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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민·한선우·제이디 차,
“지금 우리의 신화”전, 타데우스 로팍 서울이 조명하는 한국 젊은 여성 작가 3인

Partial exhibition view of “Myths of Our Time,” Thaddaeus Ropac gallery, Seoul.
(January 6 – February 25, 2023).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Partial exhibition view of “Myths of Our Time,” Thaddaeus Ropac gallery, Seoul. (January 6 – February 25, 2023).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타데우스 로팍이 한국에 지점을 낸 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오스트리아 기반의 글로벌 메가 갤러리인 타데우스 로팍은 런던, 파리, 잘츠부르크에 갤러리를 두고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021년 10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 한남동에 갤러리를 개관했다.

한국을 찾은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이제 한국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소개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리고 2023년의 첫 전시로 “지금 우리의 신화”전을 개막했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 3인의 신작 15여 점을 소개한다.

다양한 외국계 갤러리들이 한국에 지점을 연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미술 시장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해외 갤러리의 입장에서는 국내와 주변 시장에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을 통해 해외 작가들은 한국 미술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얻고, 국내 컬렉터들은 국제적으로 인지도 있는 유명 작가들과 글로벌 미술계의 흐름을 접할 수 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이지만 외국계 갤러리들이 국내 미술계에 발판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만큼 국내 미술계에도 비슷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는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할 문제이다. 메가급 대형 갤러리들은 대체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유명 해외 작가들을 위주로 국내에 소개하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이 자칫 국내 미술계의 입지를 좁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미술계는 외국계 갤러리들이 지속해서 한국 미술계에 다양한 미술을 소개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미술계에도 새로운 자극을 주어 국내와 외국 미술계가 서로 상생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Partial exhibition view of “Myths of Our Time,” Thaddaeus Ropac gallery, Seoul.
(January 6 – February 25, 2023).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Partial exhibition view of “Myths of Our Time,” Thaddaeus Ropac gallery, Seoul. (January 6 – February 25, 2023).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지금 우리의 신화”전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다른 지역에 새로 갤러리를 열 때마다 그곳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그들과 협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한국 갤러리를 열기 5년 전부터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구상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 갤러리를 맡고 있는 황규진 디렉터는 “지금까지는 소속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전시였다면, 이번엔 한국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갤러리 측은 국내 50여 명의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중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예술적 언어를 취하면서도 한국적 특성이 드러나는 작가들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3명의 작가는 각기마다 매우 다른 작업 방식과 관점을 보여 주지만 신화라는 공통된 주제로 모이게 되었다. 정희민, 한선우, 제이디 차 작가는 신화적 모티브를 통해 오늘날 기술 기반 사회를 비추는 작업을 선보인다.

Heemin Chung, '먼 곳에서의 부름 (Distant Calling),' 2022, Acrylic, oil, inkjet transferred gel medium on canvas, 223 x 190 cm.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 the artist.

정희민 작가는 디지털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만든 이미지를 다시 회화로 옮겨 놓는다. 하지만 그의 회화 작업은 평평하지 않다. 작품의 표면에는 어떠한 일정한 형식이나 틀이 갖춰지지 않은 물질 덩어리들이 얹혀 있어 화면의 촉각적 특성이 강조된다.

모든 것이 점점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정희민 작가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지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 또한 점점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작가는 디지털 환경에서 생산되는 이미지, 달라지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경험과 그러한 이미지의 특성을 화면으로 옮겨 놓는다. 이를 위해 작가는 관습적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료와 방법을 연구하여 회화이지만 입체적이고 촉각적인 특성을 지닌 작업을 펼쳐 낸다. 달리 말하자면 정희민 작가의 작업은 현대 사회에 우리가 갖는 정체성과 정서, 미디어와 이미지의 의미 등을 질문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Heemin Chung’s artworks, “Myths of Our Time,” Thaddaeus Ropac gallery, Seoul. (January 6 – February 25, 2023).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이번 타데우스 로팍에서의 전시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 에코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 회화 3점과 입체 조각 3점을 선보이고 있다. 신화 속 에코는 남이 마지막으로 한 말만 따라한다. 정희민 작가에게 있어서 에코의 이러한 처지는 마치 디지털 기반의 정보 체계 속에서 현대인이 구사하는 언어와 그의 한계를 상징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회화는 당대 사람들이 지각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가장 잘 포착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의 입체 조각 작품 역시 회화적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른 회화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소프트웨어로 구현된 조각 작품들은 생체 구조를 연상시킨다. 에코는 나르키소스와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점점 쇠약해지고 오그라들며 결국 뼈까지 돌로 변해 목소리만 남게 된다. 정희민 작가는 에코의 신체가 변해 가는 그 과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Heemin Chung.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W Korea

정희민(b. 1987) 작가는 한국에서 출생해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2022년 P21과 신도문화 공간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제13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했다. 또한 현재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에 참여하고 있다.

