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희(b. 1970)는 재난, 테러, 전쟁 등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의 권력 구조 안에서 잊혀진 ‘이름 없는 존재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철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이를 음악, 영상, 드로잉, 텍스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풀어나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송상희는 비가시화된 존재들의 흔적과 역사를 발굴하고 이를 감각적인 형태로 되살림으로써 가시화하는 작업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려 왔다.


송상희, 〈동두천〉, 2005 ©서울시립미술관

송상희의 2000년대 작업은 남성중심주의 사회 안에서 억압된 여성의 이미지를 퍼포먼스와 사진을 통해 재현하며 가려져 있던 여성들과 그들의 슬픈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예를 들어, 〈동두천〉(2005)은 눈과 입을 검은색 테이프로 가린 작가가 경기도에 위치한 동두천 윤락가 한 복판에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작업이다. 평범한 동네였던 동두천은 한국 전쟁 이후 미군의 주둔지가 됨으로써 본래의 환경과 삶의 조건들에 변화를 겪게 되었다. 미군 기지촌에서는 국가가 나서 주한미군을 위한 성매매를 장려하며 여성들의 억압과 착취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동두천〉 속 작가는 강요된 침묵에 의해 사회적 약자로 고립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동두천 미군 기지촌의 한 여성으로 등장하며 전복적인 시선을 만들어 낸다.

송상희, 〈변신이야기 제16권〉, 2008 ©송상희

또한 송상희는 현실 속의 비극을 고전 설화나 신화와 같은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대서사 시 『변신이야기』를 현실의 이야기와 엮은 애니메이션 작업 〈변신이야기 제16권〉(2008)이 대표적이다.
 
총 15권의 ‘변신이야기’에 대한 다음 챕터로서 제작된 〈변신이야기 제16권〉은 세상의 시작과 함께 스스로 탄생한 존재들(인간을 닮은 생물 ‘코오라’, 공룡 ‘플레시오사우루스’, 고래의 기원인 ‘리바이어던’)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석유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태계가 서서히 파괴되어 버리고, 결국 인간에 대한 복수를 암시하는 경고의 메시지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이 만든 신화에 현실의 구체적인 사건인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건을 근간으로 한 영상 작업 〈모항으로 가는 길〉을 연결시키며, 〈변신이야기 제16권〉 속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비극으로 현재화시킨다.

송상희,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2015,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6” 전시 전경 ©아이치 트리엔날레

이와 같이 환경파괴, 멸종, 전쟁 등 인류의 비극을 가상의 서사와 결합한 송상희의 작업들은, 2010년대 이후 더욱 섬세하고 다층적으로 수집되고 연구된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한 텍스트, 음악, 영상, 드로잉 등이 연결된 복합 설치의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2015)에서는 역사적 비극의 장소에 찾아가 전쟁포로, 대학살과 참사의 희생자들, 종군위안부들의 모습을 그린 드로잉을 투사하여 찍은 영상에 여러 소설에서 발췌한 불편함을 야기하는 텍스트 파편들을 섞어 놓았다.

송상희, 〈드로잉-변강쇠歌〉, 2015,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풀, 2015) ©아트스페이스풀

즉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는 모순된 사회 구조 안에서 벌어진 비극이 역사화될 때 걸러진 이름 모를 수많은 희생자들을 진혼하는 과정을 복합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작업이다. 이때 작가는 그러한 존재들의 비극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이를 위해 송상희는 역사의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의 삶을 매끄럽게 요약하고 정리하기 보다는 비극의 파편들을 흩어 펼쳐 놓는다. 그리고 저속하고 음탕한 내용들로 가득한 『변강쇠歌』의 텍스트 파편들을 날 것 드러내기의 장치로서 이미지들 사이에 뒤섞어 놓았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다층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날 것에서 오는 직관적인 불편함이 관객들의 감상에 지속적으로 개입된다.

송상희,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2017, “올해의 작가상 2017”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7)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송상희는 2017년 “올해의 작가상”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설화의 구조를 차용해 이름 없는 존재들을 호명하는 작업으로 최종 수상자에 선정되었다. 전시에서 작가는 사방 20미터가 넘는 텅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작업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와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를 선보였다.
 우선, 3개의 채널로 이루어진 영상 작업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는 비극적인 영웅설화 ‘아기장수’ 이야기를 바탕으로 종말과 구원, 그리고 묵시적 상황과 새로운 생성의 에너지를 다룬다. 3개의 채널 속 각각의 아기들은 ‘아기장수’ 설화의 구조를 따라 탄생, 죽음, 부활을 반복한다. 그리고 영상 속의 이야기는 인혁당사건, 나치의 인종 교배 프로젝트 등 인류의 역사 속 다양한 비극의 파편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송상희,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2017 ©국립현대미술관

이 작업을 위해 송상희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체르노빌과 같은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 일어난 장소들에 직접 찾아갔다.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들 안에서 작가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아 가는 아름다운 풍경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는 작품 속 비극적인 상황 안에서도 희망을 간직한 텍스트들을 통해 드러난다.

