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미술사에 끊임없는 전환을 불러 일으키는 장르이다. 하지만 타 장르에 비하면 미술사적 비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사진은 회화와 조각 같은 전통적인 예술과는 다른 역사를 가졌으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미지가 저절로 복사된다는 특성 때문에 다큐멘터리나 상업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졌지만, 예술로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진기는 1820년대에 처음 등장해 이후 빠르게 인기를 끌었지만 예술로서 받아들여진 것은 100여 년 후였다. 1930년부터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한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이 1940년대에 사진부를 개설해 중요한 장르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예술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는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사진을 받아들이고 나름의 역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8년 워커힐 미술관의 “사진, 새시좌”전을 출발점으로 한국은 한국만의 독자적인 예술 사진의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참가한 작가들은 국내 1세대 유학파로, 사진을 다양한 매체와 혼용하고 관행 밖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예술 장르로서 사진을 확장시켰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1990년대에는 ‘메이킹 포토(만드는 사진)’로 대변되는 한국만의 특수적인 사진 예술의 맥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후에 한국의 사진 예술을 실험하는 전시가 펼쳐졌고, 나중에는 박건희문화재단, 일우재단, 고은사진미술관과 KT&G 상상마당과 같은 기관에서는 동시대 사진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 사진사를 정리하고자 하는 노력들도 이뤄졌다. 1994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한국 사진의 흐름전 1945-1994”,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사진-새로운 시각”전,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전이 개최되었다.
하지만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전시들은 예술로서 한국 사진사를 명확하게 보여 주기에는 기준이 불명확하고 주제가 모호했으며, 매체가 가져다 주는 새로운 관점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 현대 예술로서 한국 사진사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공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은 2024년 개관을 목표로 소장품을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사립미술관으로서 뮤지엄한미는 2022년 12월 21일부터 더 넓은 전용 공간에서 한국 사진사를 연구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한미사진미술관이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기오헌 건축사사무소의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한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다.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건물에 위치했던 한미사진미술관은 12월 21일 삼청동에 ‘뮤지엄한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미술관의 명칭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뮤지엄한미로 바꾼 것은 개념 미술의 영향과 최근 뉴미디어아트까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진 매체의 역할 변화와 예술로서 끊임없이 진화한 사진 예술의 형식적 내용적 변화 등 사진 매체의 전반을 미술관의 미션 범위로 아우르기 위함이다.
뮤지엄한미는 지하 1층, 지상 2층, 3개의 동으로 이뤄져 전시실 3개, 복도형 전시실 1개, 일반 수장고와 개방형 수장고, 멀티홀 외에도 아트 스토어와 카페를 갖추고 있으며, 라운지와 레스토랑도 생긴다. 앞으로 삼청동 건물이 뮤지엄한미의 본관으로 활용되고 한미약품 건물에 위치한 기존의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 및 미술 자료 도서관으로 사용된다.
개관전으로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이 12월 21일부터 2023년 4월 16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 사진사 50년을 살펴보는 기획전으로 한국 사진이 어떠한 제도적 조건과 역사적 문맥 속에서 흐름을 이어 갔는지 살펴본다. 전시는 작가 40여 명의 사진 200여 점과 아카이브 자료 100여 점을 전시한다. 이와 별개로 개방형 수장고도 열어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은 사진 장르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는 전시로 사진을 예술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한국 사진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1929년 무허(舞虛) 정해창 작가와 같이 한국 최초로 개인 사진전을 열어 사진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사진 장르가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던 시대별 공모전, 관전과 민전의 사진들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1957년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최되어 한국 현대 미술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던 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전 “인간가족”의 자료도 살펴볼 수 있다. (“인간가족”전은 1962년부터 7년간 38개국 100여 개의 도시를 돌았던 전시로 한국에서만 30만 명, 전 세계에서 9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이와 더불어 1980년 국립 미술관의 사진 전시를 통해 사진이 현대 미술의 장르로 자리잡고 본격적인 컬렉션의 대상으로 부상한 흐름도 볼 수 있다.
