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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2023 신소장품전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

6월 25일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전은 백남준아트센터의 정체성을 잘 보여 주는 신소장품전이다. 이번 전시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미술관이 2년에 걸쳐 수집한 11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Poster image of On Collecting Time, Nam June Paik Art Center, Yongin. (March 9, 2023 - June 25, 2023). Courtesy of the museum.

미술관 컬렉션은 그 기관의 성격과 방향성을 보여 주는 좋은 지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 3월 9일에 개최되어 6월 25일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전은 백남준아트센터의 미션과 정체성을 잘 보여 주는 신소장품전이다.

이번 신소장품전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미술관이 2년에 걸쳐 수집한 11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김성환, 김희천, 노진아, 박선민, 박승원, 안규철, 언메이크랩, 업체eobchae×류성실, 진시우 총 9 작가(팀)의 비디오,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로봇, 인공 지능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아우르는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전은 ‘인간과 기계의 시간’을 다룬다.

Nam June Paik. Photo © Gianni Melotti.

기관명에서도 드러나듯,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1932~2006) 작가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작가는 미술, 음악 설치, 퍼포먼스와 기술을 결합한 행위 예술을 펼쳤으며,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서 현대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백남준 작가는 텔레비전을 활용한 대형 설치 작품에서부터 통신망을 통한 인공위성 퍼포먼스 그리고 반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 작품 등을 만든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백남준 작가는 주로 일본, 독일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해 한국에는 비교적 뒤늦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한국 현대 미술계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일례로 사비 3억 달러를 들여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의 서울 개최를 성사시켰다. 이 전시는 당시 세계 미술계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한국 대중에게 새로운 미술을 접할 기회를 주었고 한국 미술계에는 충격과 자극을 주어 더 넓은 관점에서 미술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Nam June Paik, Elephant Cart, 2001, Cart, elephant & Buddha’s statues, 24 TV monitors, telephone, phonograph, 1-channel video, color, silent, 293x633x15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백남준아트센터는 이처럼 독자적인 예술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백남준 작가를 기리기 위해 2002년에 문을 열었다. 미술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백남준 작가의 예술적 상상을 더욱 다양한 미디어 아트와 연결하고자 한다. 즉, 더 넓은 차원에서 많은 이들과 공감될 수 있도록 차세대 미디어 아티스트의 실험적 예술 활동을 지원하며 창의적 학술 활동을 배양하는 미디어 아트 전문 공공미술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신소장품전은 그러한 미술관의 미션을 잘 반영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 실험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 바 있는 이채영 학예실장이 기획한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전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시간 예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특히 이번에 새로이 소장된 한국 작가의 작품 11점은 사람과 사람 간의 직접적 교류가 금지되어 전 세계인들이 갇힌 공간에서 소통할 수밖에 없었던 펜데믹 기간에 수집된 동시대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다.

전시된 신소장품들은 “특정한 시기에 포착되어 수집되었고, 기이하고 흥미로운 시간이 던졌던 여러 질문과 징후를 담고 있”으며, 전시는 “특정한 역사적 시간에 대해 성찰하며, 비결정적이고 우연한 시간의 시(詩)적인 아름다움을 다룬다.” 또한 동시대 작가들이 작품 안에 어떻게 시간성을 풀어내는지 살펴보며, 새로 소장된 작품들을 변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는 유기적인 것으로 상상한다.

Sung Hwan Kim, Drawing Video Installation, 2008/2021
Drawing Video, 2008, single-channel video, color, stereo sound, 40 min 34 sec
Cover (by David Michael DiGregorio), 2003, 16mm film transferred to video, black and white, mono sound, 13 min 39 sec
pushing against the air 05, 2007, drawing, pen on tissue paper, 49×74cm
Untitled, 2010, drawing, chalk and acrylic on paper, 42×29.5cm
Untitled, 2010, drawing, chalk and acrylic on paper, 42×29.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성환(b. 1975) 작가는 영상, 회화, 건축, 문학을 활용해 문화 간 차이나 작가가 경험한 장소에 대한 감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2007년 행했던 세 번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김성환의 ‘드로잉 비디오’(2008/2021) 설치는 작가의 초기 비디오 작업 중 하나로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여진다. 드로잉 3점과 비디오 2점으로 구성된 ‘드로잉 비디오’는 ‘인터뷰 콘서트’ 작품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3명의 작가가 자신들이 경험한 음악과 문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함께 김성환 작가의 드로잉 퍼포먼스가 더해졌다.

