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시장은 2022년 프리즈 서울이 막을 내린 후 눈에 띄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갤러리들은 국내 미술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한국에 진출하거나 지점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미술 시장은 국내에 유입되는 해외 갤러리들과 함께 성장하기 위한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

Patricia Ready Gallery of Art, Vitacura, Chile. Photo by Antenna, Unsplash.

2022년 9월, 첫 프리즈 서울이 개최되기 전후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한국에 몰려들었다. 2022년 쾨닉, 글래드스톤, 페레스 프로젝트, 에스더 쉬퍼, 탕 컨템포러리 등 수많은 해외 갤러리들이 새로이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한국 지점을 운영하던 갤러리들은 공간을 확장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 한국 지점을 운영하고 있던 페로탕은 2022년 도산공원에 두 번째 지점을 냈고, 2017년 한남동에 자리 잡은 페이스 갤러리는 2021년 르베이지 빌딩으로 이전하여 전시 공간을 확장해 나갔다. 2017년 한국에 상륙한 리만 머핀도 2021년 말 확장 이전을 하며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다양한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젊은 갤러리 베리어스 스몰 파이어스(VSF)는 2019년 한남동에 자리를 잡고 꾸준히 활동 중이다.

2022년 첫 프리즈 서울이 막을 내리고 한국 미술 시장은 눈에 띄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외 갤러리들은 국내 미술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한국에 진출하거나 지점을 확장하고 있다.

화이트 큐브
White Cube Seoul, Horim Art Center, Gangnam-gu, Seoul. Courtesy of White Cube.

영국 런던 기반의 갤러리인 화이트 큐브가 올가을 서울시 강남구 호림아트센터 1층에 서울 지점을 개관한다. 1993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한 화이트 큐브는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개빈 터크(Gavin Turk) 등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는 영국 작가군의 개인전을 열면서 명성을 키워 온 갤러리이다.

홍콩에 이어 아시아의 두 번째 지점이 될 예정인 ‘화이트 큐브 서울’은 전시 공간, 프라이빗 뷰잉룸, 사무실 등으로 구성된다. ‘화이트 큐브 서울’의 디렉터로는 2018년 갤러리에 합류한 양진희 씨가 운영을 맡는다.

제이 조플링(Jay Jopling) 화이트 큐브 최고경영자(CEO)는 KBS에서 “한국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는 작가 박서보의 고향이기도 하며 아트에 열정적인 콜렉터들 간의 커뮤니티가 잘 형성된 매우 활기찬 도시”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2022년 프리즈 서울을 통해 첫선을 보였고 한국이 가진 세계적인 예술 시장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가을 새로 선보이는 갤러리 오픈에 맞춰 다시 한번 한국을 찾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이트 큐브는 런던을 비롯해 홍콩,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과 웨스트 팜 비치에 지점을 두고 있다. 화이트 큐브는 단색화의 대가인 박서보 작가의 개인전을 런던, 웨스트 팜 비치, 홍콩 지점에서 개최한 바 있다. 화이트 큐브는 올해 서울 외에도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새로 전시 공간을 열 예정이다.

타데우스 로팍
Thaddaeus Ropac Seoul, Fort Hill building, Hannam-dong, Seoul. Courtesy of Thaddaeus Ropac.

2021년 한국에 진출한 타데우스 로팍은 2년 만에 전시 공간을 확장한다. 갤러리는 서울 한남동 포트힐 빌딩의 2층에 있던 전시 공간을 1층까지 늘려 운영한다.

타데우스 로팍은 오는 9월 4일 기존 전시장에서는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개인전을 열고, 새로 생긴 1층 전시 공간에서는 개념미술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작품을 선보인다. 두 전시는 오는 9월 6일에서 10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열린다.

황규진 타데우스 로팍 서울의 총괄 디렉터는 “서울 갤러리의 확장으로 더욱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며 “확장된 공간에서 보다 풍부한 전시를 선보이며 역동적인 서울의 예술 환경과 커뮤니티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페레스 프로젝트
Exhibition view of “Cece Philips: Walking the In-Between,” Peres Projects Seoul. Courtesy of Peres Projects.

20주년을 맞이한 베를린 기반의 페레스 프로젝트는 2022년 4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내에 첫 아시아 분점을 열었다. 그리고 한국에 진출한 지 1년 만인 지난 2023년 4월 28일 삼청동에 있는 4층짜리 건물에 두 번째 지점을 열었다. 건물의 1, 2층은 전시 공간, 3, 4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2002년 하비에르 페레스(Javier Peres)가 설립한 페레스 프로젝트는 독일 베를린 외에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지점을 두고 있으며, 실험적인 작업을 전개하는 전 세계의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현대 미술 갤러리이다.

갤러리의 전속 작가인 도나 후앙카(Donna Huanca)는 볼리비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시카고 출신 작가로 서울 마곡동의 스페이스 K에서 6월 8일까지 개인전을 가졌다. 또 다른 전속 작가인 리처드 케네디(Richard Kennedy)는 미국 태생의 블랙 퀴어 작가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6월 4일까지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페레스 프로젝트의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는 “지난 10년간 한국을 다니면서 이 지역에 갤러리를 내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전도유망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더 많은 관람객에게 알리고 소개한다는 갤러리의 정체성에 맞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신라호텔 내 기존 공간은 활용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갤러리와 공존을 모색하는 한국 미술 시장
Exterior of Le Beige Building, Seoul, South Korea. Photo by Sangtae Kim. Courtesy of Pace Gallery.

