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자 작가는 한국 최초로 섬유예술을 현대 미술로 끌어들인 작가이다. 한국 동시대 미술계와 이신자 작가의 유산이 어떠한 영향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연구·조사된다면 앞으로 한국 미술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섬유예술의 미술사를 찾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Poster image of “Lee ShinJa- Threadscapes,” MMCA Gwacheon. Image courtesy of MMCA.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특히 미술사에서 미처 조명 받지 못했던 사실을 드러내는 일은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글로벌 미술계는 서구의 주류 예술가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 성 정체성을 가지며 혁신적인 실험을 하는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표현을 조명하고 있다.

2022년 글로벌 미술계에서 이러한 노력은 여러 비엔날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베니스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인 “꿈의 우유”에서는 초현실주의 여성 거장, 현대 여성 예술가, 제3의 성정체성을 가진 논바이너리 예술가들의 작품이 집중 조명되었다. 미국은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작가인 시몬 리(Simone Leigh)를 내세웠고 한편 독일 도큐멘타는 인도네시아에 기반을 둔 예술 단체 루앙루파(ruangrupa)를 예술 감독으로 임명했다.

글로벌 미술계의 다양성 조명하기는 올해 아트 페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특히 여성 예술가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조명되고 있다. 9월에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는 신진 여성 작가인 우한나가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프리즈 마스터즈에서는 미술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여성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이 마련되었고 같은 기간에 개최된 위성 페어로 여성 작가의 작품만을 소개하는 아트 페어가 처음 개최되기도 했다.

Exhibition view of “Lee ShinJa- Threadscapes,” MMCA Gwacheon. Image courtesy of MMCA.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인종이나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편은 아니지만 국내 미술계 또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예술을 발굴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단색화와 민중 미술에 가려져 오랜 기간 재야의 작가들로 남았던 실험 미술 작가들이 수면 위로 올랐으며, 남성 위주의 미술계에서 밀려났던 여성 작가들의 작업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조명되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섬유예술을 펼쳤던 이신자 작가의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이신자, 실로 그리다”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는 이신자 작가의 1950년대 초기작부터 2000년대 최신작과 더불어 드로잉과 사진 등 아카이브 30여 점을 연대별로 정리해 놨다.

작가는 ‘섬유예술’이라는 말이 아직 흔하지 않았던 때에 태피스트리 작업을 펼치는 등 한국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여성 작가이다.

Exhibition view of “Lee ShinJa- Threadscapes,” MMCA Gwacheon. Image courtesy of MMCA.

그렇다면 섬유예술은 무엇인가? 이는 섬유나 천을 소재로 한 예술 형태를 포괄하는 용어로 자수, 태피스트리, 직조, 염색, 디지털 프린트, 퀼트, 펠트 등의 재료나 기법을 사용한 예술 작품을 말한다. 

하지만 이신자 작가는 전통적인 섬유 재료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밀 포대, 방충망, 벽지, 종이 등 ‘일상의 재료’를 예술의 소재로 끌어와 다양한 실험을 펼쳐온 작가로서 지금 조명되고 있다.

이신자 작가가 지금 미술관에서 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1950년대부터 작가로서 활동하면서 그가 한국 현대 미술계에 가져온 독창성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 한국 여성들은 미술가로서 활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미술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들은 대다수가 자수과를 선택했는데 당시에 자수는 교양 있는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에서 가장 먼저 생긴 4개의 과 중 하나가 바로 자수과이기도 했다. 

이신자 작가는 자수과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수 기법을 사용해 한국 미술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Exhibition view of “Lee ShinJa- Threadscapes,” MMCA Gwacheon. Image courtesy of MMCA.

현대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섬유를 활용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김수자, 서도호, 우한나 작가 등이 있다. 이들 작가들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수와 섬유를 현대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이신자 작가와 큰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조명되고 있는 이신자 작가의 작업 세계를 정리하고 그의 유산이 한국 동시대 미술계와 어떠한 영향 관계를 갖고 있는지 앞으로 연구·조사한다면 한국 미술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섬유예술의 미술사를 찾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