Kim Heecheon, Deep in the Forking Tanks, 2019,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42 min.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올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김희천(b. 1989) 작가의 비디오 작품 ‘탱크’(2019)가 백남준아트센터의 소장품으로 들어갔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여러 디지털 디바이스 그리고 인터페이스를 통해 동시대 세계상을 이야기하는 미디어 작업을 한다.

2019년 아트선재센터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김희천 작가의 ‘탱크’는 감각 차단 탱크 시뮬레이션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감각이 박탈된 상황에서 몸을 극단적으로 확장시키는” 영상 작품으로, “몸이 물이 되고, 물이 내가 되는” 감각적 마비 상황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 상황을 사망한 여성 잠수부 송여름의 훈련 일지, 케이팝 안무, 멕시코의 한 컬트 집단 속에 있는 유사한 요소들로 연결하여 보여 준다.

Jinah Roh, An Evolving GAIA, 2017/2023, A.I. robotics sculpture, resin, wood, interactive system, 350×300×2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노진아(b. 1975) 작가는 기성의 조각 기법과 뉴미디어를 접목해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대화형 로봇을 만든다. 작가는 기계에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을 펼친다. 그를 통해 기술 문명 속에서 재정의되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기계적 존재들의 관계에 주목하며 생명과 비생명의 의미를 돌아보고 미래 사회를 상상한다.

‘진화하는 신, 가이아’(2017)에서 가이아는 대지의 어머니이자 자기 조절 능력을 가진 지구를 칭한다. 지구의 생명체를 동경한 기계 인형 ‘가이아’는 반은 사람, 반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관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습하는 ‘가이아’는 점점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우며 단순한 질문에도 꽤 복잡하고 철학적인 대답을 한다. 작가는 해당 작품을 통해 원본과 복제물인 인간과 기계 간의 관계가 경쟁보다는 공진화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Sunmin Park, Architecture of Mushroom, 2019, 4K single-channel video, 15 min 18 sec.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박선민(b. 1971) 작가는 사진, 영상, 공간 설치, 무대 디자인, 출판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언어와 이미지, 일상과 자연, 감각과 이성 등 많은 이분법적인 관계망을 탐구한다. 그는 특히 쉽게 지나치게 되는 자연의 현상을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미시적으로 관찰하거나, 망원경을 통해 거시적 시선으로 도시 안의 파편화된 불안정한 삶을 해독하는 작업을 한다.

‘버섯의 건축’(2019)은 2017년부터 1년간 제주 숲속에서 자라는 버섯을 낮은 시선에서 느리게 관찰한 영상과 국내외 건축가 13명의 건축에 대한 내레이션을 결합한 작업이다. 작가는 자연이 구축한 버섯의 구조와 인류가 구축한 건축을 서로 병치함으로써 붕괴와 소멸 그리고 생성을 사유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하도록 한다.

Seungwon Park, The Ordinary Day, 2020, two-channel video installation, 17-inch monitor 6 min 34 sec, 43-inch monitor 17 min 55 sec.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박승원(b. 1980) 작가는 신체를 활용한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한다. 작가는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는 신체를 엉뚱한 상황에 놓음으로써 그 불안함을 드러낸다. 작가는 비논리적이고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삶을 재정의하고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백남준 작가의 퍼포먼스 비디오 ‘머리와 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지극히 평범한 하루’(2020)는 2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한 모니터에는 좌우로 흔드는 머리를, 다른 한편에는 누워서 들어 올린 다리를 촬영한 영상을 보여 준다. 모니터에 갇힌 신체가 틀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감각하는 몸을 보여 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신체를 인지하는 것이 가장 평범한 수행임을 이야기한다.

