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로 인해 지난 해부터 떠들썩했던 한국 미술계는 내년에 개최되는 또 다른 대규모 미술 행사로 인해 그 열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내년에는 프리즈 서울뿐만 아니라 격년마다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가 예정되어 있다. 2023년은 영리와 비영리 미술계 모두 대형 미술 행사로 분주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30년 가까이에 이르는 역사를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비엔날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08년 고(故) 오쿠이 엔위저(1963-2019) 큐레이터의 “연례보고”전과 2010년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이끌었던 “만인보”전은 미술계에서도 유의미한 전시를 선보여 그 위상을 단단하게 세운 바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그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한번 받을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2006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단독 예술감독으로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가 선임되면서 내년에 개최될 비엔날레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1일 광주비엔날레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전시 일정을 2023년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로 발표했다. 전시는 94일 동안 비엔날레관의 5개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그리고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계층의 작가, 다양한 연구 및 협업 기반 커미션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특히 박물관에서는 역사적 배경과 유물 특성을 연계한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재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될 예정이다.
이숙경 예술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참여 작가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40명(팀) 이상이 완전한 신작을 보여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는 “다른 비엔날레와 비교해도 굉장히 비중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30개국 80여 개 팀이 참가할 예정이며 신작 비율이 50%로,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은 90%에 달할 예정이다. 비엔날레는 이날 58명의 작가를 공개했고 내년 초 최종 작가 명단을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 작가로는 장지아 작가 외에 이승택, 강연균, 김구림, 이건용, 오윤, 김순기, 김민정, 엄정순, 김기라, 오석근, 유지원 작가가 참여한다. 민중미술, 실험미술, 추상미술을 전개했던 한국 원로 작가부터 다양한 작품을 이어오고 있는 청년 작가까지 여러 세대를 아우른다. 한국 작가들은 전체 참여 작가의 17%에 해당하며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해외 작가의 비중이 더 높을 예정이다.
Sook-Kyung Lee. Photo by Roger Sinek. Courtesy of the Gwangju Biennale Foundation.
최근 전 세계 미술계가 유색인종, 여성 그리고 젠더 비순응 작가에게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개최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계 여성 큐레이터인 체칠리아 알레마니가 이끌며 초현실주의, 여성 또는 젠더 비순응 작가를 아우르는 전시를 개최해 기존의 미술계를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내년 광주비엔날레도 다양한 문화권의 여성 작가에게 주목할 예정이다.
이숙경 예술감독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80% 이상을 여성 작가로 채웠지만, 대부분 서유럽과 미주 작가들이었다”며 “그런 면에서 아직 제가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고무됐다”고 말했다.
이숙경 예술감독이 이끄는 비엔날레는 서구 식민주의에 기반한 기존 지식 체계를 비평하고, 각 문화와 정체성에 뿌리를 두어 또 다른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며, 소외와 억압의 경험을 형상화한 작품에 집중할 예정이다.
지난 4월에 발표한 전시 제목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도가철학의 고전인 “도덕경”의 한 문구에서 빌려 왔다. 이 감독은 “이질적인 존재를 모두 수용하는 물처럼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을 품는 비엔날레가 되기 위해 이런 주제를 택했다”고 전하며 이질성을 수용하는 물의 속성을 담아 지구를 저항·공존·돌봄의 장소로 그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대주제 아래 ‘은은한 광륜(Luminous Halo)’, ‘조상의 목소리(Ancestral Voices)’, ‘일시적 주권(Transient Sovereignty)’, ‘행성의 시간들(Planetary Times)’ 등 네 가지 소주제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은은한 광륜’은 5·18민주화 운동 등 광주가 이끌어 낸 변화의 물결을 현대 미술로 재해석하고, ‘조상의 목소리’는 근대 전통 예술을 재해석한 제3세계를 조명한다. ‘일시적 주권’은 식민주의 사상과 디아스포라의 연결성에 주목하고 ‘행성의 시간들’은 생태·환경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