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는 2024년 첫 전시로 김홍석(b.1964) 작가의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를 3월 3일까지 서울점(K2, K3)에서 개최한다.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범주를 넘나들며 사회, 문화, 정치, 예술에서 나타나는 서구의 근대성,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비서구권의 독립적 저항 간에 발생하는 애매모호한 인식의 질서를 비판해온 김홍석은 이번 전시를 통해 ‘뒤엉킴(entanglement)’에 대해 이야기한다.
K2 1층 공간의 작품들은 대중이 흔히 학습해 온 당연한 정보들이 통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해체되어 엉켜 있는 상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조커의 얼굴에 고양이 몸을 한 조각, 하이힐 높이로 제작된 슬리퍼, 2차원과 3차원의 경계가 모호한 불꽃 조각 연작, 매우 가벼운 레진으로 만들어진 돌멩이, 그리고 브론즈로 만든 무거운 카펫 등 친숙하지만 낯선 풍경들이 펼쳐진다.
K2 2층에는 사군자 페인팅을 필두로 연꽃, 대나무, 잡목 등을 그린 회화 작품들이 자리한다. 사군자의 묵향 대신 돋보이는 두터운 마티에르(matière)는 동양의 군자(君子) 정신과 태도를 서구 모더니즘의 개념으로 지워버리고, 현대 동양인의 정신분열적 물질성을 보여준다. 동양화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그에 대항하는 개념인 서양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아크릴과 캔버스를 재료로 삼아, 작가는 다시 한번 ‘고착화된 개념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전시 주제를 강조한다. 또한 연꽃, 대나무, 잡목 등을 표현한 회화에서도 각 식물들에 내재된 의미는 없으며, 이는 회화의 화면구성을 위해 채택된 주제들이다. 전시장 내부에는 공공장소에서 흔히 들리는 음악에서 착안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대중적인 배경음악은 관람객의 무의식에 도달해 갤러리가 고급스럽고 특수한 곳이 아닌 공공적 공간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편 K3에는 보다 유쾌한 광경이 연출된다. 전시장 중앙에는 천장을 뚫고 바닥에 떨어진 듯한 거대한 운석 덩어리가 위치해 있다. 갈라진 형태 사이로는 지구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불문율적으로 합의한 ‘별’이라는 기호를 띤 두 개의 물체가 관찰된다. 김홍석은 이번 개인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리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의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현해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미술가의 책임이며 ‘미술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이처럼 작가는 한때는 별이었으나 현재는 하나의 돌에 지나지 않는 본체와, 그 내부에 보이는 별의 표상의 조화를 통해 실재적 존재와 해석적 존재의 개념을 뒤엉키게 만든다.
김홍석은 서울 출생으로 1987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상명대학교 무대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꾸준히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져왔다.
주요 전시로는 서울시립미술관 “우리가 모여 산을 이루는 이야기”(2023), 스페이스 이수 “속옷을 뒤집어 입은 양복과 치마를 모자로 쓴 드레스”(2023), 부산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많은 사람들”(2023), 문화역서울284 “나의 잠”(2022),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19 타이틀 매치: 김홍석 vs. 서현석’ “미완의 폐허”,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변용하는 집”(201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달의 이면”(2017), 삼성미술관 플라토 “좋은 노동 나쁜 미술”(2013), 도쿄 모리미술관 “All You Need is LOVE”(2013),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2”(2012) 등이 있다.
오쿠노토 트리엔날레(2017), 난징 국제 아트 페스티벌(2016), 요코하마 트리엔날레(2014), 광주비엔날레(2012), 리옹비엔날레(2009), 베니스비엔날레(2005, 2003) 등 다수의 대형 국제전에도 참여했다.
작가의 작품은 현재 미국 휴스턴 미술관, 캐나다 국립미술관, 호주 퀸즈랜드 미술관, 프랑스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르 콩소르시움, 일본 구마모토 미술관과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비롯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포스코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