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규(b. 1987)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소재로 삼아, 정-부정의 상징적인 조형질서를 만들며 고전 불화(佛畵)의 회화적 가능성을 살펴보는 작업을 제시해 왔다.

특히 동양화의 화육법(畵六法)을 참고한 6가지 조형방식(의태, 구도, 형태, 질감, 변용, 응용)을 참고 삼아, 부정한 것, 부정한 상황 그리고 부정한 감정 등 '부정성'으로부터 촉발한 모호한 감정과 감각을 그림의 형식에 개입시킨다.

박웅규, 〈가래 드로잉 #7〉, 2015 ©박웅규

박웅규는 그의 작업의 중심 개념인 ‘부정’을 다의적으로 사용한다. 그는 작가 노트에 “나는 언제나 ‘부정한 것, 부정한 상황, 부정한 감정’ 같은 것들에 기민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 나타난 3가지의 ‘부정’은 각각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는 부정(不正),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는 부정(不淨), ‘어떤 존재의 불승인’이라는 부정(否定)의 의미를 가진다.

2012년부터 선보인 그의 초기작인 ‘가래 드로잉’ 연작은 이와 같은 부정의 여러 의미 중 부정(不淨), 즉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을 다룬다. 박웅규는 이 연작에서 침, 가래, 편도 결석과 같은 인간의 몸에서 배출되는 ‘더러운 물질’을 승려의 몸에서 나온 사리처럼 표현했다.

작가는 불교에서 수행을 거듭한 승려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생각하며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더러운 물질들을 떠올렸다. 모두 인간의 몸에서 나온 것이지만 어떤 것은 부정(不淨)하게 여겨지고 어떤 것은 성스럽게 여겨진다. 작가는 가래와 같은 부정(不淨)한 것들을 이와 대립적인 성스러운 사리와 연결시켜 표현하며 둘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벌레와 성자》 전시 전경(스페이스 니트, 2017) ©박웅규

작가 박웅규의 이름을 알렸던 대표 연작 ‘더미(Dummy)’(2015-)에서는 ‘부정’의 다른 의미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 연작의 그림들은 벌레인지 식물인지 애매모호하기도 하며, 또는 괴생명체 같기도 한 동시에 성모나 예수의 성상 같기도 한 독특한 형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연작은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접하게 되는 ‘부정함’에 관한 모든 이미지들을 사진첩에 저장했다. 그렇게 수집된 이미지들은 단지 혐오스러운 부정(不淨)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아주 일상적인 사물이나 아름다운 식물의 사진, 성화나 불화의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다.

박웅규, 〈Dummy No.5~No.1〉, 2015 ©박웅규

작가는 사진첩에 저장하는 이미지의 기준으로 ‘부정함’의 코드가 읽히는 것이라 말한다. 부정함의 코드를 읽는 것이란 대상에 고착되어 있는 어떠한 분위기나 타당성에 휘둘리지 않고 그 대상을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박웅규는 이 이미지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으며 서로 교배시키거나 변형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 과정에서 전혀 다른 형상으로 만든다.

박웅규, 〈Dummy No.15, Dummy No.17, Dummy No.16〉, 2017 ©박웅규

이때 작가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종교의 도상기호의 형식을 빌려온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종교 도상기호의 도식들, 이를 테면 화면 안에서 형상들이 배치되는 방식이나, 그것을 장식하는 도식의 형태, 혹은 반복되는 수와 관련된 기호-도상들의 표출 방법을 패턴화하여 사용한다.

이러한 종교적 도식은 작업의 원전이 되는 부정함의 대상들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부정한 것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스스로 통제하는 나름대로의 규율로 작동한다.

박웅규, 〈구상도〉, 2019 ©박웅규

한편 2019년에 선보인 〈구상도〉는 ‘더미’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있으면서도 인생과 욕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불교 특유의 가르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업은 9개의 ‘더미’를 통해 사람이 죽어서 먼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9가지의 단계로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그 무엇보다도 묘사되는 시신의 육체적 변화에 집중했다. 그는 시신이 점점 말라가며, 부패하거나, 갈라지거나, 먼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하나의 회화적 질서로 이해하며, 작업에 형태와 질감이 수분에 의해 변질되는 조형적 방법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각 단계에 해당하는 형태-질감의 요소를 작가 주변에서 찾고, 이를 다시 우상화 하는 방식으로 그려냈다.

《경기 시각예술 성과발표전 생생화화 : 현시적 전경》 전시 전경(단원미술관, 2021) ©박웅규

경계 모호한 혼종적인 형상으로 나타났던 ‘Dummy’들은 2019년부터 나방과 지네와 같은 여러 가지 벌레와 괴생명체 같은 구체적인 대상과 사실적인 형상을 띄기 시작한다. 그 중, 〈십팔나방〉(2021)은 작가의 작업실에 출몰한 나방 무리를 3가지 방식으로 그린 것으로, 각 세 개의 이미지를 한 세트로 한 여섯 세트의 작업이다.

