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미술 (Fine Art)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藝術)’은 ‘재주(藝)’와 ‘기술(術)’을 뜻한다. 영어로는 ’art’라고 하는데 기술(techne)을 뜻하는 그리스어 ‘ars’에서 유래하였다. 17세기 이전에는 건축이나 공예, 디자인 등 실용예술 모두를 ‘art’라고 하다가 회화와 조각이 건축에서 분리되면서 이를 순수미술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순수미술은 작가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완성된 조형으로 보여주는 시각예술로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고 댓가를 받는 상품과는 그 생산과정에 있어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를 ‘자기목적성’이라 하는데 예술가의 순수성과 창의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자기목적성은 작가의 취향과 자기만족에 그치는 개념이 아니라 작가가 완성한 시각형식이 일정이상의 보편적 동의를 획득할 수 있을때 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미술(美術)은 ‘순수미술’을 뜻하며 일제 강점기인 1911년 서화미술협회에서 처음 썼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1945년 이전을 근대미술로,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현대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둘 다 ’Modern Art’를 번역한 말이다.    
 
문제는 1970년대 이후의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현대미술이라고 하는데 있다. ‘언어는 개념의 틀’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는 것은 그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인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과거의 틀에 가두면 마치 썩은 상자안에 새 사과를 넣는 것처럼 인식의 오류로 인한 문화적 아노미 현상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간단히나마 동시대미술, 즉 컨템퍼러리 아트의 올바른 의미를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모던아트 (Modern Art)

모더니즘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대혁명’(1789)을 기점으로 하며, 철학에서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순수이성비판〉(1781), 문학에서는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악의 꽃〉(1857)을 그리고 미술에서는 인상주의가 시작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해돋이 인상〉(1872)을 그 시작으로 본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1872, 캔버스에 유채, 48 x 63cm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대상의 형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드러낸 작품이다.

20세기 이전에는 마치 ‘진짜인 것처럼’ 얼마나 ‘잘 그리느냐’가 중요했다. 이것을 환영주의(Illusionism)라고 한다. 인상주의의 등장은 ‘우리가 보는 색은 사물의 고유색이 아니라 빛이 반사될때 나오는 파장’이라는 뉴우튼의 과학적 발견에 기초한다.
 
또한 당시 발명된 카메라가 그림보다 더 사실적으로 대상을 재현해 냄으로써 이제 대상을 묘사하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이후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개인적 시각이 더 중요해졌다. 여기서 개인적 시각이라 함은, 작가만의 독단이 아니라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진실 혹은 진정한 가치를 개인의 시각으로 드러낸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세잔의 〈생 빅트와르 산Mount Sainte -Victoire〉(1895)이나 〈사과가 있는 정물The Basket of Apples〉(1895)에서 형태가 엉성하게 해체적으로 그려진 이유는, 그가 산을 멋지게 그리거나 사과를 묘사하는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이 대상을 어떻게 ‘지각’하는지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시지각(Visual Perception)적 접근이라 하며 후에 피카소나 호크니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좌) 세잔의 정물처럼 실제 사과를 연출한 장면 / (우) 세잔이 그린 〈사과가 있는 정물〉

두 도상을 비교해보면 세잔의 작품은 무언가 불안하고 시점과 원근법도 맞지 않고 구도가 엉성함에도각 대상들은 선명히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세잔이 하나의 시점과 원근법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세잔의 눈에 보이는대로 대상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그렸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모던아트에서 1945년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진 역사적 사건 때문이다. 그래서 1945년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펼쳐진 추상표현주의나 팝아트 등을 전후미술(Post-War Ar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스트 모던 아트 (Post Modern Art)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은 반 이성중심주의적이고 해체적 경향을 띈 철학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문화의 흐름을 말하며 1980년대 이후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포스트 모던 미술은 모던아트처럼 순수하고 단일한 형식이 아니라 복합적인 화면구성이나 오브제 혹은 설치미술 등을 통해서 펼쳐졌다.
 
우리나라에서 써진 글이나 번역들을 보면 ‘탈’모더니즘, ‘반’모더니즘, ‘후기’모더니즘 같은 식으로 표기된 것을 볼 수 보는데, 원래 ‘포스트’라는 단어는 ‘반대(Anti), 탈(Beyond), 후기(After)’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콕 찍어 나누어 놓은 것이 아니라면 이 세가지 개념 모두를 통해 포스트 모던 미술을 바라보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리라 생각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시뮬라크르Simulacre’가 있는데 이 말은 ‘원본이 없는 복제’를 뜻한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깡통〉, 1962, MoMA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깡통Campbell's Soup Cans〉(1962) 를 보면 원본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상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끊임없이 복제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결국에는 실제와 상관없는 전혀 다른 가치와 의미를 가진 이미지가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패스티쉬(Pastiche)가 있다. 이 용어는 ‘혼성모방’이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차용하여 자신의 작업에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 때 이것에 대해 창조냐 모방이냐 논란이 많았는데 오늘날 미술의 주요 표현기법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근육질 종이(Muscular Paper)〉, 1985, MoMA 소장

포스트 모던 작가 중 한 사람인 데이빗 살르(David Salle, 1952- )의 〈근육질 종이Muscular Paper〉(1985)를 보면 하나의 작품이 세 개의 캔버스로 나뉘어져 있고 여러 주제와 기법이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파블로 피카소, 〈목욕하는 여인〉, 1931, 청동, 피카소 미술관, 파리 /
(가운데) 주세페 데 리베라, 〈안장다리 소년〉, 1642 /
(오른쪽) 막스 베크만, 〈큰 다리〉, 1922

이 작품의 첫번째 패널에는 피카소의 조각작품을 브라사이라는 프랑스 사진가가 찍은 이미지가 있다. 중앙 패널은 스페인 화가 주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 1591-1652)의 〈안장다리 소년The Club-Footed Boy〉(1642) 의 얼굴이 두 개로 나뉘어 그려져 있으며, 세번째 패널에는 독일 표현주의 작가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1884-1950)의 판화작품 〈Large Bridge〉(1912) 가 복제되어 있다.