한국 미술계에는 국내에 해외 갤러리가 유입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동시에 개최되면서 국내 갤러리들이 해외 갤러리들에게 밀려 경쟁력을 잃기도 했다. 일부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한국 미술계의 자생력을 떨어뜨리고 시장 내에 위기감을 조성했다며 비판했다. 또한 해외 갤러리와 외국 작가에 유독 호의적인 한국 컬렉터들의 투기적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연결된 글로벌 시대에 국내 미술 시장의 자생력을 지키고자 시장의 문을 닫을 수만은 없다. 한국 미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지 역할을 지향하는 만큼, 국내 미술계도 국제 미술 시장의 유입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해외 미술 시장이 한국의 구매력을 빼앗아 간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기회를 통해 한국 작가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해외 갤러리와의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

Exhibition view of "Lari Pittman: Opaque, Translucent and Luminous" Lehmann Maupin, Seoul. (March 15–May 7, 2022). Photo by OnArt Studio.

그러기 위해서 우리 미술계는 해외 갤러리들이 한국 미술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서울 지점을 운영하는 해외 갤러리들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통해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작가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하지 않았다.

메가 갤러리인 페이스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지점에서 개최한 세 차례의 전시에서 한국 작가를 소개했다. 2019년에는 이건용 작가, 2022년에는 재미 작가 임충섭 리차드 터틀(Richard Tuttle)과 함께 2인전으로 소개했으며, 같은 해 염지혜, 정희민, 최상아 그리고 홍이현숙 작가 등 한국 여성 작가의 4인전을 개최했다.

전속 작가로는 이미 국제 무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우환, 이건용, 유영국 작가가 있다. 이우환 작가는 페이스에서 2008년부터 2021년까지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이건용 작가는 홍콩(2022), 서울(2019), 베이징(2018)에서 페이스를 통해 개인전을 개최했다

리만 머핀 갤러리는 한국에서 서세옥, 이불 작가를 소개했다. 한국 신진 작가로는 이근민 작가를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 작가와 함께 소개했다. 리만 머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도호, 이불, 성능경, 서세옥 작가를 전속으로 두고 있다. 성능경 작가는 뉴욕에서 올해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며, 서세옥 작가는 홍콩(2020)과 뉴욕(2018) 갤러리에서 소개된 바 있다. 서도호 작가는 2000년부터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이불 작가 또한 2008년부터 리만 머핀의 여러 지점에서 소개되어 왔다.

2021년 서울에 문을 연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한국계 작가인 아니카 이(Anicka Yi)의 첫 개인전을 개최했으나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소속으로 두고 있지 않다.

타데우스 로팍은 제이디 차(Zadie Xa), 정희민, 한선우 작가의 3인전을 통해 신진 작가를 소개한 바 있다. 해외 지점에서는 이불 작가를 소개했다.

페로탕 갤러리는 현재 박서보, 정찬섭, 이배, 박가희 작가를 소속 작가로 두고 있다. 페로탕은 2014년 파리에서 박서보 작가의 첫 국제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을 포함한 여러 지점에서 정창섭, 이배, 박가희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이들은 여러 한국 작가를 소개해 오긴 했으나 새로운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역의 미술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대부분 전속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Exterior view of Perrotin Dosan Park, Seoul. Photo by Aproject Company.

요구에 앞서 국내 갤러리들 또한 해외 갤러리들 사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내 컬렉터들이 해외 갤러리를 더 많이 찾는 것은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이 투자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 갤러리가 더욱 전문화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전문화된 시스템은 큰 규모의 전시 공간과 현대화된 시설뿐만 아니라 미술 시장에 맞는 전문화된 브랜딩 및 회계 시스템, 거래 관행 등 복합적인 것을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의 시장화를 예술의 순수성을 해치는 상업주의적 발상으로 본다. 하지만 미술 또한 체계적으로 시장화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져야만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근대 이전에는 작품에 사용한 재료, 작품의 목적, 크기, 작가와 의뢰인의 명성 등 몇 가지 요소만 고려했기 때문에 작품의 가격을 매기가 더 쉬웠다. 그러나 현재는 여타 비즈니스와 같이 미술 작품도 보다 복잡하고 전문화된 시스템을 통해 가치가 매겨진다.

전문가들은 미술 관련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장 조사 및 분석 데이터를 수행하고 전문 인력을 보유해야 하며, 작가의 약력, 작품 분석, 송장, 진품 증명서, 미술품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출처 증명 등 세부적인 문서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업계에 널리 퍼져 지표로 활용될 수 있어야만 예술품이 투명하게 거래될 수 있다.

이는 갤러리들이 작가를 홍보하는 방식에도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작품을 홍보할 때 단순히 감상적인 비평에서 나아가 이들의 작품이 어떠한 배경에서 창작되었고, 어떠한 발전 과정을 거쳤으며, 동시대 미술계에 어떠한 영향 관계를 갖는지 분석하는 비평 자료가 갖춰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미술 시장이 국제 미술 시장과 정보와 전문성을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한국 미술 시장은 세계 미술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