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자(b. 1957)는 오방색의 보따리가 적재된 트럭에 올라 앉아 세계를 유랑하는 작업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려왔다. 김수자의 작품은 한국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통해 형상화된다. 그녀는 작품에서 개인의 역사와 고향, 이주, 이동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결합한다. 설치, 퍼포먼스, 조각, 영화, 사진에서 천은 재료이자 상징으로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김수자, 〈떠도는 도시들 - 보따리 트럭 2727km〉, 1997 ©김수자 스튜디오
보따리 트럭은 김수자를 국제 미술 무대에 각인시킨 첫 번째 작업이었다. 작업 초기, 김수자는 세계의 구조를 수직과 수평으로 파악해 이를 어떻게 2차원 평면에서 보여줄까 고민해왔다. 이러한 수평, 수직의 기본구조에 대한 사유는 그의 천을 꿰매는 바느질 작업인 “꿰매기” 연작에서부터 출발하여 이후 “연역적 오브제” 연작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펼치면 2차원 평면, 싸면 3차원 입체가 되는 보따리의 포용성과 융통성, 가변성은 인류의 모든 것을 품고 싶었던 김수자에게 그의 예술세계를 확장시켜줄 중요한 소재이자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다 문득 천의 앞뒤를 오가는 바느질에서
삶과 죽음, 들숨과 날숨, 음양의 이치를 보았다.”
보따리 연작은 뉴욕 PS1 창작스튜디오의 작업실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보따리는 이삿짐을 옮기기 위한 한국의 전통적인 사물로, 김수자는 이에 자신의 이주의 경험을 투영하는 한편 다양한 사람들의 이민과 실향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초기 작업에서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던 한국을 배경으로 유랑하는 모습을 담았다면, 이후 2007년 <보따리 트럭 – 이주>에서 그는 파리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장소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이주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김수자, 〈바늘 여인〉, 1999-2001 ©김수자 스튜디오
보따리 트럭 이후 나온 작업인 <바늘 여인>(1999-2001)에는 더욱 다양한 문화권의 맥락 안으로 들어간 작가의 모습이 드러난다. 8개의 채널로 된 영상 작업으로, 도쿄·상하이·멕시코시티·런던·델리·뉴욕·카이로·라고스 도심 속 군중 사이에 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김수자의 뒷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제목처럼 김수자는 스스로 ‘바늘 여인’이 되고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각각의 날실이자 직물이 되어 수많이 날실이 엮이듯 다양한 도시 안에서 상호 관계를 만들어지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김수자, 〈실의 궤적 V〉, 2016 ©김수자 스튜디오
바느질과 실, 그리고 천을 매체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엮어내는 김수자의 작업은 이후 <실의 궤적>에서 더욱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으로 나아가게 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는 총 6편의 시리즈 작업이다. 페루,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나바호족과 호피족이 살아가는 인디언 보호구역과 뉴멕시코 지역 등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직조문화를 담아냈다.
김수자, 〈호흡: 보따리〉, 2013. 사진: 정재호 ©김수자 스튜디오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서 선보였던 <호흡: 보따리>는 공간을 하나의 보따리로 확장한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이다. 유리창에 특수 회절 격자 필름을 붙여 마치 프리즘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무지갯빛으로 내부로 들여오며 빛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채의 공간을 자아낸다.
이와 함께 들이쉬고 내쉬는 작가의 숨소리로 이루어진 사운드 퍼포먼스 <더 위빙 펙토리/The Weaving Factory 2004-2013>가 전시의 공간을 채우며 끝없는 빛의 굴절과 반사를 통해 한국관을 하나의 숨쉬는 보따리로 바꾸어 놓았다.
“바느질이 천의 안팎을 오가는 반복이라면, 숨 역시 들숨과 날숨의 반복이죠. 이들 모두 내부와 외부 세계의 경계를 끊임없이 오간다는 점에서”
김수자 작가 ©국제갤러리
김수자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품하였으며, 최근에는 피노컬렉션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메인 전시 공간에서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라켄할시립미술관, 퐁피두 센터 메츠, 구겐하임 빌바오, 국립현대미술관, 국제 갤러리, 뉴욕PS1/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30여 회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다.
그리고 오는 7월에는 캐나다 아가 칸 미술관에서 그룹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작업은 피에르 위버 재단,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리옹 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M+ 등을 비롯한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