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5일부터 5월 7일까지 열린 아트부산은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아트 페어이다. 아트부산이 앞으로 진정한 국제 아트 페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갤러리가 참여하고, 다양한 국제 미술 전문가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
Art Busan 2023. Courtesy of Art Busan.
아트 페어를 통해서 관람객들은 여러 갤러리와 작가군을 접할 수 있고 다양한 작품 경향 및 가격을 자유로이 비교하며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아트 페어라는 미술 시장 형태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세계 경제 성장과 글로벌화의 부상과 함께 등장하여 확산되기 시작되었다.
미술 시장 전문 저널리스트인 멜라니 걸리스(Melanie Gerlis)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공식 현대 미술 아트 페어는 1967년에 열린 아트 쾰른(ART COLOGNE)이었다. 이후 1970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이 설립되고 유럽 대륙과 미국의 대도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아트 페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국제 아트 페어에 참가하면서 아트 페어라는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국내 갤러리가 해외 아트 페어에 참여한 최초 사례는 198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피악(FIAC)에 참가한 진화랑이다. 이후 가나아트,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등 국제 경쟁력을 갖춘 갤러리들이 해외 페어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국내 갤러리들은 세계적인 규모를 갖춘 아트 페어에 참여함으로써 세계 미술 시장에 한국의 미술품을 소개하고 유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나아가 국내에서도 국제 규모의 아트 페어를 개최하고자 노력해 왔다.
국제적인 규모의 아트 페어를 국내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국내 미술 시장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아트 페어에는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갤러리가 한자리에 모인다. 이를 통해서 한국 미술계는 글로벌 미술계의 정보 교류에 참여함으로써 세계 미술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를 국내 미술계와 비교하며 발전할 수 있게 된다.
Art Busan 2023. Courtesy of Art Busan.
국내에서 개최되는 많은 아트 페어 중에서도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 Kiaf SEOUL)와 아트부산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양대 국제 아트 페어로 꼽힌다. 키아프는 2002년 화랑미술협회에서 설립했으며, 아트부산은 개인이 2012년 아트쇼부산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두 페어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키아프는 서울에서 개최되며 한국화랑협회에서 주최하는 아트 페어인 반면, 아트부산은 매년 부산에서 열리는 우리나라 최초 순수 민간 아트 페어라는 점이다.
국내에는 협회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아트 페어가 많지만, 해외 아트 페어는 민간 법인이 주관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 정상의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과 프리즈가 있다.
Art Busan 2023. Courtesy of Art Busan.
아트부산은 미술품 컬렉터 출신 손영희 대표가 설립한 아트 페어이다. 비교적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아트부산이 빠르고 탄탄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트부산이 민간 기업이기 때문인 점도 있다.
협회가 운영하는 페어는 다수의 회원 갤러리를 고려해야 하며 공익성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의사 결정에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반면, 민간 법인은 비교적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아트부산은 민간 단체로서 업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비교적 과감한 행보를 취해 왔다.
또한 협회 기반 아트 페어는 주로 회원 갤러리를 중심으로 참가자를 선정한다. 이에 비해 참가자 선정에 있어 자유로운 아트부산은 회원 갤러리가 아닌 엄격한 선정 기준을 바탕으로 참여 갤러리와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
손영희 이사장은 부산도 해안 휴양 도시인 만큼 아트부산의 롤모델로 아트 바젤 마이애미를 지목했다.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로 유명한 해안 관광 도시로 다양한 특급 호텔이 다수 포진해 있다. 페어 개최지 주변에는 부산시립미술관과 복합문화공간 F1963, 랄프깁슨사진미술관과 고은 사진미술관이 있으며, 조금 더 멀리로 나가 보면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예술 기관 및 갤러리들이 있다.
아트부산은 이러한 장점을 살려 아트 페어가 열리는 동안 ‘부산아트위크(Busan Art Week)’를 신설했다. 아트부산은 관람객들이 도시와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역 미술관 및 갤러리와 협업해 아트 페어 주간에 주요 미술 기관을 순회하는 무료 셔틀 ‘아트버스’를 운영했다.
Art Busan 2023. Courtesy of Art Busan.
국내에서 상반기에 개최되는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인 아트부산은 올해 5월 5일부터 5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올해는 국내 갤러리 111개, 해외 갤러리 34개, 총 22개국 145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참가 해외 갤러리 중 19개 갤러리는 아트부산을 처음 방문했다.
올해 아트부산은 작년보다 1.5배 넓어진 8,000여 제곱미터의 국내 최대 공간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아트부산 측은 개막 하루 전 기준으로 얼리버드 티켓이 지난해보다 3배 이상 판매됐으며, VIP 개막 첫날 매출은 평균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아트부산의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여 2018년에는 약 150억 원, 2021년에는 약 350억 원 그리고 작년인 2022년에는 역대 최고 판매 실적인 746억 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판매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올해 대부분의 주요 갤러리의 매출이 호조를 보였다”고 전했다.
미술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지만 대형 갤러리의 매출은 견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큰손 컬렉터들은 경기와 상관없이 미술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국제갤러리는 하종현, 최욱경, 안규철,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판매했으며, 갤러리현대는 이건용, 이승택, 이강소, 사이먼 후지와라, 김민정 작가의 작품을, 리안갤러리는 김택상, 김춘수 작가의 작품을 판매했다고 전했다.
아트부산에서는 젊은 컬렉터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상반기 초 서울에서 열린 화랑미술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상당수 참여 갤러리들은 중저가 작품으로 젊은 컬렉터들의 눈길을 끌려는 전략을 펼쳤다. 일반적인 아트 페어에서는 대형 갤러리의 주요 작품이 메인 섹션에 배치되고, 주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갤러리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하지만 올해는 중소형 갤러리들의 부스가 눈에 띄었으며 국내외 20~30대 젊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도 페어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올해는 고가의 작품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작품이 완판된 것으로 나타났다. 313아트프로젝트는 우국원, 아뜰리에아키는 콰야의 신작 5점과 정성준의 신작 3점을 모두 판매했다. 초이앤초이는 매튜 스톤의 작품 8점을 태국의 한 컬렉터의 품으로 보냈으며, 디스위켄드룸은 독일 신진 작가 루카스 카이저의 작품을 모두 팔았다.
하지만 참여 갤러리들은 올해 컬렉터들이 보다 신중하게 작품을 구매했다고 언급했다. 작년에는 컬렉터들이 비싸더라도 작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올해는 구매하러 오는 사람이 줄었다고 전했다.
아트부산은 국내 여타 아트 페어에 비해 뛰어난 기획력을 보여 주며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프리즈 서울 출범 이후 해외 갤러리와 미술 기관의 국내 유입과 함께 한국 미술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아트부산이 앞으로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아트 페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국가를 기반으로 한 갤러리의 참여를 유도하고, 개인 컬렉터뿐 아니라 다양한 미술 관계자들을 아트 페어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획력을 펼치며 미술사에 유의미한 작품들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