박웅규, 〈Dummy No.71, Dummy No.65, Dummy No.77〉, 2021 ©박웅규

여기서 적용된 3가지 방식은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반응하는 세 가지(중립, 긍정, 부정)의 상태를 의미하는 불교의 ‘번뇌’라는 개념을 조형적 방법으로 가져온 것이다. 작가는 처음 나방의 생김새와 질감으로부터 느꼈던 혐오감을 번뇌의 세 가지 상태에 따라 재감각하고 조형화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18점의 그림은 나방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중립), 형태와 구조를 이해하려 애쓰고(긍정), 질감을 느끼려 노력한(부정) 결과물이다.

이 작업을 진행하며 처음에는 분명해 보였던 것들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모호해졌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분명한 나방의 형상에서 그 정형화된 형태와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패턴의 형태로 도달한다.

《의례를 위한 창자》 전시 전경(아라리오갤러리, 2023) ©아라리오갤러리

2023년 아라리오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의례를 위한 창자》에서는 소의 각 내장 부위에서 보이는 조형적 특이점을 부분 확대하여 묘사한 ‘더미’ 연작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이 작업은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내장 음식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내장 음식’과 ‘먹는’ 행위가 완전히 정 반대에 있는 무엇처럼 느껴진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번 연작에서 작가는 내장 음식인 순대로부터 유발된 부정성의 생김새를 추적하고, 종교를 주제로 한 성상화와 같은 작품의 형식을 빌려와 다시 제시한다. 동물 사체를 연상시키는 내장 음식이 먹는 행위로써 다른 존재의 생명의 일부가 되듯, 작가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성스러운 것과 연결시키며 상반된 듯 하지만 결국 하나가 되는, 즉 정-부정이 합일된 상태로 표현한다.

박웅규, 〈십우도〉, 2023 ©박웅규

이와 함께 선보인 〈십우도〉(2023)는 일본의 15세기 화가 텐쇼 슈분(天章周文)의 〈십우도〉를 차용한 작업으로, 먹는 행위가 내포하고 있는 생존과 죽음이라는 양가성을 다룬다. ‘더미’ 연작은 소의 내장들을 우상화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것이라면, 〈십우도〉는 대상 자체보다 대상을 먹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통 불교화인 〈십우도〉는 인간의 본성으로 상징되는 소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10단계로 그린 그림이다. 박웅규는 이를 재해석해 소를 찾아 그것을 먹고, 배설하고, 다시 다른 무엇으로 승화하는 모습으로 그려내며 먹는 행위에 얽힌 양가적인 상황을 마치 의식(儀式)처럼 풀어낸다.


박웅규, 〈팔진항마상(八疹降魔相)〉, 2024 ©박웅규

박웅규가 최근 발표한 ‘팔상도’(2024) 연작 또한 전통적인 불화의 서사 구조를 차용한다. 이러한 불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2017년 교토 박물관에서 불화 〈길상천〉을 본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길상천은 불교의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여신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지만, 함께 등장하는 길상천의 자매 흑암천은 추악한 외모로 가는 곳마다 재난을 일으키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박웅규, 〈흑암전법상(黑闇轉法相)〉, 2024 ©박웅규

어릴 적부터 고질적인 피부질환에 시달리던 작가는 점점 흑암천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되었고, 이는 곧 그에게 더 정당한 서사를 부여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를 위해 작가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다루는 〈팔상도〉의 서사 구조를 빌려 흑암천의 이야기를 새롭게 그려냈다.

그가 풀어낸 흑암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소년의 항문에서 태어난 여인은 어느 날 포진이 전신에 뒤덮여 추악한 외모로 변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인적 드문 산에 올라 은둔 생활을 하던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여인이 지나간 곳은 늘 불행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녀를 흑암녀라 부르며 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여인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 했고, 시간이 흘러 그녀의 시신이 있던 자리에 누런 빛깔의 작은 구슬만이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박웅규, 〈갈림열반상(渴林涅槃相)〉, 2024 ©박웅규

이처럼 박웅규는 전통 불화와 불교의 교리 등을 조형적 방법론으로 차용하여 자기 자신, 그리고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대상들에 대한 ‘부정성’으로부터 촉발한 모호한 감정과 감각을 그린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그의 회화는 옳은 것도 부정(不正)한 것도 아닌, 긍정도 부정(否定)도 아닌, 성스러운 것도 부정(不淨)한 것도 아닌 그 양극이 혼재된 상태로 제시하며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언제나 ‘부정한 것, 부정한 상황, 부정한 감정’ 같은 것들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인다.” (박웅규, 작가 노트)


박웅규 작가 ©종근당 예술지상

박웅규는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 졸업 후 추계예술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동양화분야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박웅규는 2016년부터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입주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울, 2023), 아트스페이스 보안1(서울, 2022), 온그라운드2(서울, 2018), 스페이스 니트(서울, 2017),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청주, 2016)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작가는 챔버(서울, 2024) 송은(서울, 2023), 부산현대미술관(부산, 2023), 일민미술관(서울, 2022),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 단원미술관(안산, 2021), 아트선재센터(서울, 2021),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고양, 2019) 등 기관이 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웅규는 2024년 제13회 종근당 예술지상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등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