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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승호 작가의 유희적 회화

Yoo Seungho, 'a gold spoon,' 2018, Acrylic on canvas, 57 x 44 in (145 x 112 cm). Courtesy of the artist.

유승호 작가의 작품은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동양화 같다. 때로는 붓글씨나 추상화 작품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그림을 구성하는 것이 붓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천 개의 깨알 같은 글자들은 때로는 빽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흩어진 채 화면을 떠돌며 하나의 큰 이미지를 구성한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을 그림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만 피식하고 웃고 만다. 작가는 진지함이 아닌 유희적 재미를 전달하고자 ‘주루루룩’이나 ‘슈~’와 같이 만화책에서 볼 수 있는 의성어·의태어나, ‘으-씨’나 ‘으이그 무서워라’처럼 조금은 무례할 수도 있지만 농담 같은 구어적 문구들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낸다.

유승호 작가의 회화 작품은 ‘쓰기’를 통해 ‘그리기’가 이뤄진다. 작가는 펜과 붓을 이용해 떠오르는 단어들을 반복해 적음으로써 이미지의 윤곽과 형태를 구성한다. 작품은 눈으로 보는 이미지와 형상 그리고 머릿속으로 읽고 듣는 지각적인 문자를 아우른다.

유승호 작가의 작품 세계는 대표 연작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문자산수’, ‘시늉말’, ‘라멜라 양’ 연작이 있다.

Yoo Seungho, 'yodeleheeyoo~,' 2007, Ink on paper, 39 x 27 in (100 x 70 cm). Courtesy of the artist.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의 모습을 한 ‘문자산수’는 작품과 특별한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로 구성된 그림이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작가의 상상력과 연상 작용으로 이어져 있다. 2007년 작인 ‘yodeleheeyoo~’의 아름다운 경관은 알파벳으로 된 ‘요들레이히유’로 구성되어 있다.

요들은 유럽의 민속 음악으로 알프스에서 목동들이 가축을 부르거나 마을간 의사소통을 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림 속 산수는 동양의 것이지만 누구나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산 정상에 서 있다면 ‘yodeleheeyoo~’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뜬금없어 보이는 한편 어떠한 연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여 언어와 회화가 공존하고 시대와 문화, 권위의 경계가 사라지는 작품을 만든다.

Yoo Seungho, 'woo soo soo soo,' 2017, Acrylic on canvas, 57 x 44 in (145.5 x 112 cm). Courtesy of the artist.

‘시늉말’ 연작은 앞선 작업들보다 좀 더 추상적인 형태를 띤다. 이 연작은 말과 이미지의 연관성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탐구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단어로 인해 이미지가 연상될 수도 있고,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단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엉~엉’이라는 작업에서는 엉엉이라는 두 글자가 비스듬하게 적혀 있고 각 글자는 마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듯이 낱말들이 연둣빛 배경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작가는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텍스트, 또는 기호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묻는다.

Yoo Seungho, 'Miss Lamella,' 2019, Ink and acrylic on canvas, 96 x 72 in (245 x 183.6 cm). Courtesy of the artist.

작가는 ‘라멜라 양’ 연작에서 이미지와 선을 화학 작용 일으키듯 서로 조합시킨다. 작가는 색 펜으로 그린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고 그 위에 입자가 곱게 분사되는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선 드로잉의 번짐을 통해 우연한 형태가 생성되며 추상적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작가는 이 연작에서 라멜라 구조 또는 접힌 사슬의 개념을 차용한다. 라멜라 구조는 분자와 분자가 만나 층을 이루며 안정적이고 단단한 완성체를 만드는 구조를 뜻한다. 이 분자 구조는 실제로 완벽한 결정형 사슬 구조를 이루기 어렵고, 열을 가한 가공을 통해서만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형태가 나온다. 이처럼 작가도 분무기를 통해 화학 작용을 일으켜 선과 이미지를 조합함으로써 문자의 구조적 형태와 그것이 담는 의미, 텍스트에 대한 성찰을 시각화한다.

유승호 작가는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 기호와 의미, 글과 드로잉, 주제와 배경, 정형과 무정형 등 다양한 경계를 흐리고자 한다. 또한 나아가 이처럼 경계가 모호한 상태야말로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작가가 “이것은 (글씨를) 쓴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한 것처럼, 그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의미를 분절하고 해체하고 무의미화 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Artist Yoo Seungho. Photo by Kim Sun-A. © Topclass.

유승호 작가는 씨알콜렉티브(2019), P21(2017), 뉴욕 두산갤러리(2013), 원앤제이 갤러리(2005) 등 다수의 국내외 주요 갤러리 및 비영리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두산 갤러리(2014), 서울시립미술관(2013), 국립현대미술관(2009), 일본의 모리미술관(2008), 대안공간 루프(2006) 등 여러 단체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또한 2002년에는 광주 비엔날레에 초빙되고, 1998년 제5회 공산미술제 공모전 우수상과 2002년 제22회 석남미술상을 수상했다.

10월 9일까지 진행되는 서울대학교미술관의 ““연속과 분절: 정탁영과 동시대 한국화 채집하기”에서 유승호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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