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킴(b. 1969)은 인간의 상실되고 불안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회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그 너머의 기억 혹은 상상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일시 정지된 ‘허구의
공간’을 구축한다.
한국에서 보낸 짧은 유년기의
기억 속에서 채집한 ‘교복 입은 소녀들’의 이미지를 전통
자수나 다른 관습적인 이미지들과 병치시키고, 그들이 사라진 풍경을 만드는 의식적인 차용과 배제의 방식을
통해 다다를 수 없는 ‘완벽한 이미지’의 실현을 시도해 왔다.
14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써니킴에게 교복은 작가가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였다. 또한 그에게 교복은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생각들, 이상과 억압, 이데올로기와 낭만주의, 개인과 집단, 그리고 겹치는 기억, 혹은 기억의 모순과 같은 생각들을 유발하는
소재이다.
이러한
교복에 대한 생각들은 개인적인 영역에서 넓게는 사회적인 면에 이르지만, 작가는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고자 교복을 입은 소녀들을 화폭에 수차례 표현해 왔다.
2001년 써니킴은 서울 갤러리 사간에서 “교복 입은 소녀들(Girls in Uniform)”이라는 첫 개인전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 발을 딛었다. 개인전에서 그가 선보였던 작품들은 전시 제목처럼 교복을 입은 소녀들의 모습을 그린 회화 작품들이었다.
형식상 사진과 회화의 중간지점에 놓여 있는 듯한
그의 〈교복 입은 소녀들〉은 자세히 보면 마치 훼손된 흑백필름을 인화한 사진처럼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인물의 형상은 견고하지만 이목구비나 손가락 등 세부적인 부분들은 모호하고, 풍경은 아예 그려져 있지
않다. 텅 빈 배경은 한국에 대한 기억의 공백을, 불분명하고
불안정한 표현은 그의 흐릿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반영하는 듯 하다.
써니킴, 〈Courtyard〉, 1999 ©써니킴
써니킴은 십장생과 같은 18세기 전통 한국자수를 차용하여 교복
입은 소녀와 병치함으로써 두 이미지 간의 상징적인 평행관계를 표현해 내는 회화들 또한 선보여 왔다.
작가는 교복을 통해 억압감, 엄격함, 획일성 등을 느꼈듯이 전통자수를 통해서도 이와 유사한 맥락을 느꼈다고 한다.
전통자수의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완벽할 정도의 정교함으로부터 경직성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써니킴은 전통자수의 주요 소재인 십장생(학, 사슴, 거북이 등)과
자연(구름, 해, 물결, 산수 등) 문양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구성하고 패턴화시켰다. 그리고 자수 기법을 회화로 전환시키면서 정제된 이미지는 옛 그림 속에 존재하던 역사적, 제도적 의미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한다. 즉, 교복 입은 소녀들과 자수 작업의 병치와 혼합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근본적인 성질들을 변화시키고 자유롭게
한다.
이후 작가는 인물들이 배제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녀들이
사라진 세계로서의 풍경들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지만 알 수 없으며, 마치 안개가 낀 듯 흐릿한 풍경은
꿈 속의 장면 같기도 하다. 작가에 따르면, 그러한 풍경들은
‘길을 잃었을 때 마주칠 수 있는 풍경들’이다.
한편,
2013년 선보였던 〈선〉의 경우에는 작가가 직접 두만강에 방문하여 바라보았던 그 곳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중국도, 북한도 아닌 두만강의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보고 그린 이
그림은 작가가 발을 딛고 서 있었던 어느 불분명한 경계의 지점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감정들을 더욱 흐릿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불안한 풍경으로 표현되어
있다.
써니킴, 〈조우〉, 2017 ©써니킴
이처럼 써니킴의 풍경화는 작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반영하며 감상자의 심리와 정서를 건드리는 마음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지점에서 그의 풍경화는 전형적인 풍경화라고 규정짓기도, 추상화나 개념회화로 보기에도 어려운 그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의 풍경화에는 예상치 못한 표현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가령
〈조우〉(2017)의 화면 일부를 가리는 검은 빛의 색면이 상단에 칠해져 있고 물감이 흐른 자국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재현된 풍경의 세계 안으로 잠겨 드는 순간을 방해한다.
한편 2014년 써니킴은 풍경을 무대 위로 불러오는 퍼포먼스
작업 〈풍경〉을 선보였다. 풍경을 담은 영상이 무대에 투사되고 써니킴의 회화에 등장하던 교복 입은 소녀들이
나무와 연못 주위를 거닐며 그림 속 자세를 재연하거나 옛 시(김삿갓 1807-1864)를
읊는다.
써니킴의 퍼포먼스에는 스크린 속의 풍경, 배우들이 풍경을 묘사한
시를 읽으면서 만들어 내는 풍경, 그리고 영상과 배우를 비롯한 무대 위의 모든 요소들이 빚어내는 풍경들이
겹겹이 공존한다. 〈풍경〉은 평면에 존재했던 연극성을 실제의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회화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논의하려는 실험이었다.
작가에 따르면,
〈풍경〉에서 시간의 흐름은 소녀들이 자아를 찾아 가는 여정이자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세계를 살아 나가야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써니킴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 작가로 전시에 참여하며, ‘어둠에 뛰어들기’라는 주제로 세 개의 공간에 회화와 영상, 오브제가 어우러지며 낯선
이미지와 기억을 생성하는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때 선보인 설치 작업 〈풍경〉은 기존에 작가가 만들어 온 것들을 한곳에 모으는 작업이자 회화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미지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작업이었다. 퍼포먼스 〈풍경〉을 담은 영상이
그림 위에 투사되고 그림 속 소녀들이 빛이 되어 또 다시 그림 속에서 움직인다. 즉 그림의 재연이 퍼포먼스에서
이루어졌고, 이 공간에서 다시 퍼포먼스의 이미지들은 그림으로 재연된다.
써니킴, 〈풍경〉, 2014-2017 ©써니킴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작가에게 이 작업은 그림 속 공간을 실제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욕구에서 출발했다. 퍼포먼스에 설치되었던 오브제들(나무, 돌, 거울, 기둥)이 퍼포먼스 영상과 배치되면서, 공간 전체가 하나의 이미지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작가의 불완전한 감정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이미지들이 얽혀 그들만의 리얼리티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작업이었다.
그동안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심리적인 영역을 다시 한번 실제 공간에 불러냄으로써
만들어진 상실감과 불안감이 투영된 이 방은 하나의 살아 있는 이미지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처럼 써니킴은 흐릿해진 기억과 상상의 이미지를 캔버스와 그 너머에 담아 내며 회화와 이미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상실감과 불안감을 풀어나갔다. 그러한 작가의 작품은 관객의 눈을 거쳐 마음의 영역으로 깊이 스며든다. 이는 온전한 자아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써니킴의 작품들이 오늘날 각자의 문제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에 완벽한 이미지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나라가 있었기에 항상 무언가 나눠진 느낌이었고, 그 이중성을 탈피해 완벽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써니킴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써니킴은 뉴욕 쿠퍼유니온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뉴욕 헌터 대학원에서 종합매체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나탈리 카그 갤러리(뉴욕, 2021), 에이라운지(서울, 2020), 인천아트플랫폼 극장(인천, 2014), 스페이스 비엠(서울,
2013), 갤러리현대 16번지(서울, 2010), 일민미술관(서울,
2006)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 2021), 아트센터 화이트블럭(파주, 2019), 런던 A.P.T(런던,
2018),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서울, 2017), 문화역서울 284(서울, 2012), 비엔나 쿤스트할레(비엔나, 2007) 등에서 개최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서울과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