살르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치들이 서로 동일하지 않은 곳에서 왔기 때문에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의 예술에 대한 독립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렇게 남의 작품을 가져다 자기 작품에 사용하는 것을 또 다른 말로 ‘전용’ 혹은 ‘전유’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appropriation’라고 한다. 이 용어는 시뮬라크르, 패스티쉬와 함께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컨템퍼러리 아트 (Contemporary Art)

서구 미술에서 ‘컨템퍼러리Contemporary’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동시대 미술’로 번역되고 있다.
 
동시대 미술은 말 그대로 이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내용들을 새로운 형식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관심 분야를 총망라하며, 형식이나 기법에 있어서도 전통 양식에서 벗어나 가능한 재료와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사용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 (1887-1967)

컨템퍼러리의 시작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7)의 변기작품 〈샘Fountain〉(1917)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공장에서 생산된 변기를 그대로 작품화시킨 것으로서 “오브제” (불: Objet)라 부르는데 모더니즘 고유의 개념과 형식을 파괴시켜버린 획기적 작품이다.

인상주의의 모네나 입체주의의 피카소가 혁신적 화법을 구사하긴 했으나 캔버스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뒤샹은 그 벽을 완전히 부숴버린 진정한 혁명가로 평가받는다.

(왼쪽) 〈샘〉, 원본 사진, 1917 / (오른쪽) 〈샘〉, 복제품, 1964

조셉 코수드(Joseph Kosuth, 1945- )는 〈하나와 세 개의 의자 One and Three Chairs〉(1965)라는 작품에서 실제 의자와 그것을 찍은 실물크기의 사진, 그리고 의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벽에 부착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미술작품의 성립 조건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제시하므로써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지평으로 미술을 돌려 놓았다. 

(좌) 조셉 코수드 / (중) <하나와 세개의 의자〉, 1965 / (우) 〈하나와 세개의 망치〉, 1965

예술철학자 아더 단토(Arthur Danto, 1924-2013)는 이 작품을 컨템퍼러리의 시작으로 보았고, 이제 더 이상 미술은 아름다움도, 시각적 재현물도 아니며 따라서 미술은 점점 더 철학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2015년 뉴욕의 MoMA에서는 “영원한 지금 : 초시간적 세계에서의 동시대 회화  The Forever Now : Contemporary Painting in an Atemporal World”라는 전시가 열렸다.


“영원한 지금 (The Forever Now)”, 커스틴 브라치의 작품 설치장면, 2015, MoMA

이 전시의 주제는 ‘순간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고 또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무언가 생겨나는 ‘초시간성(Atemporality-필자역)의 시대’에 과연 진정한 회화란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 가능한가를 묻는 전시였다.

“영원한 지금 (The Forever Now)” 설치장면, 2015, MoMA

이 전시에 초대된 어떤 작가는 캔버스를 바닥에 늘어놓고 뒤집어 쓰거나, 회화와는 아무런 상관없을 거 같은 재료를 회화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또 다른 작가는 네온사인이 붙어있는 캔버스를 전시하는 등 굉장히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형식을 띄어 당시 뉴욕에서도 많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참고로 여기에 참가한 작가 중 몇 몇은 전시 후에 동시대 회화의 스타가 되었다.

또한 동시대 미술은 종교, 철학, 과학,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분야에서 생산되는 모든 급진적 개념이나 기술을 빌어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미술작품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인식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2016 휴고보스상 수상 : 애니카 이, “싸구려인생(Life is Cheap)”, 구겐하임 미술관

2016년 휴고 보스 프라이즈를 받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한국계 미국작가 애니카 이(Anicka Yi, 1972- )의 “싸구려 인생 Life is Cheap” 을 보면 전시장에 개미굴을 전자 회로처럼 제작하여 실제 이 안에서 개미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화학자의 도움을 받아 배양한 곰팡이가 전시장에 설치된 오브제를 숙주삼아 피어 올리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볼 수 있었으며, 특정한 장소에서 채취한 사람의 향기를 관람객들이 맡을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 전시되기도 하였다.

2016 휴고보스상 수상 : 애니카 이, “싸구려인생(Life is Cheap)”, 구겐하임 미술관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한 바 있는 조단 울프슨(Jordan Wolfson, 1980- )이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여성의 모습Female Figure〉(2014)은 여성의 신체를 한 게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첨단 애니마트로닉스 기술을 접목한 작품인데, 정교하면서도 징그러운 손놀림을 하면서 관객과 수시로 눈을 맞추는 섬뜩한 모습을 통하여 동시대의 가치와 윤리가 어떻게 변모해 가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조단 울프슨, 〈여성의 모습〉, 2014,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

이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더 이상 하나의 기준과 원리로 바라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해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 본연의 진리나 예술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말했듯이, ‘기술이나 문명은 진화하지만 인간의 정신이나 문화는 진보하지 않는다. 다만 확장되고 다르게 바라보며 새롭게 해석’될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