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과 Global Pop 사이
 
BTS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그룹이며 K-pop이라는 문화적·산업적 기반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장과 관객, 영향력은 이미 한국이라는 지역적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렇다면 BTS는 K-pop인가. 아니면 세계의 Pop Music을 생산하는 하나의 주체인가.
 
BTS는 그래미에서 지금까지 다섯 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그래미가 K-pop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026년 그래미에서는 BLACKPINK 멤버 ROSÉ와 Bruno Mars의 「APT.」가 Record of the Year와 Song of the Year 후보에 올랐다. 《KPop Demon Hunters》의 「Golden」 역시 Song of the Year와 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등의 후보가 되었다. K-pop과 연결된 음악이 주변부의 별도 영역을 넘어 기존 Pop의 주요 부문으로 진입한 결과다.
 
그런데 Recording Academy는 2026년 6월, 2027년 그래미부터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부문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K-pop과 J-pop, C-pop 등을 포괄하는 ‘Asian Pop’의 공식적인 범주화다.
 
신설 부문은 가수의 국적이나 인종보다 음악적 형식을 우선하며, 한 개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의미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전곡이 영어로 된 음악은 이 부문이 아니라 기존의 다른 부문에서 경쟁한다.
 
Asian Pop이라는 별도의 범주는 아시아 대중음악의 성장과 독자성에 대한 제도적 인정이다. 동시에 이미 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음악을 다시 ‘Asian’이라는 지역적 범주 안에 구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정과 분리의 동시성이다.
 
K-pop은 세계의 Pop인 동시에 Asian Pop이다. 어느 하나의 이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이름이 옳은가에 대한 단정이 아니다. 음악은 이미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지만, 이를 설명하고 평가하는 제도는 여전히 새로운 기준을 찾는 중이다.
 
오늘날 아시아 동시대미술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 작가들은 이미 세계의 미술관과 비엔날레, 갤러리와 미술시장에서 Contemporary Art의 생산자로 활동한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에는 여전히 ‘Asian Art’, ‘Chinese Art’, ‘Japanese Art’, ‘Korean Art’라는 지역적 이름이 붙는다.
 
그렇다면 세계 여러 지역이 동시에 Contemporary Art를 생산하는데도 왜 어떤 미술은 그냥 Contemporary Art이고, 어떤 미술에는 지역의 이름이 붙는가.
 
 
 
시간의 개념과 지역의 분류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는 특정한 역사적 변화와 시간성, 미술제도와 담론의 형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반면 ‘Asian Art’는 지리와 문명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분류다.
 
두 개념은 애초에 동일한 층위가 아니다.
 
하나는 역사적·제도적 패러다임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적 수집과 연구의 범주다. 문제는 서로 다른 성격의 분류가 국제미술계에서 ‘보편’과 ‘지역’의 위계로 작동해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Modern Art의 개념과 정전, 이를 뒷받침하는 미술관과 비평, 시장과 교육체계는 상당 기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물론 같은 시기 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서로 다른 근대미술과 모더니즘이 존재했다. 하나의 모더니즘이 아닌 복수의 모더니즘(modernisms)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아시아 국가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에서 먼저 제도화된 미술학교와 미술관, 전시와 비평, 회화와 조각의 장르 구분, 작가와 미술시장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산업과 자본, 학문과 국제정치의 힘이 서구에 집중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일정 부분 불가피했던 선택이다.
 
그러나 누가 먼저 제도를 만들었는가와 누가 영원히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냉전의 해체와 세계화가 본격화된 1980~90년대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비엔날레와 미술관, 갤러리와 시장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미술을 생산하고 전시하며 수집하고 연구하는 장소도 다변화되었다.
 
뉴욕·런던·파리·베를린이 그려 놓은 하나의 청사진에 따라 세계미술이 움직이던 구조에서 여러 개의 ‘art worlds’가 동시에 등장한 것이다.
 
Contemporary Art의 생산지는 이미 세계로 분산되었다.
 
