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작가 생활 40주년을 맞이한 강익중(b. 1960)은 1984년 뉴욕으로 건너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소통과 화합’, ‘조화와 연결’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왔다. 그의 작업은 유학 시절 작은 캔버스를 가지고 다니며 캔버스 안에 각종 문자, 기호, 그림으로 그의 일상을 담아 내던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작가는 이러한 작은 캔버스를 모아 거대 설치 작품으로 제작해 오늘 날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대형 공공 프로젝트 작품으로 발전시켜 왔다. 

강익중, 〈삼라만상〉, 1984-2014 ©국립현대미술관

1984년 유학 첫해부터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을 동시에 해오던 작가는 3인치(7.6cm×7.6cm) 크기의 작은 캔버스 여러 개를 주머니 속에 가지고 다니며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시간을 쪼개 작업했다. 그는 열차 안에서 인간 군상들, 일상의 단편, 영어단어 노트 등을 초소형 캔버스에 문자나 기호, 그림으로 기록하였고, 달항아리, 한글 등 한국적인 소재 또한 즐겨 그렸다.
 
그렇게 시작된 강익중의 ‘3인치’ 작품 시리즈에는 뉴욕 이주의 경험과 문화적 괴리감, 고향과 뉴욕의 일상적 모티브라는 강익중의 사적 역사가 담긴 패널이었으며, 그 안에는 한국과 미국, 그의 유년 시절과 현재, 고향과 타향, 과거와 현재 등이 서로 중첩된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과 함께한 2인전 “삼라만상: 멀티플/다이얼로그”에서는 1984년부터 2014년까지의 ‘3인치’ 작업 1만여 점을 모아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 한 〈삼라만상〉을 선보였다.
 
3인치의 작은 이미지들은 서로 더해지고 연결되고 화합하면서 거대한 우주, 즉 삼라만상을 연상시킨다. 그러한 배경 가운데에 설치된 크롬으로 도금된 반가사유상은 벽면에 설치된 작품들을 투영함으로써 ‘서로 연결된 모든 세상의 소리를 보는 존재’, 즉 관음으로서 작은 캔버스들의 세상을 서로 연결시킨다.


강익중, 〈십만의 꿈〉, 1999 ©학고재 갤러리

강익중의 작은 3인치 캔버스 작업은 이후 작가 본인의 그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그림을 모아 벽으로 제작하는 참여형 공공미술 작업으로 발전한다. 대표적으로, 1999년 파주 통일공원에 설치한 〈십만의 꿈〉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영국, 그리스 등 전세계 어린이 및 청소년 5만명이 그린 그림과 함께 아이들이 꿈에 대해 이야기한 비디오 영상을 야외 비닐하우스에 설치한 대규모 멀티 미디어 설치 작업이었다. 5만명의 북한 어린이들의 그림도 모으려 하였으나 불발되어 ‘침묵의 벽’이라는 이름의 빈 벽만이 남게 되었다.
 
강익중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한국의 평화로운 미래, 더 나아가 분쟁 중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평화로운 미래를 함께 기원하는 마음에서 〈십만의 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개인들의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 연결시키는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이후에도 지속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평화로운 공동체에 대한 미래를 다 함께 꿈 꿀 수 있는 다리의 역할을 해왔다.

Kang Hong-Goo, drama set 6, 2002 ©Parkgeonhi Foundation

강익중은 ‘달항아리’ 또는 ‘한글’과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에 관심을 가져왔다. 두 소재는 모두 한국적 전통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구조적으로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인 ‘연결’을 내포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한글의 경우 자음과 모음이 모여 하나의 글자로 연결되듯 달항아리 또한 상부와 하부가 만나 온전한 하나의 항아리가 된다.
 
〈1,392 달항아리〉(2008-2010)는 1,392개의 달항아리를 원형으로 모아 설치한 작업으로, 각각의 항아리들은 우리 개개인을 상징하고 이들이 이루고 있는 원형의 형태는 연결된 세계의 모습을 나타낸다. 강익중은 상부와 하부가 따로 만들어지고 불가마 안에서 결국 하나의 형태로 연결되는 달항아리로부터 너와 나, 남과 북, 나아가 세계를 잇는 평화의 이미지를 상상한다.

강익중, 〈집으로 가는 길〉, 2016 ©강익중

강익중의 대규모 공공미술 작업은 어린이들의 꿈을 이은 〈십만의 꿈〉(1999) 이후에도 지속되었는데, 국내에서는 광화문 복원 현장에 설치한 〈광화문의 뜬 달〉(2007-2010)이 큰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며 해외에서도 여러 공공장소에 작품을 설치하여 ‘연결과 조화’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그 중, 런던 템즈강 위에 설치되었던 3층 건물 높이의 대규모 설치 작업 〈집으로 가는 길〉(2016)은 한국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잃은 실향민들의 그림 500장으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실향민들에게 기억 속 고향의 모습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모은 그림들을 정방형의 거대한 등불 구조물로 제작하여 런던 템즈강 위에서 밝게 빛날 수 있도록 했다. 고향에 대한 소중한 기억으로 모아진 이 거대한 등불은 분단의 아픔을 위로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강익중, 〈한글벽〉, 2024 ©뉴욕한국문화원

그리고 올해 5월 강익중은 전 세계인 누구나 참여 가능한 ‘한글벽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뉴욕한국문화원과 함께 웹사이트(www.hangeulwall.org)를 제작하여 누구나 ‘세상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문장이나 지혜를 입력하고 색칠하여 자신만의 한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글 번역 기능을 제공하여 모두의 이야기를 한 곳에 모으고자 했다. 이 중에서 1천개를 선별한 다음 올 9월 뉴욕한국문화원에서 8m x 22m 규모로, 세계 최초, 최대의 한글 공공미술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흩어진 자음과 모음이 모여 하나의 글자로 완성되는 한글처럼 전 세계 흩어져 있는 개개인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한 데 모아 연결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조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왔다. 강익중은 작가로서 예술을 통해 서로 다른 것 혹은 끊어진 것을 연결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하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또 다시 공공의 장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읽히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낸다. 강익중의 작업은 이처럼 타인에 대해, 공존에 대해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되살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이야기를 이루고,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된다. 우리는 다른 존재와의 연결이 필수적이고, 예술은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사는 이 세상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아래로는 땅을 보면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작가로서 이어오고 있다.”

강익중 작가 ©갤러리 현대

강익중은 1960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198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수학하고 1987년 졸업한 이후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강익중은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국내외에서 수많은 대형 공공 프로젝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루드비히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상에서의 발견을 그림뿐만 아니라 글로 표현하는 강익중은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2022), 『사루비아』(2019), 『달항아리』(2018)와 같은 시화집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또한, 강익중은 남과 북을 잇는 임진강 〈꿈의 다리〉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를 염원하며 끊임없이 이에 대한 스터디를 이어오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