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람(b. 1970)은 고고학, 생물학, 로봇 공학 등에서 파생된 가상 이론을 바탕으로 정교한 ‘기계생명체’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작업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 움직임에 있다는 점과 기술 진보에 따른 기계문명 속 인간 사회의 욕망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업은 인공적 기계 매커니즘이 생명체처럼 실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계를 통한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자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생명의 의미와 살아있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최우람, 〈Ultima Mudfox(성체)〉, 2002 ©최우람

그의 초기 기계생명체 〈Ultima Mudfox〉(2002)은 성체와 유생의 모형, 그리고 이 생명체에 대한 서사로 구성된다. ‘Ultima Mudfox’라는 기계생명체는 2002년 지하철 공사장에서 우연히 촬영된 미지의 생명체라는 서사를 가진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단단한 지면을 뚫고 자유로이 움직이는 이 생명체는 33년 전부터 상용화된 나노머신들이 전자파가 풍부한 도시의 지면 밑을 터전으로 삼으면서 자기 복제와 진화를 거듭하며 종을 늘려 나간 것을 바탕으로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우람, 〈Ultima Mudfox(유생)〉, 2002 ©최우람

Mudfox의 나노머신은 약 70시간 동안 분자조합을 통해 5~15마리 가량의 유생을 만들게 된다. 이 유생들은 자기력을 가진 3개의 다리와 광파의 흐름으로 추진력을 내는 3개의 지느러미로 땅속을 이동한다. 유생은 약 1년 후부터 지하철도 주변을 유영하다가 철도 터널 내부로 들어와 생활하게 된다. 그 중 일부는 지하철 차량하부에 자기력을 가진 다리를 이용해 부착하여 지하철 노선을 따라 길게는 3년 까지도 기생하여 생활하게 된다.

고착을 하지 못한 유생들은 터널 콘크리트에 흡수되어 생을 마감하지만, 고착에 성공한 유생들은 성체가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학자들은 이들의 지하철 고착 기생의 원인을 풍부한 에너지 섭취로 보고 있으나, 일부는 인간세계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관찰기간이란 주장도 있다.

이처럼 최우람은 자신이 고안한 기계생명체에 각기 다른 SF적 세계관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이 금속 기계를 실제 생명체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최우람, 〈에코 나비고〉, 2004 ©최우람

2004년 최우람은 보다 발전된 기계적인 구조를 가진 〈에코 나비고〉라는 새로운 기계생명체를 소개했다. ‘에코 나비고는 도시의 안테나 주변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로 여러가지 송수신 전파를 먹이로 살아간다. 이 기계생명체들은 전파의 흐름을 이용하여 날아다닐 수 있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으며 낮에는 몸을 투명하게 하는 위장술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이 생명체는 우리가 전화할 때 가끔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의 원인을 찾던 전화국 기술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에코 나비고가 무선전화기의 안테나 주위를 빠르게 헤엄치며 전파를 마시고 배설할 때 이러한 전화기 속 메아리를 듣게 된다고 한다.

최우람, 〈에코 나비고〉, 2004, 리움미술관 전시 전경 ©최우람

에코 나비고는 무선전화기 안테나에 씨앗을 뿌리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씨앗이 작은 꽃 모양의 폴립으로 자라나면 안테나에 흐르는 정전기를 먹고 자라 다른 폴립들과 짝짓기를 하면 하나의 알이 되어 기계생명체가 되기 위한 부속품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다.

최우람, 〈오페르투스 루놀라 움브라〉, 2008, Art station Foundation 전시 전경 ©최우람

이후 2008년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오페르투스 루놀라 움브라〉(2008)을 통해 최우람의 기계생명체에 대한 서사적 맥락이 구체화되고 더욱 확장되어 나타났다. 이전 기계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환경에서 관찰된 ‘숨겨진 달 그림자(Opertus Lunula Umbra)’라는 뜻의 새로운 기계생명체 〈오페르투스 루놀라 움브라〉는 항구도시에 서식한다. 이 생명체는 과거 침몰된 배들과 현대의 배를 구성하는 구조 및 기계들로 이루어졌다.

최우람은 이 생명체를 연구하는 단체를 자신의 이름을 딴 ‘기계 생명체 연합 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 URAM)’이라 명명했고, 〈오페르투스 루놀라 움브라〉를 연구소가 제작한 기계생명체의 모형이라 설명함으로써 전시 공간을 그 단체의 연구 성과물이 소개되는 장으로 변모시켰다.

최우람, 〈Arbor Deus〉, 2010 ©최우람

그리고 2010년부터 최우람의 기계생명체에 신화적인 구조가 새롭게 구축된다. 가령 〈Arbor Deus〉(2010)는 기계문명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광신과 욕망을 바탕으로 하는 다음과 같은 신화적인 세계관을 가진다.

