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머핀 서울은 게스트 큐레이터 엄태근의 기획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한국계 작가 4인의 그룹전 “원더랜드”를 2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에는 유귀미, 현남, 켄건민, 임미애가 참여한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에서 착안한 이번전시는 다양한 연령, 성별, 지역에서 고유의 방식으로 동시대적 가상 풍경을 직조해 온 작가들의 신작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각 작가가 공유하는 이상 세계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또한 이번 전시는 독특한 시각 언어로 동시대성을 이야기하는 작품들 간에 발생하는 비언어적 충돌에 주목한다. 전시는 과거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한 작가들의 디아스포라적 경험을 포괄하며 한국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보다 보편적인 담론을 형성한다. 전시 전반에 걸쳐 작품들은 구상과 추상이라는 시각 언어의 경계를 탐구하고,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며, 기존에확립된 전통 예술 프레임에 질문을 던진다. 그럼으로써 그 물질적, 개념적 충돌이 선사하는 유토피아적 혹은 디스토피아적인 가능성을 모색한다.
유귀미(b.1985)는 과거 기억 속 일상 공간을 그린다. 한국을 떠나 영국 런던에서 유학을 마친 후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거주한 작가는 이민자이자 여성,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경험한 고립과 단절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추억이 담긴 공간을 주요 소재 삼아 화면에 옮기는데, 이는 초현실주의 작가와 아들의 그림책에서 영감을 얻은 특유의 부드럽고 몽환적인 색감을 통해 꿈 같은 풍경으로 변환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얼굴이 가려진 인물은 신비로운 공간의 안내자 역할을 하며,개인적 의미를 초월하는 보편적 공간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현남(b.1990)은 조각을 통해 동시대 도시 풍경과 가상 공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그의 예술적 실천을 관통하는 방법론은 광대한 자연경을 하나의 사물로써 구현하는 축경(縮景)으로 대표된다. 작가에게 있어 현대의 축경은 폴리스티렌, 에폭시, 시멘트 등의 산업 재료를 통해 조성된다. 대표적으로 작가가 ‘채굴’이라 일컫는 작업 방식은 폴리스티렌 덩어리에 ‘굴’을 파고, 구멍에다른 재료를 넣어 굳힌 뒤, 열을 가해 폴리스티렌을 제거하는 일련의 네거티브 캐스팅 과정을 거친다. 재료의 화학 반응으로 형성된 결과물은 거친 표면과 선명한 색상, 수직성이 강조된 비정형의 조각으로, 종말론적 미래의 도시 풍경과 폐허를 은유한다.
켄건민(b.1976)은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회화로 비애와 환희, 그리움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서울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취리히, 베를린,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 활동을 이어온 작가는 이민자로서의 경험과 다문화적 관점을 자양분 삼아 수면 아래 간과되고 소외된 주제에 천착해 왔다. 그는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은 역사적 내러티브를 성경 및 고대 신화 이미지와 결합하고, 유화를 한국 전통 안료 및 자수와 섞어 교차 문화적 풍경을 화면 위에 직조한다. 이번 전시작에서 작가는 1980년대 후반 경험한 개인의 유년기 경험을 다루면서도 이를 문화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환상적 이미지로 풀어내며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같은 범세계적 쟁점으로 연결시킨다.
임미애(b.1963)의 회화적 본질은 유동(流動), 즉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충돌과 규정 불가한 움직임에 있다. 화면에서 다채롭게 움직이는 중층적이고 파편화된 형상은 의인화된 생명체나 증식하는 유기체 돌연변이를 연상시키는 한편 작가의 유년기 기억과 환상을 형상화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임미애에게 있어 회화는 감정적, 공간적 기억을 발견하고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행위와 같다. 파편화된 움직임은 십대에 한국에서 하와이로 이민한 뒤 지속적으로 거처를 옮겼던 작가의 디아스포라적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팬데믹 기간 동안 구상과 추상의 결합을 시도한 작가의 신작들로, 감미로움과 그 안에 내재한 공포감을 나란히 병치시켜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