그러나 생산의 분산이 곧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sian Art’라는 광대한 범주
 
‘Asian Art’는 하나의 미술운동도, 하나의 양식도 아니다. ‘Asia’ 자체도 하나의 단일한 문화권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과 베트남은 서로 다른 역사와 언어, 종교와 정치체제, 식민지 경험과 근대화 과정을 가지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Asian Art Department만 보더라도 그 범위는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한국·일본까지 이어진다. 오늘날의 20개가 넘는 국가와 약 5천 년의 역사를 포괄하는 거대한 범주다.
 
반면 ‘Asian Contemporary Art’는 1990년대 이후 전시와 비엔날레, 연구와 출판, 시장과 아카이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형성된 비교적 최근의 개념이다.
 
이러한 지역적 연구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근대화 과정과 식민주의, 전쟁과 정치체제의 변화가 미술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맥락. 과거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작가와 작품을 발견하고 기록하기 위한 연구의 기반이다.
 
따라서 ‘Asian Art’라는 이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이름의 기능과 권력이다.
 
아시아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역사와 미술적 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범주라면 유용하다. 그러나 ‘아시아의 미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틀이 되는 순간, 연구의 범주는 해석의 경계로 변한다.
 
‘Asian Art’는 미술이 어디에서 어떠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미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보편과 지역의 비대칭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는 오랫동안 별도의 지역적 수식어 없이 사용되었다.
 
반면 다른 지역의 미술에는 Chinese Contemporary Art, Japanese Art, Korean Art, Southeast Asian Art와 같은 지리적 이름이 붙었다.
 
물론 오늘날 Western Art, European Modernism, American Art라는 표현도 널리 사용된다. 모든 서구미술이 언제나 지역성을 갖지 않는 보편으로 취급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미술사의 중심적 서사가 유럽과 미국을 기준으로 구축되면서 서구의 미술은 기준이 되고, 다른 지역의 미술은 그 기준과의 관계를 설명해야 했던 역사적 경향은 분명하다.
 
아시아 근현대미술도 오랫동안 서구 모더니즘을 언제 받아들였는가, 어떻게 변형했는가, 서구의 특정 미술운동과 얼마나 유사하거나 다른가를 중심으로 해석되어왔다.
 
비교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 현대미술이 아시아 미술의 형성에 실제로 미친 영향 때문이다.
 
문제는 비교의 일방적인 방향이다.
 
도쿄와 베이징, 서울의 미술은 파리와 뉴욕을 통해 설명하면서 파리와 뉴욕의 미술은 도쿄와 베이징, 서울을 통해 설명하지 않는 구조. 보편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중심과 자신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주변의 관계다.
 
 
 
누가 아직 왕좌에 앉아 있는가
 
아시아는 이미 수많은 작가와 작품, 미술관과 비엔날레, 갤러리와 시장을 생산한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 미술인가를 판단하고, 어떤 작가를 국제적 정전에 편입하며, 어떤 전시를 미술사적 사건으로 기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은 여전히 균등하게 분산되어 있지 않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소장과 전시, 주요 비엔날레의 초청, 국제 갤러리의 전속과 대표, 영어권 비평과 학술 출판, 글로벌 경매시장과 컬렉터의 선택. 작품의 국제적 가치와 미술사적 위치를 결정하는 주요 제도들이다.
 
이 제도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생산지는 다극화되었지만 승인과 정전화의 권력은 아직 충분히 다극화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수많은 작품과 전시가 만들어지더라도 서구의 주요 기관과 시장이 선택해야 비로소 ‘국제적인 미술’로 인정받는다면, 아시아는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승인받아야 하는 대상에 머문다.
 
오늘날의 왕좌는 과거처럼 하나의 도시나 국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관과 비엔날레, 대학과 출판, 갤러리와 시장으로 분산된 복합적인 권력의 네트워크다.
 
그러나 그 왕좌에 앉아 있는 주체들의 지리와 언어,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불균형하다.
 
 
 
재현·분류·권력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
 
바로 이 지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다시 중요해진다.
 
다만 사이드의 이론을 오늘날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1978년 《오리엔탈리즘》에서 분석한 핵심 대상은 주로 유럽과 중동·이슬람권의 역사적 관계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시아 동시대미술에 필요한 것은 사이드의 지역 구분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그가 제기한 재현과 지식, 분류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재검토다.
 