“아주 먼 옛날, 쌍둥이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며 얼어붙자, 인간들은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들의 희생으로 날개 달린 철의 나무들이 자라나 지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인간들이 조급해져 나무의 자궁을 과도하게 돌리면서 행성은 태양에 너무 가까워졌다. 결국, 인간들은 신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문명을 잃고 멸망했다.”

최우람, 〈쿠스토스 카붐〉, 2011 ©최우람

그의 대표작 〈쿠스토스 카붐〉(2011)에서도 신화적 구조가 이어서 나타난다. 마치 숨을 쉬고 있는 듯 미세하게 움직이는 이 기계생명체는 작은 구멍들로 이어져 있는 두 세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구멍을 지키는 수호자다. 그러나 어느 날 다른 세계의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서 쿠스토스 카붐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다.

이어져 있지만 분리되어 있는 이 신화 속 두 세계는 인간과 비인간, 타자와의 관계를 상상하도록 한다. 쿠스토스 카붐이라는 기계생명체는 두 세계를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로 존재하며, 이 존재들이 사람들에게 잊히는 상황은 마치 소통이 부재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최우람은 이 신화적 스토리의 말미에 “마지막 남은 쿠스토스 카붐에 세상 어딘가에 다른 세상과 통하는 구멍이 다시 열렸을 때 자라나는 유니쿠스라는 홀씨가 자라났다”는 내용을 덧붙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

최우람, 〈회전목마〉, 2012 ©최우람

한편 2012년에 선보였던 작업들은 SF적이고 섬세한 기계생명체 작업과 달리 낯익은 모습을 띈다. 예를 들어, 〈회전목마〉는 이름처럼 작은 크기의 회전목마가 음악에 맞춰 회전하는 설치 작업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음악이 급격하게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회전목마가 매섭게 회전하며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최우람은 이 작품에서 동시대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원히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돈, 명예, 권력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는 한국인의 모습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는 이 작은 〈회전목마〉에 빗대어 드러난다. 

최우람, 〈작은 방주〉, 2022,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2) ©국립현대미술관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전시 작가로 선정된 최우람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며 더욱 심화된 불안감과 양극화로 인해 방향성이 상실된 시대상을 작품에 담아냈다. 작가는 방주를 주제로 하여 동시대를 구성하는 모순된 욕망을 병치시켰다.

동시에 작가는 작품을 제작할 때 폐 종이박스, 지푸라기, 방호복 천, 폐자동차의 부품 등 일상의 흔한 소재에 최첨단 기술을 융합함으로써 삶의 조화와 균형에 대한 희망을 내포했다.

최우람, 〈작은 방주〉, 2022,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2) ©국립현대미술관

12미터 길이의 거대한 키네틱 설치 〈작은 방주〉(2022)는 육중한 철제와 폐 종이박스를 재료로 최첨단 기술을 구현한 상징적 방주다. 〈작은 방주〉의 거대한 배 모양을 이루는 35쌍의 노는 우리를 배제시키는 벽처럼 머물러 있다가 날개를 펼치듯 움직이며 장엄한 군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두 명의 선장이 등대 모형에 등을 지고 각자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며 앉아 있다.

최우람은 이러한 상징적 방주를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향해 항해하는지, 그리고 욕망의 끝은 어디인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현재를 성찰하도록 한다.

최우람, 〈원탁〉, 2022,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2) ©국립현대미술관

머리가 없는 18개의 지푸라기 몸체들이 원탁을 등에 받치고 있으며 하나의 둥근 머리가 그 위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모습을 한 키네틱 설치 작업 〈원탁〉(2022) 또한 오늘 날 인간 사회를 은유한다.

최우람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균형이 인류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라고 보며 이 작업을 고안했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는 우두머리가 되고자 애를 쓰는 한편 누군가는 우두머리가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작가는 〈원탁〉을 통해 하나의 머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머리를 욕망하지 않아도 이 투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의 구조를 반영했다.  

최우람, 〈태양의 노래〉, 2021 ©최우람

이처럼 기술 발전과 진화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에 주목해 온 최우람의 관점은 지난 30여 년간 사회적 맥락, 철학, 종교 등의 영역을 아우르며 인간 실존과 공생의 의미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그의 기계생명체와 그 환경을 통해 우리는 사회,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인간과 기계는 하나의 덩어리라고 생각해요. 생각과 상상력과 욕망이 형상화되어서 만들어진 존재들. 그것들이 저는 기계이고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합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최우람 작가 인터뷰)


최우람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최우람은 중앙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소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8년 첫 개인전 이래 2006년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그 외 한국과 미국, 터키, 대만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2022년 MMCA 현대차 시리즈 전시 작가로 선정되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1997년부터 제2회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맨체스터 아트갤러리,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수상 및 레지던시 이력에는 2006년 제1회 포스코 스틸아트 어워드 대상 수상,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미술 부문 수상, 2009년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 뉴욕 두산 레지던시, 2014년 미국 오토데스크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 싱가포르 시그니처 아트 프라이즈 최종 후보 선정 등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