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백(b. 1966)은 미디어 아트와 조각, 설치, 사진,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국 특유의 정치문화적 쟁점과 함께 인간 존재와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화하여 독자적인 틀을 구축해 왔다.
 
작가는 90년대 초반부터 단채널 영상과 인터렉티브 아트, 사운드 아트, 키네틱 아트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예술적 실험을 해오며 한국 미디어 아트의 대표작가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대한 높은 평가는 이러한 기술 실험보다는, 이러한 기술적 형식 속 당시의 사회문화적 쟁점과 예술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작가만의 능력으로부터 온다.

이용백, 〈부처와 예수사이〉, 1999-2002 ©국립현대미술관

이용백이 대학생활을 보낸 1980년대 한국 미술계는 미니멀리즘과 민중미술, 이 두 축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다양한 미디어를 다루면서 언뜻 이질적이지만 내용면에서는 공통적으로 사회적인 맥락을 공유하는 ‘황금사과’ 소그룹에 참여하며 기존 미술계에 편승하지 않는 예술 실험을 해왔다. 당시 작가는 프로세스, 환경을 주제로 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독일 유학을 기점으로 그의 예술적 실험은 더욱 확장되기 시작한다.
 
가령, 작가가 독일 유학 중 제작한 비디오 작업 〈부처와 예수사이〉(1999-2002)는 하나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매끄럽게 전환시키는 몰핑(morphing) 기법을 사용해 부처와 예수의 이미지를 연결 및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작가는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예수와 부처의 원본을 삭제하고 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한 이미지만을 영상으로 편집했다.
 
이러한 합성과 변형 과정에서 종교적 도상의 원형과 중심은 사라지고 이질성이 공존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의 사유방식, 인식구조, 존재론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반영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1994년에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제작된 후 2002년에는 더 좋은 화질의 싱글채널 영상으로 다시 제작되었다.

이용백, 〈기화되는 것들(포스트 아이엠에프)〉, 1999-2000 ©국립현대미술관

이용백은 1996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IMF 위환위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회사원들이 줄줄이 정리해고를 당하던 그 당시, 작가는 “숨 쉬는 것도 힘들다”는 회사원 친구의 말에 영감을 받아 〈기화되는 것들(포스트 아이엠에프)〉을 제작했다.
 
영상은 양복을 입은 회사원이 산소호흡기를 찬 상태로 수영장 물 속을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물 속에서 저항을 느끼며 위태롭게 한 걸음 걸어가는 회사원의 모습은 당시 숨이 막힐 정도로 위태로웠던 현대인들의 불안한 내면과 그들의 초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2002년 제5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되기도 한 이 작품은 전시장이 아닌 시장 비닐하우스에서 상영되었다. 그럴싸한 미술관이 아닌 우리의 일상 속 소박한 장소에서 상영됨으로써 〈기화되는 것들(포스트 아이엠에프)〉 속 사회 현실과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는 관객과 그들이 서 있는 현실 공간 안으로 스며들어 공유된다.

이용백, 〈깨지는 거울〉, 2011 ©국립현대미술관

이용백의 기술 매체를 활용한 사회와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으로 〈깨지는 거울〉(2011)이 있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되었던 이 작품은 거대한 거울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거울 후면에는 LCD모니터가 부착되어, 한 쪽에서는 총알이 유리를 뚫고 지나가는 모습이, 다른 한 쪽에서는 유리창이 깨지는 모습이 상영된다. 이러한 영상 효과와 함께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깨지는 거울〉 설치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객은 거울이라는 실제 사물이 지닌 물성과 함께 가상의 이미지를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이미지와 통합적으로 감각하게 된다. 이는 실제와 허구, 그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관객을 놓이게 함으로써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야기한다.


이용백, 〈피에타-자기죽음〉,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는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깨지는 거울〉과 함께 〈피에타〉 시리즈 두 점도 선보였다. 〈피에타〉 시리즈는 ‘자기 사랑’, ‘자기 증오’, ‘자기 죽음’으로 구성된 3부작으로,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인형과 자신의 모체인 거푸집이 서로 처참하게 싸우는 ‘자기 증오’와 성모 마리아가 무릎에 놓인 예수의 주검을 내려다보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차용한 ‘자기 죽음’을 선보였다.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피에타-자기죽음〉 설치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이보그 또는 로봇의 모습을 한 거푸집 원형과 그로부터 탄생한 인형은 서로 사랑하다가 싸우고, 인형의 죽음으로 다시 자신의 원형인 거푸집 품에 안긴다. 이용백은 “거푸집에서 탄생하는 것은 거푸집의 분신인 동시에 그것 자체가 진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에타〉 시리즈는 ‘나’라는 존재의 모순, 즉 오늘날 현대인의 분열된 주체가 겪는 자기 사랑, 자기 증오, 자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휴머니즘적 인간과 신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혼종적 사이보그와 로봇, 그리고 기술의 산물로서의 생명공학적 존재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용백, 〈엔젤-솔저〉, 2011 ©학고재갤러리

이용백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엔젤-솔저〉(2005-)는 우리 세대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천사와 군인이라는 대비적인 소재로 표현한다. 2005년에 선보였던 〈엔젤-솔저〉는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와 작업방식이 결합된 작업으로, 화려한 인조 꽃이 인쇄된 천으로 덮인 배경과 같은 꽃무늬 천으로 만들어진 군복을 입은 6명의 군인들, 그리고 인조 꽃 설치로 구성되었다.
 
‘만약 세상이 꽃밭이라면 군복도 꽃무늬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화려하고 밝은 배경 안에서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앞으로 전진하는 상황 설정으로 인해 이질적이고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엔젤-솔저〉 설치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는 오늘날 한국의 분단의 현실을 내포하는 동시에 군복에 컴퓨터 프로그램 로고와 피카소와 같은 미술사의 대가들의 이름을 새겨 놓음으로써, 오늘날의 예술이 가상공간 속에서의 무수한 복제와 편집, 변형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전략적인 산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젤-솔저〉는 2009년 옛 국군기무사사령부 강당에서 개최된 “신호탄”전에서 꽃무늬 군복을 입은 100명의 퍼포머들이 강당 가운데 설치된 구조물을 차례로 통과하는 대형 퍼포먼스 작업으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용백은 첨단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적극 활용하며 현 시대의 동시대성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 그리고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나는 여러 미디어를 다루는 미술 작가다. 예술은 사회적 편견과 강요된 형식을 타파하면서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실험하는 인생의 동적 과정이라고 믿는다.”


이용백 작가 ©topclass

이용백은 1966년 김포에서 태어나 1990년 홍익대학고 서양학과, 1993년 독일 슈트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 회화과, 1995년 동 대학 조소과 연구 심화 과정을 졸업한 후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성곡미술관(서울, 1999), 대안공간루프(서울, 2005), +갤러리(나고야, 일본, 2005), 슈피너라이 베아크샤우(라이프치히, 독일, 2014)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가는 2011년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09년 모스크바 비엔날레, 2008년 부산비엔날레, 2002년 국제 미디어아트비엔날레 - 미디어시티,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