전시와 관련해서 한국의 사진예술사를 짚어볼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뮤지엄한미는 사진 예술을 둘러싼 제도와 컬렉션의 문제를 다루고자 국내 여러 전문가들을 모아 두 개의 세미나를 개최한다.
2023년 1월 3일 오후 2시에 진행 예정인 ‘한국 예술 사진의 전개와 제도’ 세미나는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까지 한국 예술 사진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일제 강점기의 공모전, 한국 사진계를 이끈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국제 사진공모전’ 그리고 ‘동아사진콘테스트’와 ‘국전’ 등 한국 사진사 전개 과정과 제도의 형성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살펴본다.
2023년 2월 11일 오후 2시에 이뤄지는 ‘미술관·박물관의 사진 컬렉션과 사진의 진본성’ 세미나에서는 현대 예술로서의 사진과 국내 미술관 및 박물관 컬렉션 운용 그리고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진 작품을 살펴보고 오늘날 사진 매체의 진본성 설정에 대해서 논의한다.
뮤지엄한미의 전신인 한미사진미술관은 2003년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주)한미약품은 문화 예술을 지원하고 이를 대중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가현문화재단을 설립했으며, 문화재단은 전시, 학술, 출판, 교류 등을 통해 다양한 작가를 지원함으로써 사진 문화 예술을 활성화하고 한국 근현대 사진을 연구하고자 했다. 미술관은 지난 20년간 2만여 점의 사진 소장품을 모았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수장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2024년 서울 도봉구 창동역 일대 서울광역푸드뱅크 부지에 개관하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계속해서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시는 사진미술관이 한국 근현대 주요 사진 작품과 자료 1,475점을 추가로 수집했다고 밝혔다.
2020년부터 컬렉션을 구축하기 시작한 사진미술관은 올해 3차 수집을 진행해 현 시점까지 모두 1만 4천여 점의 소장품을 확보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2020년 1차 수집에서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사진을 중심으로 수집했고, 2021년 2차 수집에서는 한국 전쟁 기록 및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수집했다. 이번에 추가된 수집품들은 3차에 해당한다.
미술관에 따르면, 수집품에는 국내 주요 사진가의 활동 작품과 미발표작은 물론, 그동안 한국 사진사 연구에 드러나지 않았던 미발굴 작가의 작품, 다양한 형식을 실험한 작가들의 작품 등 한국 사진사적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현대 사진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작품 다수가 포함됐다. 정해창(1907∼1968) 작가, 임석제(1918∼1994) 작가, 조현두(1918∼2009) 작가, 구본창 작가, 홍미선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공공미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으로서 “균형 잡힌 한국사진사를 정립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진 매체의 특성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전문성과 대중성, 국제성과 지역성을 포괄하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미술관은 작품 수장을 위한 사진 특화 보존·복원 처리와 디지털 아카이빙 사업도 진행한다.
아직 개관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매년 사전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공유하고 ‘한국(지역)’, ‘사진(매체)’, ‘미술관(위상적 특수성)’이 조화롭게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10월 21일까지 북서울미술관에서 사전 프로그램 “정착세계”를 열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주요 소장품과 2010년대부터 2020년대의 동시대 작품 등 소장품 100여 점을 소개했다. 전시 도록은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Poster image of Seoul Museum of Photography Pre-opening Seminar ⓒ Seoul Museum of Art.
또한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는 ‘(불)완전한 미술관’ 세미나를 열어 그간 진행된 건축, 수집, 전시, 교육 연구의 과정을 공유하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요구하는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주용태 서울특별시 문화본부장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특성에 맞춰 1920∼2000년대를 아우르는 사진 특화 소장품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앞으로도 개관 전까지 140년의 한국 사진사를 정립하고 사진 매체 변화에 따른 확장된 성격을 포용하는 작품을 꾸준히 확보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