서구 작가에게는 개인의 형식과 개념, 미술사적 계보가 먼저 질문되는 반면 아시아 작가에게는 전통과 국가, 식민주의와 종교, 정치와 공동체가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경향이 있다면, 지역적 배경은 단순한 맥락을 넘어 해석의 프레임이 된다.
 
중국 작가에게 중국 정치, 일본 작가에게 전통과 대중문화, 한국 작가에게 분단과 유교, 동남아시아 작가에게 식민주의와 공동체가 거의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실제로 다루는 아시아 작가들은 많다. 역사와 현실에서 출발하는 중요한 작업들이다.
 
문제는 작가가 그것을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과 제도가 그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작품이 그렇게 해석되는 순간이다.
 
지역성이라는 조건이 작품의 의미를 미리 결정하는 틀로 바뀌는 순간, 개별 작품의 복합성과 다른 가능성은 축소된다.
 
 
 
1989년 이후의 시행착오

1989년 파리 퐁피두센터와 그랑드 알 드 라 빌레트에서 열린 《Magiciens de la Terre》는 서구에 한정되어 있던 국제 동시대미술의 시야를 세계로 확장하려 했던 대표적인 전시였다.
 
약 100명의 참여 작가 가운데 절반을 서구 밖의 작가들로 구성한 당시로서는 중요한 시도였다. 기존 국제미술계에서 보이지 않던 여러 지역의 창작을 하나의 전시 안에 제시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비서구의 미술을 다시 문화적 차이와 의례, 영성과 지역적 특수성의 관점으로 재현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이 전시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세계의 미술을 하나의 공간에 전시하는 것과 서로 다른 미술을 동등한 지적·미술사적 주체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후 수많은 비엔날레와 국제전, 미술관은 이러한 문제를 수정해왔다. MoMA가 C-MAP(Contemporary and Modern Art Perspectives)을 통해 북미와 서유럽 밖의 근현대미술사를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기존 정전의 한계에 대한 제도적 수정이다.
 
서구의 미술기관 역시 완성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동의 혼란과 불균등한 결정권
 
오늘날 아시아 동시대미술과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를 ‘서구는 잘못된 시선을 가지고 있고 아시아는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구도로만 설명하는 것은 현실의 지나친 단순화다.
 
세계미술의 지형이 너무 빠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미술관과 대학, 비엔날레와 시장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미술사의 범주와 분류체계를 수정하고 있다.
 
아시아 역시 서구 중심의 기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제적 인정의 기준은 여전히 서구의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 갤러리와 시장에 두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적인 것’을 서구가 강요한다고 비판하면서도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과 지역성, 정치적 역사를 전략적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서구와 아시아 모두 새로운 현실을 설명할 언어를 찾는 중이다.
 
그러나 공동의 혼란이 동일한 권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가 분류하고 승인하며 국제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결정권은 여전히 비대칭적이다.
  
혼란은 공유되지만 권력은 공평하게 분산되어 있지 않다.
 
 
 
셀프 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의 순환 구조
 
오리엔탈리즘은 더 이상 외부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시아의 작가와 갤러리, 큐레이터와 기관 역시 국제미술계에서 어떤 이미지와 서사가 쉽게 이해되고 선택되는지를 학습한다.
 
그 결과 전통적 이미지와 재료, 종교와 철학, 정치적 역사와 사회적 상처가 작품의 실제 문제의식보다 국제적으로 자신을 식별시키기 위한 기호로 사용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것이 셀프 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이다. 외부가 기대하는 ‘아시아적인 이미지’를 아시아 스스로 내면화하고, 국제적 인정과 선택을 위해 반복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를 작가 개인의 기회주의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국제전과 시장이 특정한 지역적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선택하면 생산자도 그 기준을 학습한다. 선택하는 쪽과 선택받는 쪽이 서로의 기대를 반복하면서 ‘Chinese-ness’, ‘Japaneseness’, ‘Koreanness’와 같은 정체성이 하나의 국제적 브랜드로 굳어지는 구조다.
 
오늘날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일방적으로 아시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단순한 체계가 아니다.
 
