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예술 기관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예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현대 미술 담론을 더욱 발전시키고, 새로운 세대의 작가를 발굴하는 동시에 진화하는 현대 미술의 지형을 탐구할 수 있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단어를 나란히 놓아 보자. 과학과 예술은 언뜻 보면 서로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분야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과학을 이성의 극단, 예술을 감성의 극단에 있는 분야로 본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서로 밀접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 과학과 예술도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의 생활 방식이 바뀌고,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면서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예술의 혁신을 불러온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빛을 포착하고자 했던 인상파 화가들이다. 정확한 소묘 표현 없이 순간적인 빛의 효과를 즉흥적으로 그리는 인상파 회화는 당시에 본 적 없는 방식의 작품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은 어떤 천재적인 화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갑자기 탄생한 것 같지만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영향 관계에 기인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순간적인 빛을 표현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은 빛이 색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뉴턴은 1665년 한 실험을 통해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이 분산되면서 무지개색으로 나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발견은 문필가이자 철학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 W. Goethe)에게도 영향을 주어 색채학 연구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색채계는 인상주의 화가뿐만 아니라 현상학 계열의 철학자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탄생할 때마다 미술계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사조와 거장들이 등장했다. 예컨대 사진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잔은 다시점으로 그린 그림을 고안해 냈으며, 세잔의 혁신적인 활동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점에서 대상을 그리는 큐비즘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근대 이전 미술사는 시대마다 한두 개의 지배적인 사조로 흘러갔다. 그런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예술 사조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은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낳았고 예술계에서 다양한 사상과 현상이 출현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미술계에서는 다문화주의가 발전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는 이제 하얀 벽에 걸려 있는 작품을 경험하는 것 못지않게 화면 안에 연출된 작품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현실이라는 실재와 디지털 화면 속 가상 공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최근엔 블록체인의 등장으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 NFT)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들도 등장했다.
요즘 가장 대두되고 있는 기술은 인공 지능(AI)이다. 이제는 인공 지능이 과제를 대신해 주는 것에서 나아가 예술도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딥드림(Deep Dream), 달리(DALL-E),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AI는 스스로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이 등장하면서 어떠한 이들은 AI가 예술가를 대체하여 예술 영역에서 인간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8년에 등장한 AI 화가 오비어스는 ‘에드몽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라는 작품을 만들어 201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추정가 약 1,300만 원에 출품했는데, 이는 치열한 경쟁 끝에 한화 약 5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렇게 발 빠르게 바뀌어 가는 기술 환경 속에서 현대 미술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으며, 어떠한 모습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될까? 미술관과 미술 시장 등 국제 미술계는 이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제시하고 이를 둘러싼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모마)는 2022년 11월 인공 지능(AI) 아티스트 1세대로 불리는 튀르키예 작가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비(非)지도(Unsupervised)’를 전시하고 있다. ‘비지도’는 그동안 미술관에서 약 200여 년간 축적해 온 소장품 이미지 데이터와 더불어 실시간 날씨, 관람객 움직임과 소리에 대한 데이터도 함께 인공 지능(AI)을 이용해 수집과 분석 그리고 재해석함으로써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리얼 타임 데이터 페인팅을 보여 준다.
모마는 AI를 활용한 작품 전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다. 모마의 큐레이터들은 AI 기술과 관련한 담론을 만들어 가기 위해 아나돌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AI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상을 올리거나 전문가들이 AI와 동시대 미술의 연관성을 분석한 글을 홈페이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한국은 삼성과 현대, LG라는 대기업을 보유한 국가다. 이 때문에 기술강국이라는 타이틀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LG와 현대자동차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예술과 과학 기술을 융합하는 프로젝트를 다방면으로 후원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에는 백남준아트센터나 아트센터나비미슬관 그리고 최근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같이 미디어 아트 또는 신기술과 예술을 소개하는 미술관도 있다.
국내의 현대 미술계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동시대 미술 담론을 쌓기 위해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많은 예술 기관과 단체가 디지털 플랫폼과 기술을 도입해 예술의 저변과 접근성을 확대하는 만큼 새로운 기술을 통한 현대 미술 담론이 발전된다면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와 연구자가 함께 진화하는 현대 미술 지형의 탐색이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