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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 시장의 역사 ② 두 번째 파도,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한국 미술 시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두 번째 황금기를 맞이했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 한국의 상황은 미술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

Image by Susan Q Yin on Unsplash

1980년대 말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냉전 종식을 상징했던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한국의 국민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전 해인 1987년, 한국 군부 정권에 대항해 반정부 시위인 6월 민주 항쟁이 일어다. 이를 통해 민주적으로 개정된 헌법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마련했다.

이러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한국 미술 시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두 번째 황금기를 맞이했다. 한국 미술 시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두 번째 황금기를 맞이했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 한국의 상황은 미술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

Poster of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Design by Cho Yong-je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1989년 한국은 해외 여행을 전면 자유화하고 외국 물품 수입을 시작했다. 미술품의 경우 처음에는 주로 회화 등 일부 품목을 제한적으로 수입했으나 1992년에는 모든 예술품으로 수입 품목이 확대되었다. 이는 해외 미술이 한국에 소개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국내 미술계가 전 세계로 진출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세계화의 물결은 한국의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창달과 문화발전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시행해 나갔다. 1990년 문화공보부는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되었고 이러한 조직 개편은 문화예술의 전문화를 가져 왔다. 1991년 말에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제정되어 1992년부터 많은 박물관 및 미술관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미술관의 수가 증가하면서 미술계 종사자와 미술 향유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84년에 제정된 ‘건축물 미술 장식품 관련 법안’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조각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이러한 법안이 의무 조항이 되면서 회화와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벽화, 그리고 분수대와 상징탑과 같은 환경 조형물까지 확대 시행되었다. 이는 한국 미술 시장에서 회화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거래되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

Exterior view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Branch (MMCA Gwacheon). Courtesy of the museum.

경제 발전과 세계화 추진으로 국내 미술 시장에서 선호되는 미술 장르도 크게 바뀌었다. 1970년대까지 지배적이었던 한국 전통 회화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추상 영역에서는 김환기, 남관, 유영국 같은 작가들이 여전히 선호되었고 한국화 영역에서 서세옥, 이응노, 천경자 작가가 인기를 유지했지만 전반적으로 서양식 구상 화가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추상 화가들을 압도했다. 

이는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부의 척도가 되고 생활 양식이 서구화되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 인구가 확대되면서 미술 향유층은 아파트 실내 공간에 어울리는 서양화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미술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미술품의 가격도 급상승했다. 1990년대 초에는 이중섭, 박수근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이 경매에서 1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처럼 1990년대 미술 시장의 주류는 원로와 중견 작가들의 서양화 작품이었다. 

Lee Ungno, ‘People,’ 1986, Ink on Korean paper, 167 x 266 cm, Collection of Lee Ungno Museum.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는 아트 페어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화랑협회는 1986년 화랑미술제를 출범시켰고 당시에 37여 개의 갤러리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화랑미술제는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과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시장보다는 미술 축제에 가까운 성격으로 개최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 갤러리들은 이때 해외에도 진출했다. 1985년 가나아트센터가 한국 갤러리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열린 피악(FIAC)에 참가했으며, 현대화랑은 국내 갤러리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시카고 엑스포(Chicago International Art Exposition)에 1987년에 참가하는 등 다수의 국내 갤러리들이 해외 미술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1990년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수립하면서 소득세법이 개정되었고 미술과 고미술품 거래에도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면서 미술 시장은 위축되었다. 실제 시행은 2013년에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과세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미술 인프라가 부족했던 당시 미술 시장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는 물론 전 세계의 경제 위축과도 연관이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 인기 작가의 수가 1980년대 말 호황기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만큼 한국 미술 시장은 크게 위축되었다. 

Lee Jung Seob, 'Two Children,' (1950s). Courtesy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이 당시 한국 미술 시장은 크게 확장되기는 했지만, 국제 미술 시장의 구조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트 페어가 공공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등 아직 미술 문화가 독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경매 시스템도 1990년대까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이는 미술 전문가의 부재를 뜻하기도 했으며 미술 작품에 대한 평가 기준이 아직 부족했다.

1970년대 말에 형성된 미술품 가격의 모호성은 1990년대에도 이어졌다.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크기에 따라 그리고 작가의 인기에 따라 작품 가격이 매겨졌으며, 갤러리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실제 판매 가격이 다른 이중가격제도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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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사편찬위원회,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두산동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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