국제기관의 분류, 시장의 요구, 큐레이터와 비평의 언어, 지역 미술계의 전략, 작가 자신의 선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적 생산구조다.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전략이 함께 만드는 정체성의 고착화다.
 
 
 
지역성이라는 자원과 경계
 
그렇다고 ‘Asian Art’를 없애거나 작가의 지역적 정체성을 지워야 한다는 결론은 또 다른 획일화다.
 
모든 미술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역사와 언어, 정치와 사회, 종교와 생활방식,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경험은 미술을 형성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문제는 지역성 자체가 아니다.
  
지역에서 출발하는 것과 지역에 갇히는 것의 차이다.
 
지역의 구체적인 역사에서 출발한 작품이 인간과 사회, 기술과 자연, 기억과 권력에 관한 새로운 질문으로 확장된다면 그것은 특정 지역만의 미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반대로 국제적으로 유행하는 형식과 개념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적인 미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성과 보편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세계가 아직 갖지 못한 새로운 질문과 형식, 개념과 언어를 생산하는 문제다.
 
 
 
작품 생산을 넘어선 담론 생산
 
아시아가 작품만 생산하고 그것을 설명하고 역사화하는 개념과 비평을 계속 외부에서 공급받는다면 권력의 기본 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작가와 작품의 증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작품과 함께 연구와 비평, 출판과 번역, 전시사와 아카이브를 생산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이 필요하다.
 
아시아의 국제화 역시 뉴욕과 런던에 얼마나 많이 진출했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아시아의 여러 미술 현장이 서로 직접 연구하고 번역하며 전시하고, 세계의 다양한 지역과 여러 방향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하나의 중심을 새로운 중심으로 교체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중심이 되어 나머지를 분류하는 방식 자체의 전환이다.
 
 
 
‘Asian Art’에서 세계미술의 생산자로
 
아시아 동시대미술은 아직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이 남아 있는지를 판정하거나 서구의 잘못을 반복해서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계미술의 현실은 이미 달라졌다.
 
서구에서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의 개념과 제도가 형성되고 아시아가 이를 받아들이던 시대에서, 서로 다른 지역이 동시에 작품과 시장, 미술관과 비엔날레를 생산하는 시대로의 이동이다.
 
그럼에도 작품의 생산과 가치의 승인, 지역의 확장과 권력의 분산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격이 존재한다.
 
서구 현대미술의 역사적 성취를 세계의 공동 자산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않는 태도.
 
아시아의 역사와 지역성을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의 경계로 만들지 않는 태도.
 
작품뿐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고 역사화할 개념과 비평, 연구와 기록을 함께 생산하는 역량.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질 때 ‘Asian Art’는 서구가 바라보고 분류하는 또 하나의 지역적 미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시아는 세계 동시대미술의 대상이 아니라 그 개념과 가치,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는 생산자가 된다.
 

그리고 이제 질문은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 동시대미술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가.
 
우리의 역사와 경험을 어떻게 새로운 미술적 언어로 확장할 것인가.
 
작품과 함께 개념과 담론을 누가 생산할 것인가.
 
그것을 누가 기록하고 연구하며, 비평하고 번역하고 세계와 공유할 것인가.
 
마지막 3편의 주제는 한국 동시대미술의 구체적인 현실과 선택이다.
 
 
한국 동시대미술은 오리엔탈리즘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References
 
Edward W. Said, Orientalism, Pantheon Books, 1978.
Edward W. Said, Culture and Imperialism, Alfred A. Knopf, 1993.
John Clark, Modern Asian Art, Craftsman House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8.
Terry Smith, What Is Contemporary Ar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Melissa Chiu and Benjamin Genocchio, eds., Contemporary Art in Asia: A Critical Reader, MIT Pre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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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le Antoinette and Caroline Turner, eds.,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Connectivities and World-Making, ANU Pres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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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seum of Modern Art, Contemporary and Modern Art Perspectives (C-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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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 Academy, BTS Artist Profile.
Recording Academy, 2026 GRAMMY Awards Winners & Nominees.
Recording Academy, “Five New Categories and Rule Updates Take Effect for 2027 GRAMMYS”, 2026.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