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욱(b. 1982)은 움직이는 조각으로 이야기를 짓는다.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의 주변에서 관찰한 타자들의 일상에 대한 작가의 상상은 아날로그 기계의 움직임으로 재구성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목격담이 아닌 개인적 기억과 일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어떠한 바람을 담고 있다.

양정욱,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2013 ©국립현대미술관

2013년 양정욱은 갤러리 소소에서 “인사만 하던 가게에서”라는 제목의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에서 작가는 심야의 편의점에서 일하며 관찰한 사람들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이러한 소소한 일상의 면면을 이미지로 재구성한 다음, 움직이는 입체 조형물의 형태로 재현한다.

그의 ‘움직이는 이야기 조각’은 목재나 전구 그리고 플라스틱 페트병 등 익숙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실로 연결하고 모터로 작동시키는 아날로그 기계장치로 구성된다. 반복적인 기계장치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은은한 빛은 서정적이고 공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양정욱,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부분), 2013 ©갤러리소소

양정욱의 초기 대표작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2013)는 그가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 목격한 경비초소의 경비원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간 경비초소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경비원을 바라보며 그가 꾸고 있을 꿈의 이미지를 상상했다.

수 십 개의 나무 조각과 플라스틱 페트병들이 실로 연결되어 작은 모터로 구동되는 이 원통형 구조의 작품은 경비원의 모습과 그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움직이는 조형물로 재현하고 있다. 나무 조각과 페트병들의 반복적인 움직임은 작은 경비실의 열린 창 너머로 보이는 고개를 떨구며 졸고 있는 경비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구조물 안에서 비추는 빛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구조물들의 그림자는 마치 꿈 속의 장면처럼 몽환적으로 펼쳐진다.


양정욱,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드로잉), 2013 ©갤러리소소

이처럼 양정욱은 부단히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인물들에 주목한다.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관찰은 그의 머릿속을 거쳐 새로운 이야기로 전환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빠르게 그린 드로잉으로, 움직이는 조각들로 만들어져 감각적인 형태로 전해진다.

양정욱, 〈서서 일하는 사람들 #11〉, 2015 ©인천아트플랫폼

2015년부터 제작해온 〈서서 일하는 사람들〉(2015-2016) 시리즈의 경우에는 퇴직하거나 폐업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이유로 한 가지의 일을 해오다 퇴직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임시적인 일을 하게 된다는 내용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주로 ‘서서 일하는’ 근무 형태가 많은 임시직 노동자들의 몸짓에서 은연중에 나타나는 과거의 노동으로부터 비롯된 리듬과 습관을 발견했다. 이러한 임시직 노동자들의 몸짓이 만들어낸 다양한 리듬은 지면에 서서 끊임없이 성실하게 움직이는 기계의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재구성된다.


양정욱, 〈서서 일하는 사람들 #10〉, 2015 ©인천아트플랫폼

〈서서 일하는 사람들〉 시리즈 각각의 작품들은 특정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작가는 설치 작품과 더불어 짧은 글을 제시하곤 하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작품과 서사,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간극을 자신의 상상력으로써 메우게 된다. 

“체조선수였던 그녀는 트럭기사들이 자주 오는 식당에서 써빙을 한다. 거친 흔적들을 피해가며 그릇을 들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그러면 어떤 손님은 체조 선수해도 되겠다고 말한다.” (〈서서 일하는 사람들 #10〉에 대한 작가의 노트)

양정욱,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들 #2〉, 2017 ©갤러리현대

한편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들〉(2017) 시리즈는 작가의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과거 학창시절 또는 일하면서 알았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풀어낸다.

각 작품에서 작가는 잊혀진 친구들이 다양한 주제에 집착했던 모습을 평소에 작품에 사용하지 않았던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그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특징을 담아냈다.

양정욱, 〈대화의 풍경 #2: 저녁이 되면 말하는 것들〉, 2018 ©갤러리현대

〈대화의 풍경〉(2017) 시리즈의 경우에는 작가의 결혼생활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흔히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부 사이의 대화 중에 발견되는 긴장감 또는 각기 다른 시점에 대해 줄다리기 하는 내용을 형상화한 작업들로 구성된다.

모터의 동력으로 계속해서 균형을 맞춰 나가는 작품의 움직임은 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타협의 상황을 구조적이고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작가는 각 작품 안에 작은 오브제들을 넣어 관객들 스스로 작품이 어떤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를 상상하고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양정욱, 〈날벌레가 알려준 균형 전문가의 길〉, 2013 ©갤러리소소

‘균형’은 양정욱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등장해온 주요한 모티프 중 하나이다. 이는 과거 심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어느 회사원 머리 위에서 가만히 날고 있는 날벌레를 보았던 작가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중에 떠있는 날벌레는 언뜻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분주히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작가는 그러한 날벌레의 모습을 바라보며, 균형이란 고정된 상태가 아닌 끊임없이 한쪽으로 치우졌다가 다시 고르게 복구되는 반복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양정욱, 〈균형전문가는 가만히 잠을 잔 적이 없다〉, 2018 ©갤러리현대

이러한 균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설치 작업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날벌레의 형상을 차용한 구조와 형태로 이어져 오고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2018년작 〈균형전문가는 가만히 잠을 잔 적이 없다〉의 경우에는 매일 일상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양정욱,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2024 ©양정욱

양정욱은 〈균형에 대하여〉라는 자신의 짧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들에게는, 인간으로 복귀하게 되는 어떠한 지점들이 있다. 이 지점을 기억할수록 우리는 조금 더 인간다워진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것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일상의 풍경 속에 숨어있다.”

이처럼 날벌레의 날개짓과 같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 풍경에서 비롯된 양정욱의 이야기에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양정욱, 〈서로 아껴주는 마음〉, 2024 ©양정욱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그의 신작 〈서로 아껴주는 마음〉은 가족 사이의 대화를 다룬 전작 〈대화의 풍경〉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서 작가는 대화의 과정에서 사랑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 등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 커지고 작아지고 사라지며, 뒤엉켜 섞이는 마음의 풍경을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결혼을 통해 두 명의 개인이 조금씩 달라지고 서로를 닮아가기를 반복하며 하나의 덩어리로 연결되듯이, 작품의 수많은 작은 조각들 또한 서로를 연결하고 균형을 맞춰가며 함께 움직임으로써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양정욱,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4) ©국립현대미술관

이처럼 양정욱은 끊임없이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쏟으며 그 안에서 발견하고 싶은 삶의 모습과 그것을 전하려는 바람에서 만들어 낸 이야기들을 작품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재료로 만들어진 그의 조각 작품들은 부단히 움직이며 고난과 희망 사이에서 애쓰는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고 있다.

“우리 삶의 바닥에 있는 가장 딴딴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이야기를 탄탄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죠." (양정욱, 연합뉴스 인터뷰, 2019.03.03)

양정욱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양정욱은 가천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그는 OCI미술관(서울, 2022), 갤러리현대(서울, 2019), 케르케닉 미술관(프랑스, 2017), 두산갤러리(뉴욕, 2015)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성곡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두산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양정욱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4”의 후원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 미술관 그리고 미국 유타주의 유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