송상희,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2017, “올해의 작가상 2017”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7) ©국립현대미술관

 한편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는 작가가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벌어진 폭발 장면을 드로잉해 타일로 제작한 벽과 55개국의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이 흘러나오는 음향으로 구성된다.
 
이 작품의 주재료인 타일은 오늘날 인테리어로 사용되는 친숙한 재료이지만, 사실 이는 과거 생체 실험실이나 고문실의 벽면과 침대에 사용된 역사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바로 맞은편에서 상영되고 있는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속 이미지에서도 확인된다.
 
타일 위에 새겨진 제2차 세계대전부터 ISIS 공습까지 잔혹한 폭력의 현장을 담은 드로잉들은 마치 몽타주된 모자이크처럼 무작위로 배치되어 뒤섞여 있다. 본래의 형태를 잃은 푸른 색감의 이미지 픽셀들은 참혹했던 역사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자세히 들여다 볼 때 그 정체와 참혹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송상희,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2017, “올해의 작가상 2017”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7) ©국립현대미술관

타일 벽에서 흘러나오는 인사말은 1977년 우주로 발사된 보이저 탐사선의 골든 레코드에 실렸던 평범한 인사말을 구글음성번역기로 재생한 소리다. 골든 레코드는 본래 외계 생명체에게 인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제작되었지만, 핵전쟁의 위협이 실존해 있던 당시 이 녹음 파일은 사실 인류의 유서와도 같은 의미를 가졌다.
 
서로를 마주하는 두 개의 작업은 그 사이에 관객을 위치시킴으로써 전쟁과 같은 파국의 현실이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폭력의 현실에 대해 무감각해진 우리의 이성과 감각을 일깨운다.

송상희, 〈말걸기〉, 2021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송상희의 근작 〈말걸기〉(2021)는 전쟁과 학살 등 무수한 상처의 역사를 거듭한 인류가 서로 공생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질문한다. 이 작업은 16개로 분할된 다중화면과 단일화면이 교차되고 6개의 드론 스피커와 말걸기를 이어 나가는 구조를 가지며, 화면 속 이미지들은 작가가 직접 방문한 역사의 상흔을 간직한 지역들의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상희는 무차별적 테러가 발생하거나 분쟁이 일어난 장소,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인 광주 등 역사의 상흔을 간직한 곳에서 마주한 평범한 일상들의 풍경 조각들을 조합했다.

송상희, 〈말걸기〉, 2021 ©서울시립미술관

작가는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 사물, 풍경, 개인-국가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당신’과 ‘나’의 존재,서로에 대한 인식, 상처의 정체에 대해 되묻는다. 그리고 화면 속 다양한 출처의 장면들은 작품을 통해 조합되며 어딘가 서로 닮아 연결된 듯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풍경들에 존 버거의 『결혼에 대하여』에서 발췌한 텍스트가 더해진다. 낯선 이들과 각자가 마주한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그의 작품 속 다중화면의 화자와 드론 스피커는 서로의 존재에 대한 말걸기를 이어간다.

송상희, 〈말걸기〉, 2021, “자연스러운 인간” 전시 전경(서울시립미술관, 2022) ©서울시립미술관

이처럼 송상희는 인간 사회의 모순을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자신만의 서사 구조로 드러내 왔다. 그의 작업 속에서 시공간을 달리하는 다양한 출처의 역사적 비극들은 개별적인 주체로서 존재하는 동시에 작가가 재구성한 서사 구조 안에서 새롭게 관계를 맺는다.
 
달리 말하자면, 각각의 역사적 사건들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연결되기 보다는 날 것 그대로 존재하며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정리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역사의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사라지거나 잊혀진 존재들을 되살려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송상희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송상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22), VZL Contemporary Art(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8), Witzenhausen gallery(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0), 인사미술공간(서울, 2004), 아트스페이스풀(서울, 2001)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중국, 미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다양한 해외 기관에서 주최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또한 그는 2010년 서울 국제여성영화제와 대만 여성영화제 및 2018년 베를린 필름 페스티벌 포럼 익스펜디드 등에서 작품을 상영했고, 2008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