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킴, 오가영, 우한나 작가가 참여한 전시 “오토힙노시스 (Autohypnosis)” 가 7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G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작가의 창작과정을 ‘주문’의 과정으로 보며 그 과정을 깊이 들여다본다. ‘Autohypnosis’는 자기 최면을 뜻하는데 전시는 이러한 자기 최면의 과정을 매체의 형식과 맞물려 일어나는 작가적 정체성 구축의 과정과 연결 짓는다. 전시는 이에 ‘주문’, 그 중에서도 은신의 주문에 집중해 낭만적, 신화적 해석을 더한다. 이는 작가가 다른 대상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면서도 동시에 현재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시도로서의 창작과정을 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듀킴은 BDSM 문화와 퀴어 언어, 종교, 샤머니즘 그리고 케이 팝에 주목하여 위선과 욕망의 지점을 탐색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문화적 정체성과 금기의 경계를 오가며 신체 혹은 신체의 행위와 관련한 작업을 선보인다. 오가영은 천 위에 인쇄된 이미지를 쌓아 올린 패브릭 설치 신작을 선보인다. 작가는 사용하는 재료와 기술에 대한 형식적 실험을 이어가며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평면성과 동시에 이에 상반되는 재료적 질감, 두께를 작업의 태도와 연동시켜 보여준다. 우한나는 신체 내부에서 시작했지만 신체 외부로 확장된 감각을 다루는 기존의 작업 경향에 더해 작가라는 존재가 겪는 필연적인 내적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작 <핑거> (2023)에서는 바늘과 실의 이미지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전시는 작가들 각각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를 한 데 모아 이들의 작업 세계를 신작과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갤러리 SP에서는 박다솜 (b.1989) 작가의 개인전 “납작한 불”이 7월 18일부터 8월 17일까지 펼쳐진다.
박다솜은 ‘꿈’을 자신의 회화적 방법론으로 택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필연적인 변형과 그로 인한 상실을 견디고자 꿈의 시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곧 꿈을 잊게 되는 망각의 과정에 집중하여 맥락을 잃어버린 꿈 속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몸들을 표현한다. 작가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모양과 크기의 종이 위에서 넓은 획을 주로 이용해 작업하며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기존에 집중하던 ‘몸’에서 한 발 나아가 열기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몸을 바라보며 몸과 열 사이의 움직임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전시의 작품들은 무대를 향한 시선처럼 느껴지며, 특정한 공간이 연출되는 듯 보여 연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운 사람들> (2023)에서는 불 앞에서 옷을 입지 않은 채로 있는 사람의 형상이 나타난다. 이 장면은 벌거벗으며 불로부터 도망치려는 움직임과 벗은 몸에 추위를 느껴 불 앞에서 다가가는 움직임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전시 명인 ‘납작한 불’은 불의 형상을 회화에 담아내는 데에 있어 평면성이 지닌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로 인해 획득되는 자유를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 작가가 택한 방법이다. 전시를 통해 작가가 겨울에서 봄에 걸쳐 회화 안에 구현한 고유의 공간, 형상, 불들을 바라보며 여름의 열기를 새로이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폴 바로우(Paul Barlow, b. 1988)의 개인전 “A bit”가 N/A에서 7월 14일부터 8월 12일까지 펼쳐진다.
폴 바로우는 캔버스 위에 희석된 아크릴 물감을 겹겹이 쌓고 그 위를 물에 적신 브러시를 이용해 이동하며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형상은 회화 내에서 자연히 형성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유기체들의 과학적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마침표와 글 머리 기호인 “.”과 “•”을 연쇄적으로 사용한 제목의 작품을 선보인다. 제목의 이러한 연쇄성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과 전시를 준비하며 중심에 둔 개념과 연관된다. 작가는 작품의 작은 부분이 그 자체로 전체를 드러내고 있는 듯 느껴진다며 이것이 자연 속 기본 구조인 프렉탈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작품 속 이미지는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행되고 움직이는 듯 보인다. 회화 내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전환과 진화의 흐름은 선형적이라기보다는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다. 작품은 이를 통해 변화의 특정한 결과보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변화의 상태를 포착하고자 한다.
전시에서는 이렇듯 고유한 부분의 구조를 지닌 채 연속적인 흐름을 보이는 폴 바로우의 작품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