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속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는 이들을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부른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라 마치 숨 쉬듯 디지털 매체와 그 시스템을 이해한다. 이러한 디지털 네이티브의 삶과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기존 시각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이들이 예술로 그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경기도미술관에서는 2022년 오늘날 동시대 미술의 현장을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각으로 돌아보기 위해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전을 열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출생한 국내외 작가 8인의 디지털 아트와 조각, 회화 작품 총 28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갖게 된 디지털 세대의 정서-불안, 권태, 외로움, 혐오-를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에 집중한다.
전시는 “쾌락의 정점을 모른 채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시간이 과연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 될 수 있는지 역설적으로 질문한다.”
김한샘(Kim Hanseam), '신기루(Mirage)', 2021, 금박 동분 피그먼트 프린트 합성수지, 92 x 67 x 10cm
김한샘(b. 1990) 작가는 판타지물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벽면 및 설치 작업을 한다. 작가는 마법, 괴물, 영웅, 천사 그리고 악마와 같은 게임 속 도상들을 활용해 주관적 상상력으로 그 이야기를 표현한다. 작가는 2D 인터페이스 게임의 비트맵 이미지를 컴퓨터로 그려 출력한 후 이를 조각 구조물과 병합한다. 의도적으로 어딘가 조악하게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현실과 가상, 고급과 키치를 대비시킨다.
김희천(b. 1989) 작가는 디바이스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탐구한다. 감각 차단 탱크와 잠수의 경험을 활용해 현실과 가상 세계가 혼재한 상태를 영상 작품 “탱크 Deep in the Forking Tanks”로 구현했다. 탱크에 들어가면 모든 신체 감각이 사라져 오직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뮬레이션 중인지 실제 잠수 중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작가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기이한 상태를 엿보여줄 뿐만 아니라 기술 발달이 인간의 기대를 벗어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박윤주(b. 1985) 작가는 건축가와 협업해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현했다. 무덤은 매우 사적이지만 동시에 한 문화권의 특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무덤의 특성을 기반으로 작가는 ‘룬트마할’이라는 작품에서 가상의 무덤을 구현했다. 작가는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을 살아 있는 상태에서 여행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가상 공간에 구현된 오브제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오스트리아 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테파니 모스하머(b. 1988)는 다큐멘터리와 개념 사진을 활용하여 주변 사람들의 삶과 내밀한 감정을 기록했다. 전시된 ‘당신과 나 각각의 해로움 하나의 베개 연작으로부터’는 자신의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자임을 알고 하루빨리 치료되기를 빌고자 썼던 한 편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작가는 여성 알코올 중독자들의 눈을 담은 사진을 기록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외면하는 대화 주제를 수면 위로 꺼낸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활동하는 쉬어 헨델스만(b. 1989) 작가는 음향과 시각적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의 비디오 작품 ‘레차타티브’는 스카이 리프트에 올라 바흐의 콘체르토를 부르는 테너 가수의 영상을 담아냈다. 테너의 목소리에 따라 리프트가 일제히 상승하지만, 기계들은 그만 한계에 도달하고 화면 아래로 내려간다. 상승하는 리프트와 가수는 신에게 도달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작가는 손상된 기계음과 시각 효과를 통해 인간 사회의 혼란을 초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안가영(b. 1985) 작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에 일어나는 상황을 주목하고 이를 게임 형태의 실시간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다. ‘KIN거운 생활: 쉘터에서’라는 시뮬레이션 게임 영상 작품에서는 복제견 메이, 청소 로봇 준, 이주 노동자 줄라이와 같은 소외된 다양한 종이 서로 위로 받고 도우면서 지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 로봇 등 다양한 존재가 공존하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추수(Tzusoo), '틴더(Tinder)', 2022, 3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컬러, 5:40
추수(b. 1992) 작가는 무엇이라도 데이터로 치환할 수 있는 오늘날의 사회를 되돌아보고, 이러한 데이터들의 흐름, 그리고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인간의 영역을 살펴본다. ‘틴더’라는 작품에는 가상 인물 에이미가 등장한다.
에이미는 디지털 세계에 거듭 등장하는 이미지의 데이터를 수집해 그에 반하는 외향, 인격, 가치관을 가진 인물로 만들었다. 작가는 에이미를 통해 인간의 존재가 데이터로 치환되어 디지털 환경 속에 놓이는 과정을 그리며 우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한다.
최지원(Choi Jiwon), '수호자(Guardian)', 2022, 캔버스에 유채, 193.9 x 130.3cm
최지원(b. 1996) 작가는 오래된 도자 인형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회화 작품을 그린다.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주로 생산되었던 이 인형들은 광택이 흐르는 매끈한 표면을 가졌지만, 금방이라도 깨질 듯 연약한 데다가 아무런 표정도 담고 있지 않다. 작품은 생명이 없는 정물화지만 동시에 어떤 생명력이 느껴지는 인물화 같기도 하다. 이는 온라인 속 우리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에서 갖는 어떤 격차를 대변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도자 인형을 통해 불안함과 무감각한 동시대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