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수(b. 1979)는 기술의 발달이 인간과 비인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하며 기술 환경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관계의 양상을 살핀다. 작가는 전체적인 사회 현상에 주목하는 한편 매일 반복되는 노동을 이어가는 평범한 주체들 또는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된 잔여 존재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유화수, 〈Rocking Chair & Stand Lamp〉, 2010 ©유화수

2010년 유화수는 그의 첫 개인전 “달콤한 인생(Dolce Vita)”에서 길거리와 공사장에서 주워 온 버려진 재료들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쓸모를 다 한 재료들은 그의 손에 의해 기존의 용도와 다른 실용적인 물건들로 재탄생했다.

작가는 비계(飛階)용 강관 파이프, 전구, 공사, 안전모 등 공사장에서 주운 폐자재를 이용해 샹들리에, 스탠드 조명, 의자, 화장대 등을 제작했다. 보통 가구에 쓰이는 재료와는 다른 차갑고 딱딱한 소재로 이루어진 이 이질적인 오브제들은 관객이 직접 앉아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됨으로써, 생경함과 익숙함이 묘하게 교차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유화수, 〈Tree〉, 2010 ©유화수

한편 전시 공간 야외에 공공미술로 세워진 〈Tree〉(2010)는 반어적인 성격을 띈다. 이 공공조형물은2005년 개통된 청계천 복원 터 위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듯한 나무의 형태로 자리했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이에 대해 “마치 지면 아래로 토건 사업이 남긴 잔류 에너지를 흡수해 발육하는 인조나무처럼 보인다”고 하며 작품이 내포한 흥미로운 역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그 환경에 내재한 맥락으로부터 저항하는 〈Tree〉는 무분별한 재개발로 토건 사업을 이어온 한국 사회의 일면을 은밀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유화수, 〈지난 여름 작업이 안풀리는 소설가를 위한 선풍기〉, 2012 ©유화수

이처럼 유화수의 작업에서 재료들은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제3의 기능과 형태로 새롭게 거듭난다. 2012년 인사미술공간에서의 개인전 “it’s difficult for me to use”에서 선보인 작업들 또한 주변의 사물을 재료로 삼아 제3의 구체적인 현실의 맥락으로 새로이 진입한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노동’의 형태들에 주목했다. 이를 테면, 일반적인 사회의 요구와 다르게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위한 오브제를 고안했다. 그러나 〈지난 여름 작업이 안풀리는 소설가를 위한 선풍기〉(2012)처럼 “누군가를 위한” 사물이라 명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기도, 구하기도 어려운 형태를 가진다.

개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용도로 제작된 이 사물들은 유일무이한 형태를 가지게 됨으로써 다수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쓸모 있는” 기성품의 영역으로부터 스스로 물러나 제3자가 된다.  


유화수, 〈it’s difficult for me to use〉, 2012 ©유화수

이와 함께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신체의 일부를 잃은 공사장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에 주목했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에 맞추어 개조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공구를 이용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화수는 이들에게 기성의 새 물품을 제공한 후 물건이 어떻게 변형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기록했다.

영상과 사진, 실제 오브제 설치로 이루어진 〈it’s difficult for me to use〉(2012)는 정형화된 기성품들이 개인의 신체적 조건에 맞추어 어떻게 변형되고 물체와 신체, 그리고 그들의 삶과 하나가 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유화수,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을 하는 작가〉, 2013 ©서울시립미술관

2013년 스페이스 K에서의 개인전 “그리하여, 곧고 준수하게”에서는 ‘삶과 노동’이라는 주제가 더욱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들은 작가가 잠시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세트장을 제작하는 전문가들의 뛰어난 손놀림, 쉽게 철거할 수 있게 진행되는 제작 방식과 이를 받아들이는 전문가들의 태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는 이들의 노동을 작업으로 연결하게 되었다.


