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정화(b. 1961)는 플라스틱 바구니, 돼지저금통, 조화, 빗자루 등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저렴한 소모품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다양한 설치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이러한 대량생산된 일상의 소비재를 예술작품으로 재탄생 시켜
미술관 안으로 옮김으로써 소위 싸구려 대중문화, 즉 키치(Kitch)를
통해 고급미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며 한국 사회의 일면을 담아낸다.
최정화는 1987년 고낙범, 이불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뮤지엄’ 그룹에 참여하며 미술관의 전통과 권위를 비판하고 기성 화단과
단절을 내거는 등의 행보로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테리어, 설치, 아트 디렉터로서 다방면으로 활약해오며 한국 동시대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국제무대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을 담아내는 작가로 주목받아왔다.
최정화는 작업 초반 기존 미술계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그 중, 1995년에 선보인 〈썩은 미술, 썩는 미술〉은 한동안 부패시킨 고기, 야채, 생선 등의 사진을 썩지 않은 물건들의 사진과 함께 화려한 금색 프레임에 넣어 전시한 작업이다. 전시장 내에 고상한 ‘고급예술’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썩은 음식 사진을 지나치게 화려한 액자 틀에 넣음으로써 미술품에 대한 경계를 흐리는 동시에 권위적이고 관습적인 당시 미술계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돼지머리를 통째로 재료로 삼은 설치 작품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오거나 기존의
예술 재료가 아닌 우리의 일상 속 흔하고 값싼 사물들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최정화의 작품에서 주된 재료로 등장하는 값싼 기성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 플라스틱이 있다. 플라스틱은 모든 물건을 기존 재료의 특성을 무시한 채 외형만 모방하여 값싸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플라스틱의 저렴하고 가볍고 다양한 색감과 변형가능한
실용적인 속성에 주목하여, 플라스틱 바구니를 탑의 형태로 쌓아 올리거나 조명의 형태로 변형하는 등 다양한
변주를 보여줬다.
이러한 플라스틱을 재료로 사용한 작업 중 〈플라스틱 파라다이스〉(1997)는
최정화를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는 재래시장에서 흔히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연두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올린 탑 형태의 설치 작업이다.
재료 하나만 보았을 때와 달리, 수직으로 높게 쌓여 전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모습은 본래 싸구려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보인다. 작가는
간단한 쌓는 동작 하나로 익숙한 일상물을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키고 또 손쉽게 해체 가능한 일회적 구조물을 만듦으로써, 전통적 조각 작품의 수직성과 영구보존에 대한 욕망을 유쾌하게 패러디한다.
한편, 최정화는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수집해온
꽃 이미지를 단독 오브제로 삼아 송풍기 유압장치와 천을 이용하여 제작한 거대한 화분 속 꽃의 조형물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천에 공기를 주입시켜 만든 거대한 꽃 풍선 작업을 지속해오며 각종 비엔날레와 세계 유수 기관에서
다수 소개되기도 하였다.
최정화는 이러한 작업의 일환인 〈숨 쉬는 꽃〉 시리즈에서는 모터를 설치하여 꽃이 접혔다 펼쳐지는 모션을
추가했다. 썩지 않는 인공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기계 꽃의 반복적인 움직임은 살아 있는 존재의 유한성과
공허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야외 공공미술에 주로 쓰이는 돌이나 금속이 아닌 공기가 빠지면 그저
천 조각에 불과한 이 꽃 풍선 조각은 세계 곳곳에 설치되며 기존 예술의 전통성을 해체하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흐린다.
최정화, 〈민들레〉, 2018. ©국립현대미술관
나아가 최정화는 시민들과 함께 제작하는 참여형 공공미술 프로젝트 〈해피투게더〉 시리즈를 영국, 벨기에, 미국, 상해
등에서 선보였다. 이는 관객이 직접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폐품을 미술관에 들고 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보통 만질 수 없는 미술관의 작품들과 달리 아이들이 소쿠리를 발로 차고 노는 등 기존 미술 작품과 관객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를 허물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제작, 설치되었다.
이러한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는 2008년부터 ‘모이자, 모으자’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국내에서도 진행되었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의 일환으로 진행된 ‘모이자, 모으자’ 프로젝트에서는
사람들이 사용하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식기를 수집했다.
수집된 식기에 기증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후 이를 재료로 하여 작품으로 제작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기증받은 생활용품 약 7,000개는 높이 9m, 무게 9.8톤의 거대한 민들레 홀씨를 형상화한 대형 설치작품
〈민들레〉(2018)로 제작되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야외에
설치되었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작가에 선정된 최정화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 - 꽃, 숲”전에서 그의 대표적인 재료로 여겨왔던 플라스틱을 넘어서 나무, 철재, 천으로 확장된 사물의 물질성을 보여줬다. 그 중 〈꽃, 숲〉(2018)은
작가가 각지에서 수집해온 물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설치 작업으로, 물건들의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작품 사이를 관객들이 지나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전 작업인 〈플라스틱 파라다이스〉와 마찬가지로, 물건을 쌓아
올려 제작된 146개의 꽃탑을 모아 숲과 같은 고요한 분위기의 공간을 구성했다. 또한 이 전시에서 작가는 3대째 살고 있는 집의 가구를 기증받아
제작한 구층 밥상 탑이나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한 낡은 빨래판을 벽 전체에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등 낡고 오래된 생활 용품 속에 녹아 있는 시간의
흔적들을 쌓아 올리는 형태로써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최정화의 작업은 쉬운 방식과 형태로 관객과 소통한다. 최정화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출발하여 그로부터 발견한 아름다움을 예술의 형태로 재해석하고 관객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
“예술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하는 것입니다. 예술 작품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집 앞에 떨어진 작은 나뭇잎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지요.”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정화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최정화는 “When Forms Come Alive”(헤이워드 갤러리, 런던, 2024), “Come Together”(Education City, 카타르, 2022), “살어리 살어리랏다”(경남도립미술관, P21, 창원, 서울, 2020), “현대차시리즈 2018: 꽃, 숲”(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 2018), 호놀룰루 비엔날레 (2017), “Megacities Asia”(보스턴 미술관, 2016), 부산비엔날레(2014), 제17회 시드니 비엔날레(2010), 광주 비엔날레(2006), 베니스 비엔날레-한국관(2005), 리버풀 비엔날레(2004), 리옹 비엔날레(2003) 등을 포함한 다수의 전시, 비엔날레,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References
- 최정화, Choi Jeong Hwa (Artist Website)
-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 – 꽃,숲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8: CHOIJEONGHWA - Blooming Matrix) :
- 코리안 아티스트 프로젝트, 최정화 (Korean Artist Project, Choi Jeong Hwa)
- 국립현대미술관, 야외프로젝트 «최정화: 민들레»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Outdoor Project CHOIJEONGHWA: Dandelion
- 메종코리아, 최정화 작가의 향유하는 예술, 2022.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