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근(b. 1963)은
1989년 거리에서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가로
시작해, 한국 사회의 특정 인물 군의 유형을 보여주는 초상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작가는 영화 〈접속〉, 〈친절한 금자씨〉
등 40여편의 포스터를 촬영하기도 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유형학적 초상 다큐멘터리’라고 설명한다. 그의 사진은 엄밀히 보았을 때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초상 사진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양한 유형의 집단을 사진으로 남겨
일종의 도감처럼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트적이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특정 인물 유형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안감과 정서적인 흔들림에 주목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오형근은 작업 초반 거리의 사회상을 흑백의 사진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가령, 미국
사회의 주변인들을 기록한 〈미국인 그들〉(1990-1991) 시리즈,
이질적인 문화들이 혼종된 장소인 이태원의 풍경과 그 곳의 사람들을 담은 〈이태원 이야기〉(1993)
시리즈 등이 있다.
오형근의 다큐멘터리 사진에는 작가의 연출이 개입된다. 예를 들어, 1995년에 제작된 〈광주 이야기〉 시리즈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모습을 재연하는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었다. 작가는 본인이 포스터와 스틸 컷을 담당했던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꽃잎〉(1996)의 세트장에서 배우들과 광주 시민이 한 데 얽힌 모습을 한 컷 안에 담아 현실과 허구를 혼재시켰다. 그의 작업은 역사를 재연하는 과정, 즉 역사적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허구화하는 과정에서의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포착한다.
오형근, 〈진주 목걸이를 한 아줌마, 1997년 3월 25일〉, 1997 ©오형근
오형근은 1999년 아트선재센터에서 1997년부터 2년간 작업해 온 〈아줌마〉 시리즈를 선보이며, 당시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작가는 〈아줌마〉 시리즈에서 항상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로 존재했지만, 사회적으로는 부재했던 당시 한국의 중년 여성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와 허구라는 두 축으로 드러낸다.
강렬한 조명은 어두운 배경과 대비해 중년 여성들의 두터운 화장과 의상, 장신구들을 부각시키며, 당시 ‘아저씨들의 나라’에서 느꼈던 아줌마들의 고립감을 도드라지게 한다. 또한 비뚤어진 프레임이나 애매하게 잘린 화면으로써 당시 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불안감과 정서적인 흔들림을 담아냈다.
한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진행한 〈소녀연기〉 시리즈에서는 작가의 의도적인 연출이 더욱 두드러진다. 오형근은 사진 상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대를 만들거나 장치를 활용해 여고생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작가는 실제 소녀 이미지보다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표피적 상징으로서의 소녀 이미지를 채집하고자 10대 소녀들에 대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제스쳐와
표정 등을 연기학원 수강생들에게 연출시켰다. 이러한 연출은 허구와 실제를 적극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표면으로 드러낸다.
오형근, 〈소녀들의 화장법, 19세, 2007〉, 2007 ©오형근
그리고 〈소녀들의 화장법〉(2005-2008) 시리즈에서는 거리에서 캐스팅한 화장한 10대 소녀들의
얼굴을 솜털과 모공이 드러날 정도의 극명한 대형 사진으로 제작함으로써, 그들의 불안한 욕망과 서투른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적나라한 사진 연출은 소녀들의 화장보다는
‘화장 이미지’에 대한 욕망과 태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함이었다. 현대사회 안에서 심미적으로 코드화되어 있는 화장법이 소녀들의 심리적 기제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앞선 〈아줌마〉, 〈소녀연기〉, 〈소녀들의 화장법〉와 같은 작업들은 다양한 세대의 한국 여성들의 이미지를 다루며 한국 사회에 내재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드러냈다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된 〈중간인〉 시리즈에서는 군인의 초상을 통해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불안정한 남성의 이미지를 드러냈다.
당시 오형근은 국방부 주관 6.25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중간인〉을 군대 안에서 직접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한국의 ‘집단 의식’에 대한 의문을 기반으로 남성성이 강요되고 ‘애국’이라는 특정 의무로 모인 집단인 군대의 사병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때 작가가 포착한 것은 개인과 집단 중간 자리에서 사병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과 고립감이었다.
오형근, 〈왼쪽 얼굴, 지지, 20190628〉, 2019 ©오형근
이처럼 작가는 지난 20여년 동안 아줌마, 여고생, 군인
등 한국 사회의 특정 인물군의 모습을 초상화하며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포착해 왔다. 한편 2006년부터 지속해온 〈불안초상〉 시리즈는 이전 작업들과는 달리 특정 집단의 초상이 아닌 ‘불안’ 자체에 초점을 맞춘, 말
그대로 ‘불안의 초상’이다.
오형근은 2022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왼쪽 얼굴”에서 〈불안초상〉 시리즈
중 하나인 〈왼쪽 얼굴〉 작업을 선보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던 이태원을
중심으로 만난 이들로, 통상 젊은이라 말해지지만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오형근은 이처럼 모호하게 외진 경계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동시대 한국 사회에 내재한 새로운 불안의 징후를 드러낸다.
오형근은 이와 같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얼굴들, 특히 주류 바깥 경계에 서있는 인물들의 모습에 주목해 왔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은 단지 특정 ‘타인의 불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사진에는 오늘날 개인에게 작용되는 사회적 통제와 그 상징적인 기표들, 우리 사회에 내재된 공통적인 정서적 불안감이 전면으로 드러난다.
“마치 나른한 봄날에 겪는 미열처럼, 하루 종일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일상적인 불안감을 담아내려고 했다.”
오형근 작가 ©한겨레
오형근은 브룩스 사진 대학을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99년 한국에서
개최한 그의 개인전 “아줌마”(아트선재센터, 서울)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그 이후로 “少女演技”(일민
미술관, 서울, 2003), “소녀들의 화장법”(국제 갤러리, 서울, 2008),
“중간인”(아트선재센터, 서울, 2012) 등을 비롯하여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수차례의 개인전을 이어 왔다.
최근 전시로는 “왼쪽
얼굴”(아트선재센터, 서울,
2022), “불안초상”(La Chambre 갤러리,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2016) 등이 있다. 현재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금까지
〈아줌마〉(1999), 〈소녀연기 少女演技〉(2003), 〈중간인〉(2012)등 총 6권의 작품집을 출간했다.
References
- 오형근, Heinkuhn Oh (Artist Website)
- 아트선재센터, 오형근: 왼쪽 얼굴 (Art Sonje Center, Heinkuhn Oh: Left face)
- 박건희문화재단, 오형근 (Parkgeonhi Foundation, Heinkuhn Oh)
- 코리안 아티스트 프로젝트, 오형근 (Korean Artist Project, Heinkuhn Oh)
- 아트선재센터, 아줌마 – 오형근 (Art Sonje Center, Ajumma - Heinkuhn Oh)
- 일민미술관, 소녀연기 (Ilmin Museum of Art, Girl’s Act)
- 국제갤러리, 소녀들의 화장법 (Kukje Gallery, Cosmetic Girls)
- 박영택, 오형근 – 불안한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