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에 개관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를 통해 우리는 한국 현대 미술가들의 작업 세계의 뿌리를 탐구하고 그 철학적, 미학적 토대를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 현대 미술사에서 소외된 이야기를 재조명해 볼 수 있다.

Image by Nathan Anderson, Unsplash.

미술 아카이브가 없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미술사를 다채롭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작품 외에도 다양한 관련 기록과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작품과 작가 사이에 비어 있는 이야기를 채워 우리가 미술의 맥락을 이해하고 역사화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 의미에서 4월에 문을 연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와 2008년에 등록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미술 아카이브 기관들은 한국 현대 미술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미술 아카이브 기관들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한국 현대 미술사의 빈칸을 채워 나갈지 기대되는 바이다.

일반적인 아카이브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록이나 문서들의 컬렉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술 아카이브란 무엇일까? 미술 아카이브는 일반 아카이브보다 더욱 광범위한 자료를 포함하는데, 이는 작품과 관련한 사진, 브로슈어, 도록, 갤러리 및 미술관의 행정 서류, 판매 기록, 관련 드로잉, 영상 자료 등을 아우른다.

미술 아카이브의 중요성은 최근 들어 더욱 대두되었다. 미술 아카이브가 작품이 아님에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 작가와 작품에 대한 맥락과과 배경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술 아카이브를 통해 작가가 작품을 제작할 때 어떤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었는지,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왔고 작가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후일담도 알 수 있다.

Judy Chicago. Photo credit: Donald Woodman.

작가는 이러한 아카이브 자료를 갖춤으로써 미술계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작가의 미술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얼마나 견고하게 구축되었으며, 앞으로 미술계에서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 아카이브 자료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요한 예술가들의 활동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 주어 다양한 작가들의 활동을 조명할 수가 있다.

모두가 잘 아는 하나의 예시가 바로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이다. 반 고흐의 작품 세계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살아생전 동생 테오 반 고흐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더욱 풍부해졌다.

또 다른 예로는 미국 국립 여성 예술가 박물관의 여성 작가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사에서 간과되었던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조명한다. 박물관의 도서관 및 연구센터(LRC)에서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b. 1939)의 저명한 작품 ‘디너 파티(The Dinner Party)’와 관련한 방대한 아카이브 자료를 모아 비주얼 아카이브를 선보이고 있다. 이 컬렉션을 통해 박물관은 작품의 성장 배경과 페미니즘, 유대교 등 작품이 어디에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드러내고 있다.

Exhibition view of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New York. (Jan 18, 2008 – May 04, 2008).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아카이브 자료는 미술의 역사화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카이브 자료는 전시 기획자가 전시를 꾸리고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을 지낸 바 있는 세계적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1963~2019)는 2008년 국제 사진 센터에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를 전시해 아카이브 자료를 작품에 활용하는 글렌 리곤(Glenn Ligon), 토마스 러프(Thomas Ruff), 앤디 워홀(Andy Warhol), 스탠 더글러스(Stan Douglas),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등 여러 작가들의 사례를 조명했다.

미술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2000년대를 중심으로 관련 전문 기관과 부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에 설립된 홍콩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AAA)는 40,000여 권의 도서와 전시 도록, 10,000여 점의 역사적 유물, 20세기 초 이후 아시아 미술을 소개하는 수많은 CD와 DVD를 소장하고 있다. AAA는 아시아 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한 방대한 아카이브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시아 현대 미술의 연결성을 찾고 국제 미술계에서 아시아 미술의 중요성을 조명한다는 의미에서 큰 의의를 가진 기관이다.

한국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미술관 그리고 의정부 미술도서관과 같은 기관들을 통해 다양한 한국 현대 미술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특히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미술 관련 아카이브 자료를 수집하는 전문 공공 기관으로서 그 활동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terior view of SeMA Art Archive, Seoul. ⓒ Kim YongKwan.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와 같은 기관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계는 여기저기 흩어진 한국 현대 미술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한국 현대 미술사를 이루는 기초 자료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 현대 미술사에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메울 수 있다면 더욱 다채로운 한국 현대 미술사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오는 7월 30일까지 두 개의 아카이브 기획전을 진행한다.

최민 컬렉션 기획전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은 최민(1944~2018)이 미술관 측에 기증한 작품 161점과 자료 24,924건의 컬렉션이다. 시인, 미술 전문 번역가, 비평가, 교육자인 최민은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와 존 버거(John Berger)의 저작을 번역하고 국내 미술 운동 그룹 ‘현실과 발언’을 창립하는 등 국내 시각 문화의 장을 확장한 인물이다.

“아카이브 하이라이트: 김용익, 김차섭, 임동식”전은 3명의 예술가들의 작업실에서 발굴한 1차 자료들을 선보인다. 김용익, 김차섭, 임동식 작가는 1970년대 이후 급변하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펼쳐 온 작가들로, 이번 전시를 통해서는 이들의 화구부터 작업 재료, 스케치, 작가 노트, 육성 녹취 등 다양한 형식의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국내에 여러 아카이브 기관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의 활동이 크게 조명된 적은 없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을 계기로 국내의 다양한 아카이브 기관들이 시너지를 발휘하여 한국 현대 미술사를 기록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의 활동을 통해 예술가들의 예술 세계를 정리하는 것은 물론 한국 현대 미술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우리 현대 미술사에서 소외된 측면을 재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