유화수,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을 하는 작가〉, 2013 ©스페이스 K

작가는 전시에서 감독의 역할을 맡아 실제 드라마 세트장 제작자들에게 두 점의 드라마 세트를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실제 드라마 세트장과 동일하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드라마 세트’라는 지위에 걸맞게 전시 이후에는 완전하게 철거됐다. 그리고 이 중 하나는 전시 중간에 철수되어 설치와 철거 과정을 담은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유화수, 〈당신의 각도〉, 2018 ©유화수

이후 유화수의 시선은 사회가 분류한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기준으로 향했다. 2018년 사진작가 이지양과 함께 기획한 전시 “당신의 각도”에서는 7명의 장애인과 협업하여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뒤집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사회의 기준에 따라 생산성으로부터 멀어진 장애를 가진 신체는 비정상으로 분류되고 소외된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장애를 극복해야 할 비정상적인 범주로 밀어 넣는다.

유화수와 이지양은 이에 맞서듯 장애를 가진 신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들의 신체에 맞춘 가구를 제작했다. 예를 들어, 골격계 장애가 있어 무게가 있는 책을 들고 보기 어려운 작가이자 변호사인 김원영에게는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대를,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어 활용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에게는 한쪽으로 꺾인 그의 팔이 지탱하고 있는 모습의 티테이블을 제작했다.

이들의 작업은 다양한 범주의 장애와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각자의 개성을 지우고 ‘정상인의 반대의 개념으로서의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버리는 경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유화수, 〈데이지와 더 이상한 기계〉, 2021 ©서울문화재단

이후에도 유화수는 장애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사회가 만든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의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나아가 2021년 작업인 〈데이지와 더 이상한 기계〉에서는 기술 발전이 담보하는 미래를 장애라는 관점에서 재고했다.

유화수는 기술과 장애의 관계를 다룬 김초엽의 소설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를 반응형 기술과 인간을 통해 재해석했다. 이 작업은 모터, 센서, 아두이노, 폐쇄회로 TV, 펜 번역기, 음성텍스트 변환기, 텍스트 음성 변환기 등의 기술을 이용해 점역, 낭독, 통역, 번역, 수화, 텍스트화하는 연쇄적인 과정을 반복한다.


유화수, 〈데이지와 더 이상한 기계〉, 2021 ©서울문화재단

번역이 진행될수록 기계들 사이에서 충돌과 오작동이 발생하게 되고 텍스트는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한다. 그러나 작업 안에서 기계들은 이내 서로에게 의존하며 나름대로의 질서를 찾아 연립한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기술 이면에 존재하는 변종과 여기에서 발생하는 가능성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얽히며 발전해 나가는 기술은 오로지 생산성에 가치를 두고 나아간다. 하지만 유화수의 작업 속 기계들은 서로 다른 부분들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보완해가며 천천히 나름의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기술의 발달이 나가야 할 방향을 여러 층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유화수, 〈지배의 몸짓〉, 2023 ©송은문화재단

2023년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선보인 〈지배의 몸짓〉은 우리의 일상에서 기술이 정교하게 발달할수록 자연 환경에 대한 감각은 무감각해지는 현상에 주목한다. 〈지배의 몸짓〉은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거된 나무에서 자라는 비식용 버섯의 생태 데이터를 첨단기술인 스마트팜으로 수집하고 유지 보수하는 설치 작품이다.

인간의 편리와 효율성을 위해 고안된 스마트팜은 여기서 쓸모 없는 존재들을 재배하는 기술로 역이용된다. 작가는 인간의 관점에서 쓸모 없어진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첨단기술로써 돌보는 행위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유화수, 〈지배의 몸짓〉, 2023 ©송은문화재단

이처럼 유화수는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 등을 나누는 사회의 기준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며 그러한 경계가 만들어낸 사회적 환상과 편견을 뒤엎는 작업들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효용성의 가치에 가려지고 소외된 존재들을 드러내고 존중하며 미래의 공존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실용성만 강조하는 사회의 ‘기준점’에 부합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유화수 작가 ©서울문화재단

유화수는 동국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잡초의 자리”(문화비축기지 T1, 서울, 2021), “그림자 노동”(organ haus, 충칭, 중국, 2018), “Working Holiday”(basis, 프랑크푸르트, 독일, 2016) 등이 있다.

또한 그는 부산현대미술관(부산, 2023), 창원조각비엔날레(창원, 2022),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서울,2020), 사비나미술관(서울, 2019), 사천미술학원미술관 (충칭, 중국, 2017)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개최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유화수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및 창동레지던시를 비롯해 독일 Basis 국제 레지던시, 중국 Organhaus 국제 레지던시 등에 입주한 바 있으며, 지난해 송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제23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