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은 가나아트 컬렉션 상설전 “80 도시현실”을 2023년 5월 25일부터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21점의 회화, 사진, 조각을 통해 급속도로 변화하는 1980년대 도시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표출한다.
가나아트 컬렉션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주요 컬렉션 중 하나로 민중 미술 그리고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을 포괄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가나아트 컬렉션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200점의 작품군으로, 미술관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나아트 컬렉션은 196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사회 현실을 적극 반영한 민중 미술 그리고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포괄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세 차례의 상설전을 통해 가나아트 컬렉션을 소개한 바 있다. 첫 번째 2016년의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전으로 출발해, 2018년의 “시대유감”, 그리고 2020년의 “허스토리 리뷰”전이 개최되었다.
이번에 개최된 새 가나아트 컬렉션 상설전 “80 도시현실”은 가나아트 컬렉션 14점과 기타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총 21점의 회화, 사진, 조각 등으로 급속도로 변화하는 1980년대 도시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표출한다. 전시는 2023년 5월 25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가나아트 컬렉션 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시는 ‘도시화의 이면’, ‘도시인’, ‘도시를 넘어–생명의 근원’이라는 세 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첫째, ‘도시화의 이면’에서는 1980년대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 의식을 표출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둘째, ‘도시인’은 1980년대를 살아간 현대인의 삶과 정체성, 소외와 불안 등을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도시인의 현실에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셋째, ‘도시를 넘어 – 생명의 근원’에서는 1980년대 도시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농촌 문화를 민중의 정체성으로 파악하면서 농촌과 자연이 지닌 생명력을 표현하였던 민중 미술 계열 작가의 작품과 민중 미술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작가 중 자연의 생명력을 통해 강인한 민중의 역사를 표현한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당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시각을 빌려 1980년대 도시화를 경험한 개인과 한국 사회의 다층적인 현실을 이해하고자 한다. 나아가 40년이 지난 현시점에 이러한 예술 작품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컬렉션의 출발
가나아트 컬렉션이 미술관 소장품으로 들어간 2001년 전후는 미술관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였다. 1980년대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으로 급격한 도시화를 이루고 국민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다. 게다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세계로 발돋움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예술 수준을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부족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개최에 걸맞은 현대 미술 공간, 특히 수도인 서울에 시립미술관이 필요하다는 한국의 미술계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에 맞춰 개관했다.
초창기 미술관의 컬렉션 수는 두 자리 수에 불과했다. 미술관은 매년 평균 30 점씩 꾸준히 작품을 수집했지만 적은 예산의 한계와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개관한 지 10년이 지난 1999년에도 전체 소장품 수는 총 487점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당시 수집된 작품들은 미술관 건립을 염두에 두고 1995년부터 개최되었던 “서울미술대전”의 출품작이 주를 이뤘다.
이러한 미술관의 소장품 수집 방식과 그 수는 1999년 이후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99년은 미술관의 제1대 관장이 취임한 해였다. 고(故) 유준상 초대 관장은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던 전문인이었다. 미술관은 전문 미술 기관으로서 이때부터 관전에 출품된 작품들에 한하지 않고 학예직에 의한 대외적인 컬렉팅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2000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역사상 유례없는 230점의 작품 수집이 이루어졌다.
김아영 학예연구사의 글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수집 역사와 ‘가나아트 컬렉션’’(2018)에 따르면, 제1대 관장 시기에 이루어진 소장품 수집은 공공미술관으로서 한국 현대 미술사의 한 경향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컬렉션의 다양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수집 역사상 최초의 사례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미술관은 기관 특성에 맞는 소장품 수집의 방향을 구축했다.
당시 기증 작품 230여 점 중 1980년대 민중 미술 계열의 대표 작가가 창작한 작품은 전체 수집 작품 중 53.4%(123점)를 차지했다. 이는 1년 뒤에 기증이 성사된 ‘가나아트 컬렉션’의 소장 작가와 상당 부분 겹쳤다.
이렇게 점점 늘어나는 소장품으로 인해 미술관은 구 서울고 본관에서 서소문관으로 이전하여 재개관하기로 했다. 구 서울고 본관에 위치했던 수장고의 면적은 약 80평으로 공간의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기증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실제로 서소문 이전 재개관이 결정되면서 미술관의 소장품 컬렉션도 더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1998년에 성사된 천경자 화백의 작품 93점 기증과 2001년 200점의 수집품 기증으로 이루어진 가나아트 컬렉션이다. 두 컬렉션은 2002년 미술관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옛 대법원 터로 이전하여 재개관하는 시기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가나아트 컬렉션
2001년에 기증된 ‘가나아트 컬렉션’은 1960-1990년대 사회 현실을 반영한 작품군으로, 민중 미술가들을 포함한 리얼리즘 경향의 작가 46명의 회화(한국화, 서양화), 조소와 공예, 판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중 160여 점은 민중 미술을 적극 추동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가나아트 컬렉션을 통해 서울시립미술관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 민중 미술과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을 대량 확보할 수 있었다.
‘가나아트 컬렉션’을 기증한 가나아트 이호재(b. 1954) 회장은 1978년부터 아트 딜러로 활동했으며 1983년 인사동에 가나화랑을 열며 본격적으로 갤러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시기에 그는 민족미술협의회의 전시 공간이었던 ‘그림마당 민’의 개관기념전(1986) 때부터 전시 공간을 직접 찾으며 민중 미술 작품을 구입했다. 이때부터 그가 소장한 리얼리즘 계열 작품은 점차 늘어나 지금의 가나아트 컬렉션을 이루게 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호재 회장이 한국 리얼리즘 계열의 중요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후 작품 구입을 논의하게 된다. 이때 이호재 회장은 본인이 수집한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모인 상태에서 전시와 연구를 진행해야 민중 미술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해 서울시립미술관에 개인적으로 수집한 작품들을 기증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한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립미술관 측에서 컬렉션 중 몇 점을 구입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몇 점이 빠지고 나면 전체 컬렉션의 짜임새가 헝클어지겠더군요, 그래서 작품을 흩어지지 않게 하면서 보다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 공공기관에 보내는 게 의미 있겠다 싶어 기증을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술관에서 2000년에 수집한 소장품은 이 회장의 개인 컬렉션과 강한 연결 고리로 작용하며 미술관의 컨텐츠를 강화해 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미술관은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컬렉션을 갖추고 리얼리즘 계열의 소장품을 양과 내용을 보완하고자 가나아트의 기증과 같은 해에 이상국, 노원희, 주재환, 최병수 등의 작품 45점을 추가 수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