Sun Woo, 'In the Cage,' 2022, Acrylic and charcoal on canvas, 220 x 166 cm.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 the artist.

어린 시절부터 포토샵을 일상처럼 사용한 한선우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지털 콜라주나 스케치를 제작한 후 이를 캔버스로 옮긴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회화 작품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어딘지 디스토피아적인 서사를 그려낸다.

그의 작품 ‘새장 안에서’(2022)는 새롭게 해석된 라푼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성에 갇혀 긴 머리를 통해서만 세상 밖과 소통할 수 있었던 라푼젤의 이야기는 디지털 사회가 갖는 개방성과 폐쇄성이라는 모순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작가는 일반적인 회화 기법에 디지털 도구를 혼합하고 에어브러시와 같은 새로운 회화적 재료를 사용하여 신체의 일부와 같은 유기적 대상에 보철물과 같은 요소를 융합한다. 작품 속 변형된 신체 일부분은 작가에게 있어서 디지털 세계에 떠도는 갖가지 이미지이자 ‘살아 있는 잔해, 파편화되고 취약한 상태’의 단절된 신체 같다.

Installation view of Sun Woo’s artworks, “Myths of Our Time,” Thaddaeus Ropac gallery, Seoul. (January 6 – February 25, 2023).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연약하고 쉽게 변형될 것 같은 장기의 모습은 중세 갑옷이나 보철물 같은 이미지와 함께 놓여 있어 더욱 그 특성이 대비된다. 작가는 상반되는 대상들을 함께 놓음으로써 인간 신체를 강화하고자 한다. 마치 컴퓨터 화면에서 보듯 에어브러시로 매끈하게 그려 낸 보철물과 그에 비해 손으로 직접 그려 질감을 살린 신체의 이미지는 가상과 물리적 세계의 차이와 함께 기술 변화로 인해 변화한 우리의 감각을 보여 준다.

작가는 물건, 짤방, 팬덤 문화 등 오늘날 널리 소비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원래 맥락에서 따로 떼어 낸다. 그리고 작가가 원하는 구도, 색깔, 각도 등으로 변형하고 재조합하여 하나의 화면을 구성한다. 이때 작가는 동시대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부적, 장승 등 과거 사회의 바람과 욕망이 반영된 대상들을 가져와 그들이 어떻게 변형되어 이어져 왔는지를 작가의 생각과 연결해 재조립한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는 국내외의 전래 동화와 서양 신화에서도 영감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성장해 온 작가의 배경에 기인하기도 한다.

Sun Woo.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Sehui Hong

한선우(b. 1994)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했고 현재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에 파운드윌 아트 소사이어티(FAS)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 홍콩 WOAW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가졌다.

Zadie Xa, 'Kitchen Rituals & Lucky Red Petals,' 2022, Recycled leather, and assorted shell buttons on hand- sewn and machine-stitched linen, denim and mixed technical fabrics, 110 x 100 cm.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 the artist.

국내에 처음 신작을 선보이는 제이디 차 작가가 담아 내는 신화는 조금 더 한국적이다. 그는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역사, 민속 문화, 영적 세계 그리고 제사와 같은 종교적 의식에 관심을 갖고 회화를 중심으로 조각, 텍스타일,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작업을 한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그는 다문화 국가인 캐나다에서 성장하고 스페인과 영국에서 활동하며 한국 문화를 깊이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마고할미’나 ‘바리데기’와 같은 한국 설화 속에서 그의 정체성을 찾는다. 작가는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전통적 상징물을 자전적 모티프와 융합해 매우 개인적이고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포괄하는 새로운 신화를 그려 나간다.

Installation view of Zadie Xa’s artworks, “Myths of Our Time,” Thaddaeus Ropac gallery, Seoul. (January 6 – February 25, 2023).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 artifacts.

작가는 작품에 디아스포라적 정체성과 혼재성에 더해 서구나 지배적 권력에 의해 삭제되고 억압된 서사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극, 의상, 스토리텔링 등을 활용해 사회 정치적 조건과 문화적 행동을 고찰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작업에 보자기의 누비 기법을 활용하여 수공예적 요소를 더한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그의 텍스타일 작업을 몬드리안의 작업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유명 대가들보다는 이름 없는 예술가들에게서 그 출처를 찾는다. 작가는 어떤 작품을 돋보이게 하려는 과정 속에서 가려진 장인과 여성 예술가들을 재조명하고 이들과 자신을 연결하여 새로운 미술사적 얼개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Zadie Xa,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 the artist

제이디 차(b. 1983) 작가는 현재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4월 30일까지 런던의 미술관인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펼치며, 해당 전시는 타데우스 로팍 서울의 전시와도 연결된다. 현재 제주비엔날레에도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작가는 2019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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