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미술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 문경원 & 전준호 작가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예술을 둘러싼 권력관계 등을 탐구해오며 자본주의의 모순, 역사적 비극, 기후 변화와 같은 문제적 이슈를 영상, 설치, 아카이브, 다학제적 연구 및 워크숍, 출판물 등으로 표현해 왔다.

문경원 & 전준호 작가는 각자 작업 활동을 해오며 현대예술과 작품의 의미, 전시의 소모성, 비평의 부재 등에 관한 고민을 하던 중, 실천적인 미술, 스스로에게 반성의 기회가 되는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2009년부터 공동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문경원 & 전준호,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 2012, 카셀 도큐멘타 설치 전경 ©문경원 & 전준호

문경원 & 전준호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그들의 첫 번째 장기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을 2012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는 일종의 협업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그리고 교육,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사회 전반을 성찰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심도 깊은 대화의 장을 마련해왔다.

그리고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상 작업 <세상의 저편>은 모든 사회적 가치와 질서가 사라진 종말 이후 미래 시대에서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의 저편>은 종말 직전의 남자 주인공과 종말 이후 생존한 미래의 여자 주인공에 대한 두 개의 영상으로 구성된다.
두 주인공은 종말을 기점으로 상이한 시공간 안에 분리되어 있지만 ‘예술’을 매개로 연결된다. 종말 직전까지 예술 작업을 계속해오던 남자 주인공의 작업실을 여자 주인공이 먼 미래에 발견하게 되면서 둘의 시공간이 겹쳐지게 된다.

문경원 & 전준호는 백남준, 육근병 작가가 참여한 이후 한국작가로서는 20년 만에 제13회 카셀 도큐멘타에 초청받아, <세상의 저편>을 비롯하여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자신들의 반성의 시각과 많은 조사, 다른 장르와의 협업으로 그 과정을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는 <미지의 세계> 프로젝트를 통해 마주한 공동의 진술을 바탕으로 ‘예술은 인간 인식의 변화를 위한 기획’이라는 생각을 제시하며 예술의 본질과 역할을 규정하기 보다는 예술이 인간 인식의 지평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담담히 제공하며, 제1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문경원 & 전준호, 〈축지법과 비행술〉, 2015 ©문경원 & 전준호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문경원 & 전준호는 한국관의 과거, 현재, 미래뿐 아니라 국가관이라는 경계 너머 베니스 비엔날레의 역사적 서사를 담은 내용으로 구성된 <축지법과 비행술>을 선보였다. 이 또한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팽배한 오늘날 예술의 진정한 역할과 의미에 대한 두 작가의 탐구와 이어진다.

<축지법과 비행술>은 한국관의 구조적 특성을 살려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7개 채널의 영상 설치 작업이며 종말적 재앙 이후 육지 대부분이 물속에 잠겨 한국관이 부표처럼 떠돈다는 전제 속에서 시작한다. 한국관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한 인물이 겪는 이상한 경험과 의도된 만남이 펼쳐진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상상력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 수련인 ‘축지법’과 ‘비행술’에 대해 우리를 구속하는 장벽과 구조를 뛰어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창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예술적 실천의 근간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두 작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자아에 도전하려는 인간 욕망의 일면을 드러내며 예술의 미래를 상상한다.

문경원 & 전준호, 〈자유의 마을〉, 2017 ©문경원 & 전준호

<자유의 마을>은 한국 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을 배경으로 한 영상 작업이다. 한국 전쟁 이후 휴전을 주도한 이들은 군사 경계선과 너무 가까워 사람이 살기 어려운 이 지역을 ‘자유의 마을’이라 이름을 붙였다.

한국전 직후 냉전시대에 정치적, 인위적으로 빚어진 ‘자유의 마을’은 급변하는 한국현대사 속에서도 여전히 그 존재를 감춘 채 내부이자 외부의 영토로 한국 DMZ 지역 내에 존재한다. 이 영상은 ‘자유의 마을’에 대한 고찰과 추적 그리고 상상을 통해 조작되고 은폐된 역사의 허구와 오류를 드러낸다.

‘자유의 마을’에 대한 두 작가의 작업은 이후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2021)로 이어진다. 이는 2채널 영상 작업으로, 자유의 마을을 배경으로 재난 이후 인간의 삶과 예술의 역할에 대해 되묻다. 두 작가의 이러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통해,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한국 내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자각하는 인간 공동의 삶으로 드러난다.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2022) ©아트선재센터

2022년, 문경원 & 전준호 작가는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서 전지구적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로 급변하고 있는 기후 환경을 예술적 상상력과 한제간 협업을 통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서 처음 선보인 신작 <불 피우기>(2022)는 비인간 관점에서 펼쳐지는 관객 몰입형 설치 작업으로, 시공간을 알 수 없는 미지에서 펼쳐지는 기후 이야기를 다룬다. 영상과 함께 공간을 구성하는 설치 조각, 사운드, 조명, 로봇 스팟(Spot)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관객들을 가상으로 구현된 미지의 세계 안으로 몰입시킨다.

이와 함께 전시된 담론 생산과 창의적 협업을 위한 참여 플랫폼 <모바일 아고라: 서울 웨더 스테이션>(2022)은 이산화탄소 문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예술가, 관객,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유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고착화된 어떤 생각의 틀, 인식의 틀을 깨고 그로써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데 예술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전과 후 달라진 인식의 확장이야말로 예술이 기여하는 순기능 아닐까.” (마리끌레르, 문경원 & 전준호 인터뷰, 2023.09.08)

문경원 & 전준호 작가 ©마리끌레르

문경원 & 전준호는 독일 카셀 도큐멘타(2012),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2015), 스위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2015), 영국 테이트 리버풀(2018–2019), 한국 국립현대미술관(2012–2022),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2022) 등에 초대되어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로 영상, 설치, 아카이브, 출판물 등을 제작하고 전시하였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 눈 예술상 및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제 1회 Multitude Art Prize를 수상하였다. 현재 중국 현대모터스튜디오 베이징에서 개인전 “웨더 스테이션(Weather Station)”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전시는 2025년 2월 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