Ahn Kyuchul, Nocturne No. 20 / Counterpoint, 2013/2020, performance/installation, piano performance, pencil drawing on printed paper, 29×21cm (111 piec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안규철(b. 1955) 작가는 개념적 작업을 펼친다.  작가는 소소한 일상과 사소해 보이는 사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해 현실의 부조리한 상황, 삶의 본질, 일상의 단편의 의미, 사회 속 개인이 겪는 갈등과 충돌 등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안규철 작가의 작품 중 ‘야상곡 No. 20/대위법’ (2013/2020)은 연주자가 쇼팽의 ‘야상곡 20번’을 연주하고 매 연주가 끝날 때마다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빼 나간다. 이 작품은 우연과 비결정적인 시간을 다루며 ‘무(無)’를 향해 나아간다.

Unmake Lab, Utopian Extraction, 2020, media installation, three-channel video, stones, webcam, computer, real-time object detection A.I. system, dimension variable.
Utopian Extraction, 2020, single-channel video, 32 min.
Ecosystem, 2020, single-channel video, 12 min.
Sisyphus Dataset, 2020, single-channel video, 15 min.
Fresh Stones, 2020, object detection A.I. system installation, real-time video.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송수연, 최빛나 작가로 이뤄진 언메이크랩은 인간, 기술, 자연, 사회의 관계를 전시, 연구, 교육, 출판 등으로 풀어 내는 작가 겸 연구자 듀오이다. 이들은 알고리즘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아이러니, 우화, 유머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전시된 ‘유토피아적 추출’(2020)은 미디어 설치 작품으로, 동명의 영상과 더불어 ‘생태계’, ’시시포스 데이터셋’ 그리고 1개의 설치 ‘신선한 돌’로 구성되어 있다. 영상에는 4대강 사업으로 생성된 거대한 모래산이나 간척 사업에 사용할 토석을 조달하기 위해 파헤쳐진 새만금 해창석산과 같은 개간 현장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현장을 둘러싼 데이터, 그리고 그에 대한 인공 지능의 시각이 실시간으로 반영된 영상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듀오는 인간의 인식 체계 바깥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인공 지능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eobchae × Ryu Sungsil, CHERRY-GO-ROUND, 2019,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27 min 9 sec.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업체eobchae×류성실의 ‘체리-고-라운드’(2019)도 전시에 포함됐다. 2017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업체eobchae는 김나희, 오천석, 황휘 3인으로 구성된 오디오-비주얼 콜렉티브로, 오늘날 인터넷과 각종 SNS, 유튜브 등 시청각 미디어를 통해 발생하고 있는 현상들을 비평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제시하는 작업을 한다. 류성실(b. 1993) 작가는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등을 통해 동시대 소비 방식을 희극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에는 만들어진 인물인 ‘체리 장’과 ‘발해인1’이 등장한다. 세 파트로 나뉘어진 작품은 이 픽션적 인물들을 통해 기후와 환경 문제, 디지털 통제와 감시, 권위주의 정치와 양극화된 경제와 노동 등 사회적 이슈들이 얽혀 있는 가상 사회를 다룬다. 동시에 그 안에서 소비되는 동시대 미디어의 얄팍하고 자기 과시적인 측면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Shiu Jin, Something that Might Not Exist between the Restored and the Transformed – A Conversation with K, 2016, object/video installation, single-channel video, color, silent, 16 min 12 sec, bench 96×34×51cm, mice sculpture 11×4×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사진, 드로잉, 설치, 영상 등으로 작업한 진시우(1975~2019) 작가는 젠트리피케이션, 불평등, 시민적 삶, 도시 공간의 재개발 문제 등 사회비판적 작업을 하는 동시에 예술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는 진시우 작가의 작품이 총 3점 전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복원과 변형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 – K와의 대화’(2016)라는 설치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단채널 비디오와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영상에는 관객 K가 훼손된 작품을 복원할 것을 설득하며 작가와 나눈 대화가 텍스트로 구성되어 나오고, 옆에는 부서진 의자와 의자 다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쥐의 형태의 조형물이 있다. 작품은 작가와 K의 대화를 통해 작품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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