 다양한 트렌드와 이슈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2022년 한국 미술 시장의 경향을 크게 8가지 특징으로 분석했다.
우선 한국 미술 시장의 급격한 규모 성장이 특징으로 꼽혔다. 국내 미술 시장은 2018년에서 2020년까지 4000억 원에 못 미쳤던 규모를 2021년 약 9223억으로 약 세 배 가까이 키웠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도 2배에 가까운 금액이었으며, 2022년에는 전체 규모가 1조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내년에는 이러한 성장세가 이어갈 것으로 보았다. 다만 경매사는 일부 조정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매 시장은 2021년 3분기에 정점을 기록하고 이후 조정기에 접어드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은 과도한 경쟁을 억제하고 가격 거품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방향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한국 미술 시장의 규모 성장은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한국의 MZ세대의 유입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컬렉터층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층의 유입도 해당되었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미술 시장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보인 그룹은 1980년대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그 위 세대이자 1960년대 중반에 출생한 X세대라고 보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진행한 한국 미술품 구매자에 대한 설문의 응답자의 85%가 두 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세대 간 큰 차이점이라면 밀레니얼 세대 수집가들은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와 비교해 외국 작가를 비롯한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술품 구매자의 영향력과 프리즈 서울 개최에 힘입어 2022년에 급등한 아트 페어 시장 점유율이 큰 특징으로 꼽히기도 했다. 보고서는 갤러리 위주였던 한국 미술 시장에서 아트 페어 점유율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갤러리, 경매 회사 그리고 아트 페어의 시장 점유율이 각각 48%, 35%, 1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아트 페어 개최 수에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팬데믹 이전 2019년에는 49개였던 아트 페어가 802억 원의 매출 규모를 이루었다면, 2021년에는 76개로 증가했으며 규모는 약 1543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젊은 작가와 젊은 컬렉터들의 유입은 미술 시장의 환경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보고서는 한국 미술 시장이 미국만큼이나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DAO(탈중앙화된 자율조직), AI(인공 지능), 미술품 조각 투자 등 기술적 변화를 적극 수용했다고 보았다. 지난 1년 반 동안 전국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기반으로 개인 또는 공동 작업을 진행했으며, 다수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미술품 조각 투자의 경우, 해당 플랫폼이 출범한 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은 2022년 5월 기준으로 현재 누적 투자액이 1000억 원에 육박했으며, 2022년 1분기에만 미술품 조각 투자에 310억 원 이상이 투자되었다고 설명했다.
해외 갤러리들의 국내 지점 증가도 큰 특징이었다. 일찍이 한국에 지점을 연 국제적 메가 갤러리인 페로탕, 리만 머핀, 페이스 갤러리에 이어 2022년에는 다수의 해외 갤러리들이 서울에 지점을 열었다. 보고서는 타데우스 로팍, 쾨닉, 글래드스톤, 탕 컨템포러리, 페레스 프로젝트, 에스더 쉬퍼 등 다수의 해외 갤러리들은 향후 5년 안에 한국 미술 시장이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한남동과 청담동에 지점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아 당시에 기업 미술관이 다수 생겨났다. 지금은 문을 닫은 삼성의 플라토를 비롯해 아트선재센터, 아트센터 나비, 성곡미술관, 대립미술관, 금호미술관이 당시에 문을 열었으며, 이들은 한국 미술 시장의 주요 컬렉터이기도 했다. 현재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스페이스K, 파라다이스 아트 센터 등 더 많은 미술관들이 더해졌다.
리움미술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업 미술관들은 초기 단계의 미술관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국내 작가 위주로 소장품을 구축하는 국립 및 공공 미술관과는 달리 국내와 해외 동시대 미술의 주요 작품을 수집한다. 다만 이들의 작품 수집 경향은 기업 대표의 취향 또는 모회사의 사업 목표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외에도 2022년 한국 미술 시장을 주도한 인물로 서울에 2개의 갤러리를 연 페로탕 갤러리의 엠마뉴엘 페로탕(Emmanuel Perrotin) 대표,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 컬렉터로 자리매김한 아이돌 그룹 빅뱅 출신의 최승현(T.O.P) 등을 선정해 인터뷰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이들의 관점도 전달했다.
보고서에는 김상훈 교수(서울대 경영대학), 심지언(전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본부장), 조상인 미술전문기자(서울경제 문화부), 주연화 교수(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임근준(미술평론가), 우정아 교수(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캐슬린 김(예술법 전문 미국 변호사), 박제언 선임 큐레이터(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